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숙청이 북녘 땅에서 시작됐다. 어린 독재자 김정은이 2인자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을 군사재판을 열어서 처형했다. ‘반역죄’로 체포한 지 5일 만의 일이다. 북한 주민의 측은지심 구전도 들리지만 확실한 건 없다.
지금이야말로 북한의 본질을 제대로 곱씹어봐야 할 시점인 듯하다. 어째서 40년 후견인을 총살했는지, 연말연초가 되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반복하는지, 왜 앞으로는 대화를 제의하고 뒤로는 도발을 일삼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명확한 답 하나는 이미 나왔다. “북한은 계속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시점에 그들이 왜 그런지에 관한 몇 가지 해석을 달아본다.
첫째, 우리는 북한의 정체(政體)가 ‘퇴행적 왕조정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비교정치학자들은 폭군정(Tyranny)으로 표현한다.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래 숙청은 일상적인 현상이다.
권력 공고화단계에는 더 집중된다. 살인마 김일성은 1인 독재의 추동에 6·25전쟁을 탑재했고 소련파, 연안파니 하는 모든 경쟁자들을 이내 형장에서 제거해 버렸다. 아들 김정일은 7년에 걸친 피의 숙청으로 왕조세습을 마무리했다. 손자 김정은 역시 속성으로 교육받고 실천했다. 그는 안다. 장성택이 사라져야 세습이 완성된다는 것을.
둘째, 북한의 독재자들은 내부 안정에 집착하고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다. ‘3대세습기’에 체제단속은 절실하다. 단속에 효과가 좋은 대남도발은 실질적 유산이다.
청와대 기습(1968년)과 도끼만행(1976년)은 김일성의 방식이었으며 아웅산테러(1983년)와 KAL기 폭파(1987년)는 김정일의 후계등극에 결정적 계기였다. 김정은에게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2010년)이 계승됐다.
휴전 후 43만 건의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3천 번의 군사도발을 일삼았다. 특히 김정일은 미사일 등의 비대칭 무기를 선호하다 국제제재를 받는다. 갱도 핵실험도 3번이나 했다. 독재자들이 제재를 무릅쓰고 도발하는 건 체제 안정이 우선한다는 명제가 컸다.
셋째, 우리는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을 알아야 한다. 즉, 화전양면전술(和戰兩面戰術)이다. 천안함과 연평도를 떠올려보자. 북한은 남북회담에 응하면서 어뢰공격을 했고 연평도에 포격을 자행하던 시기에는 수해 지원을 받고 있었다. “낯빛을 좋게, 뒤로는 총을 준비”하는 볼셰비키 혁명이론이 통일전선전술(적화통일)로 답습됐던 명백한 증거이다.
고찰의 결론은 이렇다. ‘12월의 피바람’은 지배자끼리의 찬탈쟁투이지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아니다. 3대세습의 안정성은 미지수다. 핵·경제·대중관계는 김정은에게 짐이다. 언제든 이탈세력에 붕괴될 수도 있다. 신중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뉴렘베르크(Nuremberg)의 재판, 차우세스쿠 일가가 분노한 민중에 잡혀 죽은 소식을 폭군들도 익히 전해 들었겠다. 이 때문일까. 선군정치를 앞세워 ‘봉기의 싹’을 말리는 게 폭군 최고의 덕목이다.
이제, 북한의 겁 없는 독재자에게 묻는다.
“60년 폭정의 최후를 리비아 가다피를 목도해야 알 수 있겠느냐고. 역사의 물결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고?”
북한 주민에게도 한마디 해주련다. “자유는 쟁취할 자격이 있는 인민들에게만 주어진다”고.
지금부터 통일준비를 잘 해야 하는 이유다.
‘김씨왕조’는 변해야 산다.
홍문종 국회의원(새누리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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