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영화 ‘변호인’에 대해 비판하면 사람들은 “그저 영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 속 악랄한 공안검사들에 대한 분노를 극장 밖에까지 가지고 나와 ‘실제 검사는 누구였는지’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변호인’은 픽션이지만 마녀사냥은 현실인 걸까.
처음에 표적이 된 것은 영화 개봉 전부터 “부림사건 피의자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던 고영주 변호사(당시 공안검사)였다. 그러더니 다음 타깃은 최병국 한나라당 前 국회의원으로 잡혔다. 한겨레신문의 한 기자가 최 前 의원과 관련된 트윗을 남겼기 때문이다.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악질검사의 실제 인물은 최병국 전 새누리당 의원입니다. 제가 찾아가 “사과할 생각 없냐” 물으니 ‘그럴 생각 없다’고 말했습니다.” (12월 27일 한겨레신문 허재현 기자 트위터)
이런 식으로 앞뒤 맥락 없이 얘길 하면 마녀사냥을 하잔 얘기밖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병국 前 의원에게 전화를 건 게 작년 12월 31일의 일이다. 송년회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도 최 前 의원은 긴 시간 동안 부림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답변을 해줬다.
그들은 한국을 美 식민지로 봤다
- 최 前 의원님이 최근 부림사건 피의자들에게 “사과할 생각 없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인터넷에서 공격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데요. ‘변호인’이 어마어마한 화제를 만들면서 피의자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비등한 상황인데 굳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실제로 그런 생각(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들의 혐의가 고문으로 조작됐다고 말하는 건 부림사건 피의자들이 스스로의 행동을 미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거죠.
- 조사 과정의 얘기를 좀 더 들려주시죠.
제가 피의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젊은 학생들이었고 아무리 시국이 5·18 이후여서 혼란스러웠다고는 해도 이제 학교 갓 나온 청년들이 시국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게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 대해서 일말의 연민의 정을 갖고 잘 대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적(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조사받는 곳에도 찾아가서 불편한 건 없는지 물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사관들로부터 ‘사회주의’며 ‘의식화’ 같은 단어들이 나오더군요. 당시만 해도 그런 말들은 저희에게도 상당히 생소한 용어였어요.
- 제1피의자 이상록 씨가 당시 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에게 “이제 곧 우리가 검사님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한 일화는 꽤 유명한데요. 비슷한 얘기를 들으신 적은 없습니까?
부림 피의자들이 한국 사회를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봤던 것은 분명합니다. 나아가 군사독재정부, 봉건주의 사회라는 말도 반복적으로 나왔고요. 우리 민중이 단결해서 체제를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어요. 그때 그들이 목표로 하는 나라가 북한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중공(중국) 얘길 많이 했죠.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북한 사정에 대해서 모르니까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체육관에서 뽑았지만 북한 김일성은 인민들이 뽑은 거 아니냐. 우리에게 없는 정통성이 그들에게는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이제 남한에도 곧 그런 사회가 온다는 얘길 저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바뀌어서 검사들이 조사받을 거란 내용도 들었고요. 농담 같은 분위기에서 나온 말이었어요.
- 그 당시 서로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나요?
농담도 하고 토론도 했습니다. 저는 검사로서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 보려는 입장이었고요. 너무 편향적으로 세상을 보면 안 되고 한창 공부할 때니까 문학서적도 보고 좀 그러라는 말을 했었어요.
피의자들 敵으로 생각하지 않아
- 그러면 고문 얘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건가요. 검사님을 만났을 때 이미 고문을 당한 상태였어야 말이 맞는 건데요.
고문 얘기는 기소된 이후, 그러니까 사안이 재판으로 넘어가고 변호인이 생기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경찰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거죠. 제가 피의자 중 한 사람에게 어떻게 고문을 당했는지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돌아온 답변은 “우리는 누가 고문한다고 해서 진술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오히려 피의자들이 조사하는 사람들을 가르쳐가면서 조사받았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부림 직전에 학림사건이 있었는데요.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이태복 씨였습니다. 부림 피의자들도 이태복을 알고 그들끼리 서로 만난 적도 있었죠. 한번은 제가 피의자 이상록에게 이태복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물었어요. (이태복에게) 포섭당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이상록은 “이태복이 우리보다 (내공이) 못 합니다”라는 말까지 했어요.
부림사건 피의자들은 확신범이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 이들이에요. 부림 직후에 터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부미방)은 일련의 운동권 세력이 의식화 과정에서 학습한 것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사건이었고요.
- 제1피의자 이상록은 1997년 사망했지만 다른 피의자들은 여전히 영화 ‘변호인’의 논조에 동의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피의자 중에 고호석이라는 교사가 있었어요(※ 당시 부산 대동고등학교 재직.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변호인’ 감상평을 남겼다). 그때 발가락이 빠졌다는 얘길 제가 들은 터라 불러서 한 번 보자고 했습니다. 왼쪽 발가락인가 앞부분에 멍이 들어있더군요. 왜 이런 거냐고 물으니까 “슬리퍼 신고 가다가 앞 문턱에 부딪쳐서 그렇다”고 말했어요.
그 당시에 목사님이 피의자들을 만난 일도 있는데 그 목사님 역시 피의자들에게 맞은 적이 있냐고 물었지만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 어느 순간부터 고문당했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조사 과정에서 신체검사도 받았는데 의사에게도 제가 물어봤지만 고문 흔적은 없었다고 얘기했고요. 저희로서는 고문을 받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 부림사건 조사 과정에서 매우 잔혹한 고문이 있었다는 건 이제 거의 상식으로 굳어가고 있는데요. 검찰 송치 이전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영화(변호인)는 흥행을 위해서 극적인 장치를 동원할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부림을 조사하던 당시의 우리(검사들)는 고문을 하지 않았어요. 검사가 고문할 이유도 없고요. 다만 7월에 잡힌 피의자들을 우리가 송치 받은 게 9월이 좀 넘었던 시점이니까 제가 그들의 모든 조사 과정을 다 안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우리가 물어봤을 땐 없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변호인 노무현’ 존재감 그다지 크지 않아
- 이번엔 ‘변호인 노무현’ 얘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부림사건 당시 노무현 변호사의 존재감이 별로 크지 않았다고 하시던데요. 어땠나요?
제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부림사건에서 노무현 변호사는 김광일 변호사, 이흥록 변호사 등의 선배들 뒤에서 대리 비슷하게 도와주는 수준이었어요. 시쳇말로 새끼변호사라고 하죠.
노무현 변호사는 부림보다는 그 이후 터진 부미방 사건 변호 때 유명해졌습니다. 서울 인권 변호사들까지 부산으로 올 정도로 떠들썩한 사건이었으니까요. (※ 부미방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사건의 주역인 김현장 씨의 변호인을 자청해 화제가 됐다.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 씨는 이후 사면됐고 전향했다.)
다만 그때 노무현 변호사가 변론을 하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법률적인 논리로 하지 않고 좀 특이한 질문을 해서 말이 나오기는 했어요. 이를테면 “역사상의 왕후장상이 무수히 많지만 우리가 지금은 하나도 기억을 못하지 않으냐, 그런데 정약용 같이 민중을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가 기억을 한다, 먼 훗날엔 여러분들도 그렇게 될 거다”는 식이었어요. 공소사실과 관계 있는 내용이 아니어서 판사에게 제지도 받고 그랬습니다.
- 최병국 前 의원님이 기억하는 ‘변호사 노무현’은 어땠습니까.
부미방 이후로 ‘감정적으로 변론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죠. 그 뒤로 우연히 만났을 때 제가 약간 나무라는 투로 말한 적도 있어요. 법조계 선배로서 나름대로 애정 있는 충고를 한 건데 그 뒤로는 멀리서도 저만 보면 좀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나중에 대통령 되실 줄 알았으면 제가 더 잘 하는 거였는데…(웃음) 그래도 붙임성이 있는 사람이었고 저한테 잘했어요. 변호사로서 열심이었다는 기억은 가지고 있습니다.
- 영화 ‘변호인’은 보셨습니까?
아뇨. 아직 안 봤습니다. 영화 내용과 관계없이 부림사건에 대한 제 입장은 그대로고, 대한민국 공안검사 중에 고문하라고 시킬 사람도 없습니다. 흥행을 위해서 재미 있게 만들려고 설정을 그렇게 한 거죠.
경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전부 아는 건 아닙니다만 검사로서 저는 욕설도 해본 적 없고 부림 피의자들을 조카처럼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제가 정치를 하면서도 ‘인권탄압 공안검사’라는 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저는 늘 “내가 욕을 하거나 윽박지르면서 조사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다면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말했어요.
이미 30년도 넘게 지난 일에 대해 누가 옳다 진실 게임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부림 조사 과정에서 그렇게 엄청난 가혹행위가 있었다면 그 내용을 다 아는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당시에 그냥 넘어갔을지 그걸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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