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들 중에 실화를 소재로 다룬 경우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영화들은 시작 전에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전에는 사실 여부를 특별히 밝히지 않은 적이 많았지만 사실이냐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처음부터 영화의 한계를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영화에 등장하는 이름이나 장소, 사건 등이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연일 뿐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밝히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설정이다.
최근 상영을 시작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는 산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만들었다는 점을 밝힌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실제 인물들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의 내용이 사실이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사실을 재현하는 재현드라마인가? 아니면 대기업의 비리를 고발하는 운동영화인가?
대기업 공장에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한 귀여운 딸이 몇 년 만에 병든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부모는 그저 딸의 운이 나빠 그런 것이려니 여기지만 딸이 세상을 떠나고 같은 작업장에서 비슷한 병을 앓는 피해자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면서 몸이 그렇게 상할 때까지 무얼 했느냐, 미리 병원에 갔더라면 좀 더 일찍 알 수 있지 않았느냐 같은 기본적인 의문은 아버지의 푸념을 통해서 거른다.
딸은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고 동네방네 딸 자랑을 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찌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느냐, 실적을 올리느라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는 등의 대답으로 딸은 자신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정당화한다.
선악 구도 강조한 멜로 드라마
이야기의 앞뒤 맥락을 뒤로 둔다면 영화의 구성은 지독한 멜로드라마의 방식을 따른다. 사건은 선과 악의 대결로 양분하고 선한 쪽의 인물은 무한정 순박하게, 악한 쪽 인물은 극단적으로 사악한 인물처럼 과장한다.
양방의 관계는 처음부터 기운 상태다. 극적인 설정도 그렇지만 관객에게 감정 이입도 그렇게 유도한다. 처음 관객의 감정을 한 방향으로 기울게 만드는 대목은 병석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찾아와 퇴직 서류에 서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회사는 기업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자비하게 약자를 짓밟는 야만적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 시킨다.
이후에도 감정선을 자극하는 설정은 계속 등장한다. 사직서를 받는 과정에서 퇴직금과는 별도로 주기로 했던 보상금 지급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거나 항의하는 아버지에게 모욕적인 태도를 보인다든가 하는 경우들이다. 회사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이는 담당자의 입장이나 생각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도 없다. 그저 악당의 이미지를 가진 맹목적 회사형 인간으로 등장할 뿐이다.
선과 악의 대결 구도를 더 강화하는 것은 약자를 돕는 천사 같은 존재의 등장이다. 영화 속에서는 여성 노무사와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가 그 역할을 맡는다.
그들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그 일을 하게 됐는지, 어떤 태도로 대응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영화적으로 묘사하는 캐릭터는 정의감과 양심,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무장한 정의의 대리인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지만 반복적으로 보이는 것은 주인공 가족이 얼마나 연약하고 억울했는지, 회사는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를 대비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집중하는 요소는 실제 같은 느낌을 극대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의 연출, 연기, 촬영, 편집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돼 왔다.
다큐멘터리 영화이든 극적으로 연출한 허구의 드라마이든 사실감을 높일 수만 있다면 어떤 작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무리 허구적으로 구성한 영화라 하더라도 눈 오는 날에 수영복 차림을 한 등장 인물을 설정하지 않으며 여름 해수욕장에 오리털 점퍼 입은 물놀이객들을 배치하지는 않는다.
‘실화’를 다룬 영화의 한계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실감과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람은 그 시대와 신분에 어울리는 차림새로 등장하며 현대적인 로맨스는 스타일시한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로마시대 군인이 요즘 유행하는 청바지를 입고 등장한다면 액션 사극을 구성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코믹한 판타지 영화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디지털 기술이 각광받는 것은 옛날의 기술로는 한계가 있었던 정교한 기술을 진짜처럼 구현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공룡을 캐릭터로 등장시키거나 고대 왕국의 어느 왕궁을 재현하는 일은 당시 상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착각할 만큼 실감을 연출한다.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수준은 다큐멘터리이든 극영화이든 실화영화이든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영화들이 ‘사실’을 모티브로 설정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영화가 다루는 내용이 인위적으로 연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사실을 단지 영화 속으로 옮겨왔을 뿐이라는 신뢰감을 높이려는 의도다.
어떤 형태의 가공이나 왜곡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을 보여준다는 믿음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영화들 중에서 ‘변호인’이나 ‘도가니’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같은 영화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보자면 아무리 실화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이라 해도 영화가 실화가 되지는 않는다.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그 대상은 이미 객관적 균형을 벗어나 특정한 대상으로 변화하며 그때부터 그 대상이 보여주는 인상이나 주장, 행동은 다른 것들을 압도하는 주인공 역할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은 영화 주인공이 하는 말, 행동, 입장과 공감하는 입장에 서게 되고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특정 대기업에 대한 선동적 비난
‘또 하나의 약속’은 특정 대기업을 감정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한다. 주인공 가족의 억울함을 강조할수록 기업에 대한 적개심은 커진다. 그런 방향으로 연출하고 감정적인 격앙을 유도한다. 관객은 주인공 가족이 느끼는 억울함과 분노에 대해 일방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이 올바른 상황을 이해한 결과인지는 알지 못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들이 보여주는 유형화된 구성이기도 하다. 남는 것은 영화가 유도하는 분노와 적개심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 대상이 기업이고, ‘변호인’에서는 국가권력이나 사법제도, ‘도가니’에서는 비리의 도가니로 변해버린 학교, 그 비리를 비호하는 사법 권력을 아울러서 묶는다. 특정기업을 공격하는 것에 열광하는 입장에서 보면 ‘또 하나의 약속’은 용감한 도전이라고 흥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격앙하고 기업의 무자비함을 강조할수록 영화는 멜로 드라마로 포장한 시위대의 확성기처럼 보인다.
조희문 편집위원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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