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통일 대통령’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최근 정부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통일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점이었다.
물론 통일은 ‘위원회’와 함께 오지는 않는다. 통일을 준비하면서 선행돼야 할 것은 북한 주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처참히 유린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수없이 개진되는 있는 ‘진부한’ 의견이지만, 이 진부함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한의 현실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10년 동안 ‘북한인권법’이 계류 중인 동안 국제사회에서는 2013년 3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이하 COI)가 설립됐다. COI는 올해 3월 북한의 처참한 인권 상황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북한은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 UN 및 국제사회에 북한의 인권 개선 방안을 권고한 바 있다.
민관합동 컨트롤 타워, 가능한가
지난 8월 27일 연세대 새천년관 대강당에서 국가인권위원회와 연세대 휴먼리버티센터,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 공동주최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권고이행 방안’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세미나는 1세션 ‘한국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권고이행 방안’과 2세션 ‘국제사회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권고이행 방안’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특히 ‘한국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권고이행방안’에 대해 토론할 때에는 참석자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날 발제를 맡은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상임대표 김태훈 변호사는 COI의 권고사항을 이행하는 방안으로 북한인권에 관한 민관합동 컨트롤 타워의 설치를 주장했다. 북한주민의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부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를 통한 화해협력 부분은 통일부가 각각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변호사는 “참혹한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곳은 바로 여러분의 나라이며, 같은 민족인 여러분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세계인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결국 여러분의 의무이다”라는 마이클 커비 前 COI 위원장의 지난 5월 강연회 발언을 인용하며 올바른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토론에 참여한 유호열 고려대 교수 역시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서 북한인권 개선과 관련한 법안을 조속히 제정해 통일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는 언론인의 입장에서 ‘언론인에 대한 북한인권 관련 교육 홍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언론기관과 관련 종사자들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다각적 관심을 갖고 이해력을 높일 수 있도록 북한인권 세미나 및 토론회 개최, 북한인권 관련 현장 투어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전반적으로 김태훈 변호사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북한인권에 관한 민관합동 컨트롤 타워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오히려 정부 유관 부처별 북한인권 전담부서 및 전담인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관 사이의 상시적 협조관계가 구축돼야 민간협력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안명철 NK워치 대표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관심이 없다”며 “북한인권 개선의 시작은 북한인권법 제정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여야의 정쟁의 대상으로 북한인권을 바라보지 말고 ‘인권’의 측면에서 북한인권을 봐주기를 당부했다.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꿔내려면
2세션에서는 ‘국제사회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권고이행과 전망’을 주제로 조정현 국립외교원 교수가 발표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 교수 역시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및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보호책임) 적용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북한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COI 보고서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 관련 사안에 대해 중국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분석되는 상황이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수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은 COI의 권고사항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국제 조약기구,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북한인권사무소 등 유엔 인권메커니즘을 포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COI 보고서의 권고사항들을 시급성, 필요성, 실현가능성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전략과 국제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기적으로는 탈북자 강제송환 저지, 정치범 수용소 폐지, 종교의 자유 보장 등을 목표로 설정해 접근하고, 장기적으로는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공식 논의 및 대응책 마련,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등을 목표로 설정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유현정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 정부가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문화, 스포츠 등 비정치적 부문에서 남북 간 인적 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북한 주민들 스스로 인권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고, 국제 NGO들과의 협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NGO 설립과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사계절 내내 꽁꽁 얼어 있는 듯 변하지 않는 북한인권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은 언제쯤 해빙될까. 세미나가 실질적 ‘정책’으로, 정책이 주민들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데는 아직 많은 계단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