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현빈 같다. 인터뷰 직전에 돌연 행방이 묘연해져서 담당자를 안절부절 못하게 하더니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나타나서는 “반갑습니다”라고 서툰 한국어 인사를 건넨다.
질문하는 기자에게 맛있는 마카롱을 건네면서 “그런데 어느 분야 전문 기자시죠?”라고 묻는 직설적 성격. 웃을 때는 ‘히히’와 ‘헤헤’의 중간 어디쯤에 해당하는 높은 소리를 내는 그의 이름은 뤼도빅 그랑샹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프랑스 최고의 도자기 제조업체 지앙(Gien)의 미래를 짊어진 남자. 21일 오전 서울 대치동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물려받은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아내의 고향인 한국에 대한 호기심, 과거와 미래의 비전을 연결하는 작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양돼 있었다.
- 지앙(Gien)은 한국에서도 마니아층을 형성시킨 명품 도자기업체인데요. 생소한 독자들도 있을 듯하니 간략히 소개를 해 주시면 좋겠네요.
지앙은 1821년 창립된 회사이고 프랑스에서 가장 큰 파이앙스 메이커입니다. 한국에서는 지앙을 통해 처음으로 파이앙스 공법이 소개됐죠. 이 분야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큰 기업입니다. 프랑스 고유의 노하우를 대표하는 기업만 가입할 수 있는 협회 ‘꼬미테 콜베르’에도 가입돼 있고요.
영롱하게 빛나는 색채와 다양한 컬러가 저희 지앙의 강점이죠. 이 분야에서는 유일하게 1년에 5-6개 정도 새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요. 본래 지앙은 프랑스 남부의 한 작은 도시의 지명이지만 저희 회사로 인해 더 널리 알려졌죠.
- 회장으로 취임하신 건 지난 9월 초부터라고 들었는데요. 젊은 나이에 중요한 직책을 맡으셔서 어깨가 무겁진 않으신가요?
저희 가문에서 지앙을 인수한 게 12년 전이에요. 그때부터 가까운 거리에서 경영에 참여하며 수업을 받았습니다. 지앙은 프랑스 내에서도 국가적인 회사이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물려받은 DNA를 믿어보기로 했죠. (웃음)
- 한국엔 어떤 일로 오셨나요.
취임 후 일본 홍콩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더 많아요. 제 와이프가 한국에서 태어났거든요(미국 교포). 저희 제품에 한국 ‘반찬’을 담아 먹기도 해요. 한국 친구도 몇 명이나 있어서 넥슨의 회장으로 유명한 김정주 회장과 함께 일한 적도 있고요.
- 한국에서 지앙의 ‘사파리 콜렉션’이 상당히 반응이 좋습니다.
이번에 출시된 새 모델이죠. 선물용으로 좋은 콜렉션입니다. 유행을 타지도 않고 평생 가질 수 있는 물건이거든요. 저희 지앙은 정찬을 위한 도자기에도 강점을 갖고 있지만, 캐주얼한 디자인의 도자기에 대해서는 다른 경쟁사에 비해 훨씬 좋은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창업자 토마스 훌름이 프랑스 남부 소도시 지앙의 르와르 강가에 공장을 설립했을 때 처음으로 지앙의 진가를 알아본 것은 당시의 유력 귀족들이었다. 그들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을 그려 넣는 것이 프랑스에서 유행했고 유럽 각지에서 주문이 몰려들어와 현재의 명품으로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세계 각지에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나올 텐데요. 각국 시장마다 어떤 차이가 있나요?
생각보다 차이가 크진 않아요. 지금은 대중매체를 통해 전 세계가 동일한 유행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물론 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제품을 좋아한다거나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작은 제품들에 반응을 보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요.
- 내년엔 디자이너들과의 협업도 예정돼 있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적인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예정하고 있어요. 저희는 1821년 회사가 창립되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디자인과 주형(mold) 1000여개를 전부 보존하고 있어요. 프랑스에선 지앙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죠. 기초적인 주형 위에 새로운 그림을 얹어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도 합니다. 좋은 아티스트들을 참여시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 공장엔 자주 방문하시나요?
매주 방문합니다. 1주일에 2번 정도요. 현재 일하고 있는 직원들 160여명의 경우도 선조 때부터 몇 대에 걸쳐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굉장히 애착을 가지고 일을 해요. 경력이 25-30년씩 되는 근로자(technician)들도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한 직장에서 길게 근무하는 사례가 드물어요. 저희 공장의 큰 특징은 자갈이나 모래 같이 완전히 기본적인 원자재에서부터 완제품까지의 전 공정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 CEO로서의 비전이나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저희 지앙에 대해서는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프랑스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회사이고 도시입니다. 누구나 아는 프랑스 역사의 살아 있는 한 부분을 지켜간다는 생각으로 경영 일선에 임할 생각입니다.
인터뷰/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사진/신경수 기자 icf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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