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결혼식에서 성혼선포 후 주례목사가 반드시 외치는 말씀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이혼을 한다.
가정의 달 5월 맞아 한국의 이혼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소식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목사도 목사의 자녀들도 이혼하는 이 시대에 2012년 통계에 의하면 32만쌍 결혼하고 11만4300명이 이혼했으며 그중 과반수가 자녀를 두고 있다는 보고는 충격적이다. 따라서 결손 가정이 167만7415가구로 조사됐다.
결혼에 대한 잘못된 견해 성경은 히브리, 헬라, 로마의 문화 속에서 쓰였다. 그중에서도 히브리 문화는 결혼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입장을 가졌다. 그러나 신약을 기록하던 시대에 성경적 결혼관은 무시됐고 수직적으로 소멸된 상태였다. 그 시대 여인들은 인격인이 아니고 하나의 물건이었다. 우리나라도 봉건주의 사회제도에서 여성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남편의 종속물 정도였다.
저녁상을 잘못 차려 이혼당한 여인이 있는가 하면 간음한 남편이 자기 여인을 이혼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여인에게는 이혼을 요구할 권리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남자가 여자에게 이혼 증거만 주면 이혼할 수 있었다. 헬라 사회에서는 여인은 동반자가 아니라 출산, 가사도우미로 남편의 삶에 참여할 수 없었다. 로마시대는 여인을 성적 노리개로 보고 방탕한 생활이 성행했다. 특히 여인들의 경제능력이 신장되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잡다한 이유로 이혼율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주례를 하시면서 축복하셨다. 그러나 죄가 인간에게 들어옴으로 마음이 완악해지고 그 결과 가정파괴가 시작됐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집에서 내보낼 것이요’(신24:1,2)라고 했으나 예수님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19:8) 하셨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길게 하신 후 본래는 이혼은 없었다고 가르치신다. 가정에서 용서가 실천될 때 건강한 가정으로 지탱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창세기를 언급하시면서 사람을 지으신 이가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그 하나님이 결혼제도를 만드시고 남자를 위해 여자를 지으시고 반면에 남자는 여자에게 주어졌다 하셨다. 그리고 죽어 헤어질 때까지 남자와 여자는 연합하여 한몸을 이룰 것을 강조하심으로 당시에 일반화된 종속주의나 이혼법을 정면으로 부인하시고 결혼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단언적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혼할 수 있는 어떤 이유가 있는가? 남자가 결혼한 여인을 어떤 이유로 기뻐하지 않으면 이혼증서를 써주고 내보낼 수 있나? 모세는 이혼을 허락한 것이 아니고 이혼녀가 재혼 후 다시 본남편과 결혼하는 것의 죄에 대해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근본적으로 이혼을 허락지 않는다. 음행한 자와는 이혼할 수 있나?
‘음행한 외’에란 결혼생활에 불성실한 행위라기보다는 결혼 첫날 불결함이 발견됐다면 그 경우엔 결혼을 속이고 한 것이다. 처녀가 아님이 발견됐다면 그 여인과 결혼은 간음한 것일 것이니 그런 결혼은 할 수 없다는 것이지 이혼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다. 이혼문제를 다루시면서 예수님은 예외 조항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동정녀 마리아의 임신소식을 안 요셉은 저주하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을 때 천사의 고지가 있었기 때문에 역사의 전환점을 만드셨다.
결혼 전 순결, 결혼 후 성실 그리고 결혼한 배우자에게 평생 헌신하는 이는 이혼을 어떤 이유로라도 생각지 않는다.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용서를 통해 이뤄지는 가정모델을 크리스천들은 보여야 한다. 날로 더 새롭게(a newer), 더 높게(higher), 더 순결한(purer) 가정을 이뤄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목적을 세워 나가야 한다.
이종윤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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