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윤 상임고문 서울교회 원로목사 |
1천만 vs 15억의 대결장 홍콩을 향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997년 영국은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홍콩의 기존체제를 유지하고 자치권을 50년간 보장하는 내용을 합의체결한 바 있다.
빈부격차,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풀기 위한 이익집단간의 타협과 양보가 필요한 시기에 홍콩의 리더십이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해 시민들의 불만이 커진 상태에서 2017년에 치러질 행정장관 후보 선출방식을 놓고 홍콩 반환 17주년이 되는 날 50만 명이 거리로 나와 직선제와 완전한 자치를 요구하는 소위 민주화 시위가 시작됐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는 8월 31일 찬물을 끼얹으며 시위대 진압에 무력 대응을 해왔다.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행정장관 후보는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는 인사여야 한다”며 이들 2~3명의 후보 중에서 “홍콩 주민의 투표로 행정장관을 선출한다”고 결정했다. 반(反)중국 성향의 후보를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의도였다. 또한 선출된 후보는 중국 정부의 임명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해 임명권이 중국 정부에 있음을 못 박았다.
영국과 합의한 일국양제 원칙을 홍콩을 통해 원만하게 실험적으로 잘 시행했더라면 중국은 타이완과의 평화적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홍콩을 중국식 권위주위로 억압하는 한 타이완과의 평화통일은 물 건너간 셈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지도자가 분명치 않다. 러시아에서는 미국이 중국체제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중국을 괴롭히려고 CIA를 동원해 조종하고 있다 하나 근거가 미흡하다. 일설에 의하면 17세의 조수아 웡이라는 고등학생이 주동자로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반중 데모대를 촉발시켰다고 한다.
이 학생이 15세 때 공산당 찬양 교과서 지정을 중고학생 연합으로 반대를 해서 교과서 지정이 무산됐다 한다. 홍콩에 이 같은 젊은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비교해 보면서 부럽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사실 이번 홍콩사태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청년세대들이다. 이들 신세대 운동권이 기성세대 민주파가 계획한 센트럴을 점령하고 행동으로 옮겨 어느 정당이나 개인의 욕구가 아닌 민주화 시위의 규모와 방향이 활화산처럼 타오른 것이다.
아직까지 인접 국가들의 공식적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경찰의 최루탄을 막기 위해 사용한 우산을 상징으로 한 소위 ‘우산 시위’를 세계 도처에서 지지하고 나섰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21세기 글로벌시대에 사회주의 권위제도가 용납될 리 없기 때문이다. 존 케리 미 국무 장관은 중국의 외교 장관과 홍콩시위를 놓고 정반대의 견해를 밝히면서 홍콩 시민의 보편적 참정권을 지지한다고 했다. 영국 총리도 중국 반환 시 약속한 것을 지켜 일국양제 원칙을 지킬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우산혁명의 시위대가 홍콩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100만 명에 이르자 중국은 천안문사태와 같은 불상사나 티베트 위구르 같은 자치 정부에 영향을 끼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현명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기다. 이 기회에 중국 정부가 민주화를 수용하고 G2에 들어서는 계기를 만들든가, 아니면 구소련의 전철을 밟는 파국으로 빠지는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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