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를 점령하라!
새누리를 점령하라!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12.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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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아미와 매트 키베의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Give Us Liberty)를 읽고
 

지난 호에 실린 졸고(拙稿) ‘보수도 현실정치 아이콘 필요하다’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많은 독자들로부터 격려와 질책을 받았다. 내용에 공감한다는 독자들이 많았지만 “김진태 의원으로부터 뭘 받아먹고 그런 글을 썼느냐”는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려 밝히자면 김진태 의원과는 몇 번 조우한 적이 있을 뿐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 개인적으로 대화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이른바 ‘빨아주는 글’(?)을 썼음에도 불구, “시간나면 밥 한 끼 하자”는 식의 체면치레용 전화 한 통 못 받아 섭섭하다면 섭섭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문제는 정치인 개인이 아니다. 최근 읽은 딕 아미(Dick Armey)와 매트 키베(Matt Kibbe) 공저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Give Us Liberty)에서도 잘 표현돼 있지만 “올바른 사람을 선출하면 된다”는 생각은 혁파돼야 할 ‘미신’(myth)이다. 아무리 올바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실 정치인인 이상 현실 정치 세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올바른 입장을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저자들의 입장이다.

기생적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민주당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급진좌익에 의해 사실상 점령당한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한국정치와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안적 야당’이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민주당이 김성수·조병옥·신익희의 정통 보수야당으로 거듭나지는 못할지라도 건전한 정책 진보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주기를 애써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그래도 입으로라도 “민중이 주인”이라고 떠들고, “기득권층의 특권을 타파하자”고 외치던 자들이었건만 최근의 행태를 지켜보면 가장 악질적인 ‘기생적 기득권’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임수경 의원이 탈북 대학생에게 “배신자”라고 비난한 사실에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필자가 정말 경악한 대목은 “감히 국회의원에게”라는 표현이었다. 임 의원의 정치사상의 관점에서, 탈북자를 배신자라 규정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임 의원이 언제부터인가 스스로가 그토록 비난하던 ‘기득권 정치인’ 흉내를 내며 또 이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행태는 강기정 의원이 또다시 확인해줬다. “순경 따위가 국회의원에게 덤비다니”라는 식의 태도에서 강 의원은 이미 ‘민중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었다.(이들이 말하는 ‘민중’이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이들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인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들은 이들 자신 그토록 경멸하던 ‘관념론자’로 전락돼 버린 것이다.)

이런 야당 못지않게 우리 보수진영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새누리당이다. 앞서 언급된 김진태 의원을 비롯해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새누리당은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155석을 가진, 즉 과반수 이상을 지닌 집권여당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다수당이 아니라 소수당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이는 새누리당 의원의 다수파가 이른바 ‘웰빙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점잔만 빼고 있을 뿐 싸우려 하지 않는다. 우아한 일에만 나설 뿐 진창으로 가득 찬 참호에 발을 담으려 하지 않는다.

‘웰빙족’이 판치는 새누리당

또 이들 중 일부는 “정치는 대화이며, 타협”이라고 설교한다. “역사가 종말 되고 지리한 일상만이 반복되는” 어느 서구 복지국가의 이야기라면 혹시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 상황, 그리고 대한민국 여의도의 상황은 그렇게 목가적이지 않다. 서슬 시퍼런 ‘대립적 정치’가 진행되고 있다.

최소한의 합의가 전제돼야 대화도 가능한 법이다. 그러나 헌법적 가치에 대한 합의는 물론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이들 ‘웰빙족’의 행태는 전쟁터에서 전우가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뒤에 앉아서 ‘품위’만 지키고 있는 꼴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새누리당 ‘웰빙족’에 대한 비판은 그리 새삼스러울 바가 없다. 너무 오랫동안 진행돼 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를 바로잡느냐는 것이다. 이 같은 고민은 미국에서도 진행됐다. 소위 ‘리노’(RINO, Republican In Name Only) 문제이다. ‘이름만 공화당’인 ‘리노’ 문제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올바른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이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공화당 내에 ‘보수블록’을 형성하고 보수주의자들을 공화당 요직 및 선출직에 당선시키는 한편 더 나아가 개인이 아닌 정치세력으로 공화당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한 보수논객의 5천 결사대론

최근 대표적 보수논객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5천 결사대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애국보수세력 5천 명이 새누리당 진성당원으로 가입, 내년 새누리당 3월 전당 대회에서 ‘애국보수 블록’을 형성하자는 주장이다.

역대 전당대회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진성당원 5천명이 전당대회 투표에 참여할 경우 당권을 장악하지는 못할지 몰라도 당권 향방을 좌우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새누리당 당권을 애국보수진영으로 견인해 오는 한편 내년 6월 지자체 공천 및 선거 과정에서 ‘애국보수 세력’을 적극적으로 진출시키자는 것이다.

현재 이 주장은 돈키호테적 발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한탄과 푸념만을 반복할 것인가? 역사는 ‘침묵하는 다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가 말할 때” 이뤄진다.

 

이번에 읽은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는 미국 티파티(Tea Party) 운동에 관한 책이다. 저자 딕 아미는 미국 하원의원을 18년간 지낸 정치인 출신인데 풀뿌리 운동 없이는 보수주의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보다 낮은 세금+보다 작은 정부=보다 많은 자유’라는 기치 하에 프리덤웍스(FreedomWorks)란 단체를 이끌어온 사람이다.

티파티 운동은 미국 독립운동 당시의 ‘보스턴 티파티 사건’에서 따온 명칭으로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나타난 미국 연방정부의 월가(Wall Street)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을 반대하는 미국 서민들의 분노와 반발을 조직하면서 등장한 미국 보수주의 풀뿌리 운동이다.

이 운동은 프리덤웍스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 보수주의 풀뿌리 운동 조직들을 느슨한 형태로 엮어내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티파티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9월 12일 워싱턴 DC에서의 대규모 집회 이후이다. 40만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 이 집회를 통해 티파티는 자신의 대중성을 세상에 과시했으며 이 여파를 몰아 정치운동으로 발전시켰다.

2008년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월가에 대한 분노는 좌익 진영에서는 이른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란 형태로, 우익 진영에서는 ‘티파티’ 형태로 각각 진행됐다.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은 그 운동 자체의 반(反)정치성과 무정부성으로 말미암아 당시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는 성공했음에도 불구, 결국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서서히 소멸돼 갔다.

반면 ‘티파티’는 정치세력화에 성공, 현재 미국 공화당 내부의 주요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한국에서는 보수언론 조차 티파티를 극우파로 표현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것 자체가 현재 한국의 정치 사상적 지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공화당을 접수한 티파티

티파티는 정치를 혐오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화당을 지지하라고 하지 않았다. 티파티는 “공화당을 장악(take over)하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는 2010년 중간선거에서 나타났다. 이때 새로 당선된 공화당 초선의원 8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티파티 소속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 보수정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당시만 하더라도 무명이었던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를 플로리다주(州) 상원의원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하게 만들어 결국 당선시켰다. 루비오 상원의원은 쿠바에서 망명해 온 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으로 현재 차기 미국 대선 후보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히스패닉계란 점에서 주목되고 있는 신인 정치인이다. 티파티는 공화당 경선과 각종 선거에서 자신의 후보를 당선시키고 반대자를 낙선시키는 위력을 과시하면서 ‘괴짜들의 사회운동’이 아닌 미국정치의 새로운 중심(the New Center of American Politics)으로 부상한 것이다.

티파티는 ‘미국으로부터의 계약’(The Contract From America)이라는 문서를 작성,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이 문서에 서명할 것으로 요구하고 이를 기준으로 선거에서의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미국 공화당 정치, 더 나아가 미국 정치 일반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는 책에서 주목할 대목은 본문보다는 ‘활동주의 도구 모음’(Activism Toolkit)이란 부록이다. 티파티 활동가 매뉴얼인데 조직을 경험이 없는 초심 활동가들에게 어떻게 풀뿌리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지에 대해 잘 설명해 놓았다. 우리나라 환경과 맞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 애국보수 활동가들도 참조할 만한 내용이 많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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