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이라 쓰고 인민재판이라 읽는다
국민참여재판이라 쓰고 인민재판이라 읽는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11.1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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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참여재판, 즉 배심원제도가 이런 형국이다.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2008년 도입됐다. 그러나 폐해도 적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10월 24일 ‘나는 꼼수다’ 구성원들에 대해 1심에서 배심원 무죄 평결로 이 사건에 무죄가 선고되면서 ‘감성 판결’ 비판론에 휩싸였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기분”이라던 시인 안도현에 대한 배심재판은 전주지법이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와 후보자 비방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에 대한 재판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사법부가 무너진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혼란 그 자체였다.

전주지역 배심원들은 안도현에 대해 무죄를 평결했으나 이는 사실관계와 법리를 아예 무시한 평결이었고 1심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에 반해 안도현에게 허위사실 유포는 무죄, 후보비방은 유죄라고 판결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처벌하지 않는다는 선고유예를 내렸다.

국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1심 재판부는 “선고를 늦춘 후 가족의 신변 위협을 느꼈다”고 고백해 버렸다. 한마디로 아노미 그 자체였다.

결국 지역정서와 같이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등을 국민참여재판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국민참여재판의 제도와 운영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여론과 사법부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인이 배심원단으로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량을 결정(평결)하는 제도다. 그러나 배심원단의 평결은 권고적 효력밖에 없어 판사는 평결과 달리 판결할 수 있다.

법정형이 사형·무기 또는 단기 1년 이상 징역 또는 금고인 형사사건에 대해 피고인이 원할 경우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 영미 국가에서는 유무죄 판단은 배심원단이, 양형은 판사가 결정한다.

국민참여재판 감성 정치 판결 논란

배심원은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당 지방법원 관할구역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다. 법률에서 규정한 결격사유와 직업 등에 따른 제외사유, 제척사유, 면제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법원에서 통지한 선정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배심원으로 선정돼 재판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법률에서 정한 여비가 지급된다.

이 제도가 적용되는 대상은 법원조직법 제32조 제1항(제2호 및 제5호는 제외한다)에 따른 합의부 관할 사건, 동 사건의 미수죄·교사죄·방조죄·예비죄·음모죄에 해당하는 사건들이다. 단, 이들 사건의 피고인이 원하지 않거나 배제결정이 있는 경우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는다.

배심원의 수는 법정형이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대상사건의 경우 9명, 그밖의 대상사건은 7명으로 하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공판준비절차에서 공소사실의 주요 내용을 인정한 경우에는 5명으로 한다.

배심원의 유죄·무죄에 대한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을 지닐 뿐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배심원들이 결정한 유죄·무죄 평결을 판사가 따르는 미국의 배심원제도와는 달리 국민참여재판에서는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과 달리 독자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만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선고를 할 경우에는 판사가 피고인에게 배심원의 평결 결과를 알리고 평결과 다른 선고를 한 이유를 판결문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사건의 경우 비슷한 혐의에 대해서도 지역에 따라 배심원 평결이 다르게 나오는 등의 문제점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현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민감한 정치적 사건이나 선거 사건 같은 경우에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할 수 없도록 처음부터 배제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모든 것을 다 법에 규정할 수는 없다”며 “지역 정서가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건은 관할 법원을 옮기고 재판장이 배제 권한을 적극 행사하는 등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최진녕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법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판결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권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제도적 정비 시급

배심원제도는 9세기경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마을 주민재판에 이웃들이 증인으로 배석해서 판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태였다. 이 제도가 미국에 도입되면서 배심원제도는 ‘사법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에 도입됐지만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일본은 배심원제도를 포기하고 ‘재판원 배심’이라는 제도로 바꿨다. 일본은 중대 형사사건에 대해서만 재판원을 구성해 재판에 참여하게 하고 유무죄 뿐만 아니라 형량에 대해서도 판사와 함께 결정한다.

배심원제도는 미국에서도 현재 많은 문제 제기가 있다. 재판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고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검찰은 배심원제도로 인해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하고 있다. 배심원들에게 검사 역시 환심을 사야 하므로 검사뿐만 아니라 검찰측 증인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최근 안도현 시인과 ‘나는 꼼수다’ 패널 주진우·김어준 씨 사건 등 정치적 사건의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면서 제도적 정비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법무부는 관련 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로 앞으로 공청회, 국회 논의 등이 예정돼 있다.

무엇보다 배심원제도는 개인의 양심과 상식이 성숙한 사회에서 가능한 제도다.

한국인처럼 공동체주의가 우월한 국민들은 자기 손으로 남의 죄를 단죄할 정도로 개인주의에 익숙해 있지 않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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