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힘겨웠지만 어제의 고통과 어려움을 털어내고 새로운 희망과 간절한 소원들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으며 새로 시작하는 설이다.
설날 저녁 평양에서는 폭죽을 터뜨리며 새해 분위기를 잡는다고 난리란다. 늘 가난에 찌들어 배고프던 북한 주민들이 그나마 ‘목에 때를 벗긴다’거나 ‘고소한 기름 냄새라도 맡아 볼 수 있는’ 날은 명절이다.
지금은 배급이라는 것도 평양의 일부계층과 군인, 안전원, 보위부, 당 간부 등 소위 권력계층에게만 지급되는 특별혜택이 됐다. 그러나 명절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큰 명절에 속하는 양력 1월 1일 설날과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에는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명절 2일에 한해서는 100% 백미를 배급으로 나눠 줬다.
어쩌다 배부르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설날을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손꼽아 기다리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다보니 평상시보다 많은 음식을 만들게 되고 많은 음식을 만들려면 여성들의 부담이 엄청 많아지게 된다.
생활수준에 따라 송편과 절편, 찰떡, 설기떡, 만두, 꽈배기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고 갖가지 나물과 돼지고기 편육과 갈비찜 같은 음식도 만들게 되지만 이런 정도의 명절음식상을 마련하는 집은 전국의 10% 미만 정도뿐이다.
대부분은 뼈째로 나눠 준 돼지고기에 물을 푹 붓고 끓여서 속칭 ‘돼지가 장화신고 건너간 국물’이라고 하는 돼지고기 국물과 흰쌀밥에 양념한 돼지고기 몇 점을 얹은 돼지고기 국밥만 먹을 수 있어도 감지덕지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설날에는 과식을 하게 돼 소화불량이 많이 생기는데 다른 말로 설날을 ‘설사하는 날’라고도 한다.
1980년대 이후 명절공급으로 특별히 상정된 품목이 있는데 바로 수돗물과 전기다. 북한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수돗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1996년에 평양에 갔었는데, 평양에서 그래도 자랑하는 지역인 광복거리 칠골동 아파트에도 수돗물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신도시라고 국제적인 추세를 쫓아가느라 높이 지은 30층, 40층 고층아파트에 물이 나오지 않으면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오전 6시부터 7시 사이에 아파트 지하 2층에 있는 양수장을 개방하면 양수장에서 고층아파트로 물을 길어 올려야 하는데, 나는 그때 30층 아파트의 25층에 물을 길어 올리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늘 정전이 되고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있어서 계단으로 25층까지 물을 길어 올리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는데, 40층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한 달 동안 물을 길어 올렸던 한 여성은 어느 날 물을 긷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기와 수돗물 공급이 안 되니, 1990년대 이후 명절 공급에 추가된 품목이 바로 수돗물과 전기의 명절공급이었다.
그런데 세습으로 왕자가 된 독재자는 철딱서니가 없이 설명절이라고 폭죽을 쏴대며 아까운 돈을 하늘로 날려 보내니 북한 주민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더 쌓여만 간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자주 반복되는 김정은의 현지지도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부담이 더 커지고 있고, 국가의 수탈도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보장하기 위해서 북한 주민들에게 자고 깨나면 돈을 내라고 하고 물자를 갖다 바치라고 못살게 군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북한 주민들 사이에 “그 위대한 아이는 왜 자꾸 돌아다니느냐?” 또는 “위대한 어린이는 요새 뭐하느냐?” 하는 정도로 주민들 사이에서도 김정은에 대해 불만이 많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애란 편집위원·북한전통음식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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