지난 2월 17~18일 양일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북한인권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열린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발표 1주년 기념포럼에 다녀왔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북한인권위원회, 조지W부시연구소, 연세대휴먼리버티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행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며 지난 15년여간 북한인권 활동에 관여해왔던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 북한인권운동이 크게 진일보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할 만했다.
첫째, 북한인권 및 동아시아 문제와 관련한 최고급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참여자들의 개인적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우선 이번 포럼에는 150여명의 현지 언론과 방청객 외에도 유엔과 미국, 한국 등에서 5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상당수 상당한 정책결정 역량과 영향력을 갖춘 이들로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 제안들이 오갔다.
개인이나 소규모 기관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유엔이나 정부 차원의 활동도 결국 관계된 사람들이 펼쳐나가는 것으로서 개인의 역량과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호주 대법관 출신의 마이클 커비 위원장을 필두로 한 COI 위원회의 3인 위원들은 각기 개인적 능력과 인격적인 면에서 각국과 국제사회에서 높이 평가받던 인물들이었으며 특히 커비 위원장의 철두철미한 아카데미즘과 좌중을 압도하는 리더십은 유엔과 북한인권시민사회의 다이나믹하고 낙관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또한 1년간 COI가 활발한 활동을 하도록 지원했으며 이번 COI 1주년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한 이정훈 인권대사(본지 부회장)의 개인적 역량이 큰 역할을 했다.
국내 위주로 활동을 펼쳤던 전임 인권대사들과는 달리 역할이 국제적으로 확장됐다는 점이 두드러지기도 했는데 이 대사의 활동으로 COI 전 위원들은 사실상 우리 정부의 긴밀한 협력자요 ‘로비스트’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고, 이밖에도 CSIS, 조지부시연구소 등 미국내 기관들과 북한전문가들도 동등한 협력자와 조력자로 참여해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둘째, 유엔 COI 보고서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그 모멘텀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2013년 3월 유엔인권이사회 4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설립된 유엔 COI는 1년간의 조사를 거쳐 이듬해인 2014년 2월 17일 400여페이지에 달하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는 북한인권 침해 실태와 관련한 가장 정통하고 권위 있는 문서로 평가받고 있다.
유엔총회는 이를 기초로 같은 해 12월 18일 북한인권 문제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조항을 담은 강력한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고 12월 22일 유엔 안보리도 북한인권 문제를 최초로 의제로 상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COI는 1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사실상의 활동을 중단함으로써 그동안 만들어진 전문성과 국제시민사회의 열기가 자칫 줄어들 수도 있었으나 이번 행사를 통해 다시 한번 COI의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논의함으로써 그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50여명의 전문가 참석자들은 둘째날 비공개 토론회를 통해 향후 워킹그룹을 구성해 논의된 사안들을 서로 점검하고 연계활동을 펼쳐나갈 것을 결의했다.
셋째, 국제 인권단체와 국내 단체들간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북한인권운동의 진정한 국제화가 이뤄졌다. 국내 북한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은 이르게는 90년대 말부터 탈북난민보호 유엔청원운동 등 국제 활동을 펼쳐왔으나 최근까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실질적인 영향력과 국제적 활동역량을 갖춘 단체들과 긴밀한 협력관계가 형성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포럼에는 미국은 물론 유엔 내에서 상당한 로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몇몇 단체들의 책임자들이 참여해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는 정부 차원의 관심과 공동주최 기관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넷째, 주요 언론사 보도를 통해서도 행사의 취지가 널리 알려졌다. 행사는 당일 워싱턴 현지의 폭설과 혹한으로 미 연방정부와 민간 기관들이 일제히 문을 닫는 환경에서 개최됐는데 행사장에는 언론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KBS 9시뉴스, SBS, YTN 뉴스 등 주요 방송사와 주요 국내 일간지들이 이번 행사를 일제히 커버함으로써 행사의 취지가 일반 국민들에게도 알려졌다. 북한의 뉴욕대표부 관리들은 행사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본 행사를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오히려 행사가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다섯째, 전술한 대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향후 활동 방향과 구체적 방안들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그 중 몇 가지 공개할 만한 내용을 소개하자면 △ 북한 책임자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알려야 한다 △ 이들이 행한 인권 범죄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 북한 주민과 정권을 구별해서 상대해야 하며 북한 주민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 해외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들과 연계해야 한다 △ COI 보고서의 내용과 활동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 오는 3월 서울에 설치될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 유니세프 등 유엔 내 다양한 기구들과 협력해야 한다 △각국 정부가 평양과 대화할 때 인권문제를 거론하도록 해야 한다 등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내용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한켠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남았다. 많은 국제적 전문가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참여와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국의 수도 워싱턴 한복판에서 행사를 하면서도 과거 북한인권운동을 펼치면서 말 그대로 천대와 멸시를 받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진보좌파 정부 시절에는 북한인권활동이 말 그대로 ‘반정부 활동’처럼 취급됐었고 많은 국민들과 언론들도 외면했는데, 만약 우리 정부나 관련 입장이 또다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걱정이었다. 과연 북한 정권 교체가 먼저일까, 우리 정부의 변화가 먼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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