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경제적으로는 무척 가까운 존재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멀다. 이런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반일 감정이 격화되면서 일본 정부와 거리가 멀어지는 대신 중국과의 정치적 긴밀도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3일 이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은 이례적인 방문이었다. 그는 서울대 강연에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언급하며 친근한 모습을 보여줬고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경제통상협력 포럼에 참석해 양국 간 경제협력 방향과 실천과제들을 제안하는 진지한 모습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권에 유감의 뜻을 내비치며 예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일정에 임했다. 이에 화답하듯 우리 언론은 ‘시진핑 특집’을 쏟아냈다. 한중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정치적 관계 개선에 앞서 경제적 협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1992년 수교 당시 한중 무역규모는 50억달러에 그쳤지만 21년이 지난 지난해에는 2290억달러로 무려 46배나 증가했다. 중국은 우리에게 최대 수출시장이며 해외투자 대상국이다.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이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만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중국으로 인해 우리를 둘러싼 지정학적 균형이 불안정해지며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정상회담에 이어 9일과 10일 이틀 동안 열린 미중 전략 대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드넓은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 두 대국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며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위상을 존중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케리 미 국무 장관은 “중국을 봉쇄하거나 중국과 충돌하려는 게 미국의 전략은 아니”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 양국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중국경제의 성장률이 계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중국경제의 불확실성이 세계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차이나 리스크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감도 늘 우리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무역과 투자를 통해 중국경제 성장을 최대한 활용해온 한국경제로서는 점차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가 우려하고 있는 중국경제의 불확실성은 중국의 정치 군사 대국화에 따른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함께 숨겨진 위험인 셈이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중국경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위기의 초기 단계를 신속히 감지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의 부상은 우리 경제에 도움을 줘왔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경제의 취약성 또한 증가시키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장기적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협력 범위가 넓어질수록 차이나 리스크는 점차 확대 심화될 수 있다. 중국이 가진 정치적 리스크, 경제적으로 숨겨진 위험들이 잠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준비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연내 타결을 희망할 정도로 중국은 우리와의 FTA를 상당히 서두르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 차원에서 FTA를 바라보지만 중국은 정치적 목적에서 FTA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거시적 경제정책과 발전전략의 공조를 강화하고 재정과제, 통화산업, 통상교류를 심화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같이 해야 한다”며 한중 FTA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지난 14일, 12차 한중 FTA 협상이 2개월 만에 재개됐다. 시진핑 국가주석 방한 후 처음 열리는 공식협상이었다. 2012년 5월 FTA 협상을 개시한 후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FTA에 부담을 안고 있었으나 ‘시진핑 효과’로 한중 FTA 협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이다.
양국은 원산지 규정, 서비스 무역, 화물 무역, 전자상거래, 환경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논의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불확실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협상의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대외경제연구원은 중국과 FTA 체결시 국내총생산(GDP)이 2.3% 증가하는 등의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의 50%는 가공무역 형태인데 이 중 고관세율을 적용 받는 소비재의 경우 대중국 수출 비율이 5.5%에 불과하다는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중국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재력일 뿐이다. 중국은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이며 경제적 자유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국가이다. 앞으로 중국이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고 시장경제 국가로 발전한다면 이는 동아시아와 세계 경제에 바람직한 일이다.
만약 그런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고 중국경제가 흔들릴 경우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국경제가 입을 타격은 매우 크다. 따라서 이런 위험 부담을 충분히 감안해 한중관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최승노 편집위원
자유경제원 부원장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