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찾아온 ‘혁신의 계절’
여의도에 찾아온 ‘혁신의 계절’
  • 미래한국
  • 승인 2014.08.2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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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진
자유공방 대표

최근 여의도 정가의 트렌드는 아무래도 혁신(革新)인 듯싶다.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새바위(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혁신을 당의 캐치프레이즈로 자리매김 시켰다. 85년생인 이준석 씨를 혁신위원장에 앉힌 것부터가 일단 파격이다. 반면 7·30 재보궐 선거에서 완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은 당 지도부가 사퇴하면서 비대위 체제가 시작됐고, 비대위의 공식 명칭을 ‘국민공감혁신위원회’라고 선언했다. 여기도 혁신이다. 거부할 수 없는 유행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그 누구도 혁신을 반대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정, 정의, 자유, 다양성과 같은 단어들처럼 혁신은 단어 그 자체로 이미 정당성과 가치 우위를 획득하고 있다. 결국은 혁신의 내용과 방법론, 방향성 등 ‘과연 무엇이 혁신이란 말인가?’에 대한 구체적 실체가 논의돼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여야 모두가 혁신을 들고 나온 상황이라 어느 한 쪽이 혁신의 선천적 타당성을 독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에는 콘텐츠로 승부해야 하는 시점이 왔기 때문에 이 논의는 더더욱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혁신, 같지만 다른 풍경

혁신이라 함은 어쨌든 무언가 기존의 잘못된 것으로부터 탈피해 새로워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혁신은 두 가지 층위로 구분된다. 첫째는 기존의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고, 두 번째는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이다. 이 관점으로 여야의 혁신을 살펴보자.

새누리당이 혁신을 내세우게 된 배경은 계속되는 인사 논란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이었다. 그래서인지 새누리당 혁신위원회는 유독 인사시스템 개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어떤 사람이 새누리당의 구성원이 돼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인사시스템이라는 방향성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문제의식과 방향성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일단 새누리당 혁신위원회는 현재까지 당내인사 검증제도 도입과 전략공천 폐지 등 두 가지 굵직한 제안을 던져놓은 상태다.

먼저 당내인사 검증제도란 재산형성 과정에서의 불법·탈법, 본인 및 자녀 병역문제, 세금탈루 등 8개 기준이 담긴 ‘레드 리포트’를 말한다.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만한 요소를 사전에 검증해 논란이 될 만한 후보의 출마 자체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인사검증을 강화해 당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기본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8개 기준 중 대부분은 이미 현행법상으로도 위법이고, 이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에 맡기는 것이 옳다. 게다가 8개 기준 중 마지막에 해당되는 ‘개인사와 관련해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한 사항’이란 대목은 상당히 모호하기까지 하다. ‘찍어내기’를 위한 그럴 듯한 구실이 될 가능성은 없을까. 그나마 여기까지는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인 ‘전략공천 폐지’다. 필자는 얼마 전 지난 총선 및 지방선거에서 출마를 했거나 앞으로 출마를 할 예정인 여야 2030 청년정치인들과의 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 이른바 ‘상향식 공천’이라는 것이 오히려 더 심각한 구태정치가 될 수 있다는 공통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마치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지역에서 직접 후보를 선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예컨대 당내경선 투표권자가 천여 명 정도 된다고 가정할 경우 그 안에서 돈 봉투 살포, 봉고차로 투표장까지 실어 나르기, 자녀 취업알선 등은 너무나도 쉽게 벌어질 수 있는 현실들이다. 지방 토호세력과 유지(有志)들, 오랫동안 기득권을 유지해온 정치인들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능력 있고 열정이 넘치는 정치 신인들의 데뷔는 오히려 원천 봉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전문직이나 사회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역관리에 할애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략공천 폐지 혹은 상향식 공천이 자칫 기득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혁신이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는 아이러니다.

 

지금은 ‘토론’하고 ‘경청’할 때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 내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는 지난 8월 5일 박영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했을 당시의 기자회견문이다. 낡은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며 드러낸 문제의식은 바로 ‘투쟁정당의 이미지 청산’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제1야당으로서 지나치게 反박근혜 노선에만 골몰해 있었다는 자가진단인데, 적어도 지난 1년 반 동안 야당이 걸어온 길에 비해 지난 6·4 지방선거 및 7·30 재보궐선거의 결과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국민들은 야당으로부터 ‘대안세력’이라는 인식을 거둔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직 혁신의 대략적인 방향성조차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이완구-박영선 세월호 특별법 합의가 파기됨에 따라 야당은 또 다시 세월호 정국으로 이른바 ‘올인’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정당 혁신은 아직 요원한 논제로 보인다. 박영선 비대위원장 체제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전략공천을 배제하겠다고 밝혔으나 권은희 후보 공천과 어떻게 양립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새누리당보다도 더 혁신과 개혁이 절실할지도 모를 새정치민주연합이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와 방향성 상실로 표류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어쩌면 거대한 논쟁의 서문 격에 해당될지 모르겠다. 정작 진짜 중요한 작업은 ‘대안으로서의 혁신’에 대한 발굴일 것이며 이는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여야가 각자 혁신을 아젠다로 삼고 목소리를 낸 지 불과 한 달여 시간이 지났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이 혁신인가를 찾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성급해 보인다.

훨씬 더 치밀하고 치열한 토론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당 내부에서만 할 일도 결코 아니다. 여야가 각자 경청해야 할 학자, 전문가, 오피니언 리더, 당원들이 수없이 많다. 2016년 총선까지 큰 선거가 없는 지금은 정가에 찾아온 ‘오랜만의 안정기’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이 무엇인가를 차분히 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윤주진 자유공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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