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목회자들이 은퇴하거나 소천하면서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대형교회 세대 교체가 대부분 이뤄졌다. 대형교회 2대 목사들과 개척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목사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차세대 기독교 리더는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여론이 많았다.
주간지 ‘시사저널’이 지난 9월 차세대 종교계 리더를 뽑는 조사에서 윤곽이 드러났다.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가 불교의 혜민 스님에 이어 2위에 랭크돼 우리 사회의 평가를 짐작케 했다.
행정관료, 교수, 언론인, 법조인, 정치인, 기업인, 금융인, 사회단체 활동가, 문화예술인, 종교인 등 1000여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담임목사 3년차인 이재훈 목사가 기독교 차세대 리더 1위로 떠오른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1대 담임목사의 경우 개인 역량이 판단 근거였다면 2대 목사에 대한 평가기준은 교회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재훈 목사가 부상한 건 잡음이 계속되고 있는 여타 대형교회와 달리 온누리교회가 우리 사회에 ‘클린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방증이다. 이 목사는 지난 6월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이 주최한 ‘재정공개 실현과 과제’ 좌담회에 초청됐다. 온누리교회가 재정을 투명하게 운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투명한 재정, 청명한 목회
1985년 온누리교회를 설립한 하용조 목사는 2011년 8월 2일 65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온누리교회는 하 목사의 ‘천국환송예배’를 마치자마자 담임목사 청빙위원회를 구성했다. 모든 성도와 장로에게 추천을 받아 1차로 후보 29명을 선정했고 여러 차례 토론과 투표를 거쳐 5명으로 압축했다. 이후 서류심사와 인터뷰 등을 거쳐 이재훈 목사와 미국 어바인 온누리교회 박종길 목사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당회원 260명이 투표를 했는데 40여표차로 제가 앞섰어요. 압도적인 차가 아니어서 2차 투표를 하려는데 박종길 목사님이 ‘저는 이재훈 목사님을 찬성합니다’라고 하셔서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른 뒤 박수가 터져 나왔죠.”
원로목사가 후임을 지정하거나 자녀에게 세습한 일로 비판 여론이 높은 가운데 온누리교회는 두 달 만에 2대 담임목사를 정한 뒤 ‘아름다운 행보’를 이어갔다. 이재훈 목사가 담임에 선정된 이후 경합했던 목사들은 떠나지 않고 교회가 안정되는 데 힘을 보탰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다섯 명의 후보에 들었던 목사 가운데 두 명이 다른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돼 갔고 박종길 목사는 귀국하여 함께 사역하는 중이다.
“영전되어 가신 거죠. 바로 가신 게 아니라 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1년에서 2년 반 동안 같이 계시면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일반인들도 알 정도의 온누리교회 출신 스타 목사들도 교회를 떠날 때 전혀 갈등이 없었다고 한다.
“하 목사님 계실 때 몇몇 목사님들이 개척을 하시겠다는 포부를 안고 떠나셨는데 온누리와 가까운 곳에 개척하신 분도 교회에서 2년간 지원했습니다. 제가 담임목사가 된 뒤 떠나신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이상 온누리에서 사역하신 분들에게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이재훈 목사는 온누리교회가 안정적으로 달리는 또 다른 비결로 ‘장로들의 성숙함’을 꼽았다.
“제가 담임이 된 이후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도 마음을 하나로 모았어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합의된 의견을 따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죠. 온누리는 인정과 승복과 연합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결정에 따르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죠.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한, 청지기의 리더십을 갖춘 장로님들이어서 가능했습니다.”
후보 중에 가장 연소자였던 자신이 담임으로 낙점된 이유를 이 목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젊은 것이 단점일 수도 있지만 장로님들은 도전과 모험정신으로 신선한 변화를 줄 거라고 기대하셨겠죠. 또 하나 온누리 역사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 때 하 목사님과 함께 참여한 것에 점수를 주셨을 겁니다. 비서실에서 몇 년 일해 온누리 공동체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과 원만한 인간관계도 보신 것 같습니다.”
이 목사는 온누리교회 만의 전도 방식인 맞춤형 전도집회와 성전을 분산시키는 멀티 사이트 등의 아이디어를 냈다.
“그간 전도집회는 강사를 정해놓고 무조건 데려오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의 문제와 상황에 맞는 메시지를 주셨어요. 그 점을 본받아 2002년에 동일그룹, 나이 등 대상을 세분화하여 전도집회를 열었어요.”
미국 목회 경험, ‘하心’은 없었다
1968년생인 이재훈 목사는 장로 아버지 밑에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명지대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를 졸업하고 고든콘웰신학교 목회학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1996년에 전도사로 시작했습니다. 하 목사님은 교단과 신학의 차이가 아니라 ‘복음적이냐, 아니냐’를 생각하셨습니다. 복음적이면 자신과 견해가 다르더라도 모두 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단체, 교단, 교회의 장점을 인정하고 수용하신, 진정한 의미의 에큐메니컬(연합)을 실천하신 분이죠.”
2005년까지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뉴저지초대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했다. 부임 첫해에 1000여명이 등록하는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미국에 가기 전에는 전형적인 사역형·실무형이었어요. 미국에 가서 목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공동체를 위한 목양적 리더십을 다질 수 있었죠. 미국 상황에 맞게 정관을 만든 뒤 6년마다 담임목사 재신임제도를 도입하고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했어요.
교회에서는 모든 분을 똑같이 대했습니다. 이민 사회는 까다롭습니다. 선입견을 갖지 않고 제 편을 만들지 않으면서 미국 사회의 메인 스트림에 진입한 젊은 교인들과 교제했어요. 국제적 감각도 갖추게 되었고 온누리교회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죠.”
2009년 7월 이재훈 목사는 하용조 목사의 부름을 받고 귀국해 양재캠퍼스를 맡았다. 그러자 후임 선정에 있어 ‘하心’의 작동되기 시작한 거 아니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더욱이 호산나교회에서 이재훈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하려 했지만 하 목사가 반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心’이 굳어지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미국에서 저를 부르실 때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은 없었어요. 오히려 ‘내가 당신을 후임으로 부른 게 아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기존의 사람들을 다 품어라’ 말씀하시면서 저를 낮추고 주목받지 않게 하셨어요. 장로님들이 후임 목사 문제를 꺼내면 ‘하나님이 하실 겁니다’라고 하셨어요. 하 목사님이 계셨어도 여러 사람 중에서 뽑도록 하셨을 겁니다.”
합신 출신인 이 목사는 미국에서 목회할 때 뉴저지초대교회가 소속된 KPCA(미국한인장로회)와 예장 통합이 합치는 바람에 까다로운 청목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온누리교회 담임이 될 수 있었다.
하용조 목사에게 배운 점으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것, 권위의식이 없는 것’을 꼽았다.
“하 목사님은 같이 일하는 동역자를 인정해주시고 힘을 실어주셨어요. 30대 초반에 제가 담임목사인줄 착각할 정도로 모든 일에 주도권을 갖고 일했을 정도입니다. 교역자들에게 지시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달라, 내가 뭘 해야 하나’라고 물으셨어요. 그러니 모두들 신이 나서 일했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무조건 해보라고 하셨어요. 우리가 앞장서면 하 목사님이 뒤에서 밀어주셨는데 그 과정에서 실패도 많이 했습니다. 위축되어 있으면 ‘20대 30대는 도전할 나이다. 30대까지는 실패를 많이 해야 한다. 40세 넘으면 사람들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실패는 용납하셔도 아무 것도 안 하면 야단치셨지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부교역자들에게 설교 기회를 주고 팀워크를 중시한 하 목사의 리더십이 온누리교회를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원로목사가 안 계셔서 편하겠다”고 할 때면 그는 “항상 옆에 계신다고 생각하며 일한다”고 답한다.
“하 목사님은 돌아가셔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십 년 동안 하 목사님 설교를 들은 성도들의 문화와 의식 속에 함께 하시는 거죠. 원로목사님의 그림자를 지우려 하지 말고 전통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지우려고 하면 같이 망합니다."
"하 목사님이 안계시니 더 그립고 더 존경심이 생기고, 그래서 설교도 자주 인용합니다. 한 분 목사님에 의해 세워진 회중은 한 세대가 지나가야 잊힙니다. 문화와 습관 속에 배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두 세대가 같이 가야 한다고 봅니다. 한 세대 씩 끊으려고 해도 성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몇 십년간 은혜 받은 분들에게서 귀에 쟁쟁한 전임 목사님의 목소리를 지우려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거죠.”
갑작스레 담임목사를 맡아 3년을 지내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셀프 크리틱(self critic)을 꼽았다.
목회자가 아닌 비전과 시스템 중심
“제도나 성도의 문제, 일이 많다거나 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지도자로서 비전과 리더십에 늘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시대적 요청과 맞는 비전을 뚜렷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게 어렵죠. 개인적인 선호도에 빠지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람과 역사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우리 교회가 역사적·시대적으로 어떤 사명을 가져야 하고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셀프 크리틱 하는 게 힘들죠. 내 안에 있지만 내 밖에 있고, 앞장서지만 나의 뒷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제대로 크리틱하지 않으면 리더십에 위기가 옵니다.”
이재훈 목사는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기’를 셀프 크리틱의 해법으로 삼고 있다.
“교회 안에서 이데올로기에 파묻히거나, 사람을 따르면 영성을 잃어버립니다. 리더가 가장 빠지기 쉬운 오류가 자기 편을 확보하는 겁니다. 반대를 용납하지 못하는 거죠. 반대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되 반대하는 사람들과 적이 되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봅니다. 어렵지만 되고 있어요. 장로님들께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부탁드렸어요. 개인 의견을 자유롭게 밝히고, 서로 설득해가며 하나됨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이재훈 목사는 화합과 일치에 초점을 맞추면서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자평했다.
“사람중심이 아닌 비전중심, 시스템 중심으로 만들어나가는 거죠. 앞으로 담임목사가 3대 4대 이어질 텐데, 목회자 의존 중심에서 비전 중심 시스템 중심으로 바뀌어야 역사가 흘러도 교회 정체성이 바뀌지 않을 겁니다.”
이재훈 목사는 부임 이후 자신의 비전을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 목사님이 강조하신 ‘사도행전을 실천하는 교회, 가르치거나 배우는 교회, 모이기보다 흩어지는 교회’라는 비전을 바꿀 이유가 없어요. 앞으로는 사회 선교에도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국내 소외된 계층과 장애인, 탈북민을 보듬어 나가면서 통일 준비에 힘을 보태야죠. 교회 본질에 합당하게 운영해 나가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바텀업(bottom-up)과 수평적 리더십으로 함께 이끌어가고 있죠.”
국내 10개 성전과 해외 31개 성전에 7만5000명이 출석하는 온누리호, 46세의 선장 이재훈 목사는 “지도자는 자기편을 만드는 순간 어려워진다”며 “내 편이 없어서 외롭지만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임파워링 리더십(empowering leadership)으로 함께 달리는 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글 / 이근미 선임기자 www.rootlee.com
사진/박종숙 객원기자 eve32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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