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립학교를 설립하는 개인이나 기관은 그 학교를 설립하는 목적을 건학이념으로 내걸고 그 건학이념 구현을 위한 물적, 인적 자원을 총동원해 학교를 발전시켜 가고 있다. 학생도, 교수도, 캠퍼스도 바뀔 수 있으나 건학이념이 살아 있는 한 그 학교는 영원히 갈 것이다.
오늘날 대학의 고민은 무엇인가?
세계의 대학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저출산시대에 접어들면서 대학시장의 개방, 대학간의 경쟁 심화는 대학의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 특히 선교 목적으로 세운 기독교 대학들이 탈종교의 위협과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정체성 유지에 회의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대학의 생존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생존인가를 모른다는 점이다. 대학이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면 생존한들 무슨 가치가 있을까? 대학이라고 해서 없어져서는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의미 있고 이유 있는 생존을 위해서 대학은 자신의 정체성과 이념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대학 기능의 변천
상아탑으로서의 대학, 직업훈련소로서 대학, 사회 봉사기관으로서의 대학, 지식생산 공장으로서의 대학 등의 기능을 말할 수 있지만 그 유형들은 각각 한계가 있어 학문 공동체로서의 대학 기능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진리를 추구하고 인간의 지적 능력을 개발하며 지식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노력하는 공동체로서 지적 수월성과 영적 성숙성을 추구하는 대학의 기능을 제시하기도 한다.
현실 앞에 무릎 꿇는 기독교 사학들
세계적으로 유수한 대학들의 대부분이 기독교를 토대로 출발한다. 영국의 옥스퍼드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시27:1)’를 설립이념(motto)으로 삼고 출발했다. 미국의 하버드는 진리, 예일은 빛, 프린스턴은 신구약성경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설립 이념으로 삼았다.
한국의 연세대학은 진리와 자유, 영어로는 Chosun Christian College였고 언더우드가 연희를 세우기 전 인가받아 고아를 모아 가르쳤는데 그 교명은 예수교 학당이었다. 연희전문 정관 2조에서 ‘이 대학의 경영자나 행정직이나 교직자나 강사들이나 다 기독교성서에 포함되어 있는 교리를 믿는 자이거나 따르는 자이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숭실대학 배위량 선교사는 미국 선교부에 보낸 1909년 보고서에서 ‘첫째, 복음전도 그리고 그 다음이 교육, 이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고 몇 백 년이 지나는 동안 선교 목표 특히 진리와 자유의 정신을 체득한 기독교적 지도자 양성을 위주로 하겠다던 대학의 목표는 망각된 채 대학의 대형화, 학문적 수월성, 취업 인구 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데 노력하는 것을 대학의 발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좌파세력의 온상이 된 대학
미래한국 468호의 심층취재란에 ‘성공회대 그들은 어떻게 좌파지식계의 본산이 됐나’의 기사를 읽고 교육자의 자리에 앉아 있던 필자로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도 성직자 양성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학교가 운동권에서 활동한 경력자를 교수 채용시 우대했고 국가의 교육 목표에 배치되고 신행일치가 되지 않는 교육의 진원지가 됐다니 신학도의 한 사람으로 내 심장에 비수가 꽂히는 심정으로 아프고 또 아팠다.
성공회 교단 자체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성공회대의 친구들이여, 부디 귀 대학 설립 이념을 다시 찾아 정도(正道)를 가야 하나님도 신도들도 기쁨과 감사를 찾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설립 이념 구현을 외면한 채 제 길로 가버리는 대학을 지원하는 기업인들도 ‘악을 도모치 말라’ 그리고 ‘악인의 도모는 궤휼(詭譎)이니라’ 한 성경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를 기도한다.
이종윤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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