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새민주정치연합이 11일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철회함으로써 이번 6·4지방선거는 또다시 여야 간의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전쟁터로 전화되고 있다.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지방 일꾼을 뽑는 선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자님 말씀이다.
한반도의 정치 상황은 그렇게 목가적이지 않다. 조금 단정적으로 말한다면 이번 6·4지방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상화의 정상화’ 개혁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느냐, 아니면 박근혜 정권의 기반을 뒤흔들어 이른바 ‘민주정권’ 수립의 교두보를 확보하느냐를 결정하는 선거이다.
만약 보수여당 진영이 이 같은 6·4지방선거의 중앙정치적 성격을 무시한 채 6·4선거를 지방선거로만 바라보려 한다면 이는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 프레임을 애써 포기하는 자해행위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당 지지율보다 높게 나온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중차대한 6·4지방선거의 의미
이번 선거와 관련, 새누리당에서 이른바 ‘박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심 지원하는 후보가 있느냐, 또 있다면 누구냐는 논란이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입헌군주제 국가의 여왕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원수인 동시에 행정부의 수반이며, 또 현실 여당의 정치 지도자이다. 따라서 ‘기계적 중립’이란 존재할 수 없다.
한국의 대통령이 현실정치, 특히 여당 내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공권력을 이용, 선거에 개입하다면 이는 선거법 위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후보가 적합한지에 대해 상의하고 논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치행위이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박심’ 논란은 마치 대통령이 비(非)정치적 행위자가 돼야 올바른 것 같은 이상한 정치적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프레임 속에 박근혜 대통령을 가둬 버렸다.
이번 선거에서 또 다른 관심은 ‘호남보수’의 출현 가능성이다. 현재 호남은 단순히 ‘지리적’ 개념이 아니다. ‘정치적’, 아니 더 나아가 ‘이념적’ 개념이 되고 있다. 이른바 ‘진보진영’의 아성이 돼 버렸다. 그러나 호남은 DJ 이후 자신의 정치 지도자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부산·경남 출신 진보 혹은 좌파 정치 지도자들의 무조건적 ‘정치 박수 부대’로 전락돼 버렸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호남 포기론’ 운운하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호남보수’의 창출은 쉬운 일은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끈질기게 시도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국가형성(nation-building)이란 관점에서도 이 과제는 결코 포기될 수 없다. 그리고 호남 출신 여당 거물 정치인의 출현은 이러한 과제를 앞당기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남 출신 ‘거물’은 나올 것인가
바로 이런 측면에서 김황식 전 총리의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참여가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심이 반드시 김황식 후보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김황식 후보가 호남 출신인 것은 하나의 팩트이다. 그러나 아직 그가 진정한 ‘보수후보’인지에 대한 보수진영의 확신은 없다. 또 김황식 후보는 ‘정치인’으로 호남인들에게 인증 받지 못했다. 전 총리, 행정가일 뿐 아직은 ‘정치인’이 아니다.
그래도 김황식 후보의 도전은 새로운 자극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호남보수’ 정치인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 그리고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보수진영’과 ‘호남인’에게 각각 인식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선거의 계절을 맞이해 미국 보수주의 정치 전략가 데이비드 호로비츠(David Horowitz)가 쓴 <민주당을 어떻게 격파할 것인가>(How to Beat the Democrats)를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우리나라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참조할 사항도 많았다. 미국 보수주의 공화당의 선거운동 지침서이기도 했던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해 보겠다.
선거를 직업 정치인만의 것, 혹은 ‘더러운 것’으로 여기면서 선거의 역할을 무시하고 고상하게 관조하려는 경향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마오쩌둥의 말을 변형시켜 이야기하자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권력은 투표함에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독일의 군사전략가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바꿔서 말하자면 “정치는 다른 수단으로 행하는 전쟁”이다. 호로비츠는 이 같은 관점을 바탕으로 ‘정치전쟁’(political war)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4대 원칙을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첫째, 정치는 감정의 전쟁(war of emotion)이다. 현대 대중 민주정치에서 권력의 원천은 투표이지만, 불행하게도(?) 이 투표행위가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해 투표행위가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둘째, 정치는 포지션의 전쟁(war of position)이다. 모든 공약을 비교·검토해서 투표하는 유권자는 없다. 어떤 포지션에 위치해 있는가에 의해 선거판이 결정된다. 따라서 선거운동의 기본은 나와 상대방을 내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 잡기’는 씨름에서의 샅바싸움에 해당된다.
셋째, 정치는 공포(fear)에 관한 것이다. 선거는 흔히 유권자의 다수파를 나의 편으로 만드는 행위로 인식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상대방으로 적(敵)으로 여기고 상대방의 승리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넷째, 정치는 희망(hope)에 관한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공포만으로는 부족하다.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희망은 구체적 언어와 프로그램으로 제시돼야 한다.
선거에서 6가지 교훈
이 같은 원칙들을 기반으로 호로비츠는 선거에서의 6가지 교훈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첫 번째 교훈은 “전략이 결정적”이라는 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철학적 입장에서 비관주의자(pessimist)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비관론은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될 수 있다. “지적(the intellect) 측면에서는 비관주의, 의지(the will) 측면에서는 낙관주의”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두 번째 교훈은 “전투에서의 통일이 승리의 열쇠”라는 점이다. 모든 정치 캠페인은 다수파 연합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다양한 유권자권이 존재하는 한, 단일한 특정 정치 분파만으로 승리를 거둘 수는 없다. ‘통일 정치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 교훈은 “자연적(natural) 보수적 다수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선거는 결국 50 대 50의 싸움으로 가기 십상이다. 보수적 다수파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진영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이 우리 편이라는 레토릭을 현실로 착각해서 안 되지만 반대로 다수파를 획득하는 것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다.
네 번째 교훈은 “보수는 낮은 투표율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흔히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가 유리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일반적이 분석이다. 그렇기에 낮은 투표율을 기대하는 경향이 보수진영에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 자세로는 선거에 이기기 어렵다.
다섯 번째 교훈은 “민주당은 뇌물(bribery)과 공포(fear)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공짜 드라이브’ 선거공약을 통해 대중을 매수하고 있다. 공짜는 없다. 그 돈은 세금일 뿐이다. 또 민주당은 보수정당을 ‘기득권층의 정당’ 혹은 ‘부자들의 정당’으로 규정지으면서 복지 축소 가능성에 대한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이에 대해 보수는 중산층에 기반 한 ‘개혁 정당’이란 사실을 알려야 하며 또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혁 정당’이 돼야 한다.
여섯 번째,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가 돼야 한다. 원칙적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온정적’이라는 수식어에 저항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거에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리고 현실정치에서 반(反)복지가 될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보수주의자가 국가주의적 복지주의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대중에게 ‘배려하는’(caring)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호로비츠는 미국정치에서 승리하기 위한 열쇠는 ‘언더독의 로맨스’(the romance of the underdog)라고 이야기한다. 대중은 운명에 도전하는 약자의 모습에 환호하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언더독과 영웅(hero)의 결합을 만들어내야 한다. 다시 말해 선거과정에서 ‘감동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호로비츠는 ‘공세’(aggression)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포지션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공세적 입장에 서는 것이 유리하며 정치적 대립구도의 규정이 모든 정치 전쟁에서의 사활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단 구도가 잘못 고착되면 이를 뒤엎기는 매우 힘들다. 이는 고지전투에서 고지 위에 위치하느냐 아니면 고지 밑에서 그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공격하는 측에 서느냐 만큼이나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호로비츠는 야전에서 명심해야 할 교전수칙(the Rules of Engagement) 4가지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첫째로 수칙은 ‘선거는 전쟁’이라는 점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권력의 향방이 바뀌며 그 권력의 향방에 따라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바뀐다. 따라서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전쟁은 ‘포지션의 전쟁’이며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 개념(definition)으로 아(我)와 적(敵)을 규정하고 그 구도 하에서 대중에게 선택을 강제(?)하는 것이 선거운동의 기본전술이다.
예를 들면 야당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으로 선거구도를 잡으려 할지 모른다. 그런 구도 하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여당이 승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면 ‘박근혜 개혁의 안정적 추구 대 박근혜 정부의 무조건적 흔들기’의 구도로 만들어진다면 여당은 이미 이긴 상태에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선거는 잔치가 아닌 ‘전쟁’이다
두 번째 교전수칙은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이다. 일부 점잖은(?) 보수주의자는 ‘더러운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리고 경제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가 경제 상황을 규정하는 것이 현대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정치 혐오 혹은 정치 무관심은 보수주의 진영의 약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세 번째 교전수칙은 정치전쟁에서 ‘감정’이 논거와 이성을 격파시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투쟁, 특히 선거전은 논리 싸움이 아니다. 물론 잘못된 사고의 프레임을 바뀌기 위한 이념투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항상적으로 해야 할 과제이지, 선거전의 과제는 아니다. 네 번째로 교전수칙은 언론 환경이 보수진영에게 적대적이라는 점이다. 언론이 우호적이기를 기대하거나 적대적이라고 배척만 해서는 안 된다. 언론 환경을 우수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며 또 적대적 언론을 이용 혹은 활용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선거를 전쟁에 비유한 논거가 마음에 안 드는 ‘웰빙족’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선거는 ‘잔치’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선거에서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결집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대중은 ‘남의 잔치’에 관심 없다. 나의 생사를 걸린 ‘전쟁’이기에 결집하고 싸우는 것이다.
황성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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