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갈등, 우리가 먼저 털고 가자
韓日갈등, 우리가 먼저 털고 가자
  • 미래한국
  • 승인 2013.10.3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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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역사이야기
 

지난 10월 20일 끝난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추계 예대제(例大祭) 기간, 아베 총리는 이번엔 야스쿠니 참배를 보류했다. 하지만 160명에 이르는 자민당 의원들이 참배를 강행했다. 한국과 중국에선 당연히 비판이 나왔다.

우리 정부는 10월 22일 외교부 대변인 정례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과거 침략전쟁을 일으켜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준 국가의 고위 정치 지도자들이 신사를 참배하면 피해국의 정부와 국민으로서는 정말 과거를 반성하는 것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늘 하던 얘기다. 중국의 반응도 표현이야 어떻든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미국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이. 그런데 사실 이건 좀 희한한 일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 도발에 맞서 가장 피터지게 싸운 나라는 바로 미국 아닌가?

야스쿠니, 그리고 위안부

야스쿠니 참배 논란의 핵심은 거기에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격히 말하자면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는 직접적인 당사자는 미국이다. 그 전범들은 모두 미국에 대해 전쟁을 도발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따질 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우리 민족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전시 동원에 내몰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남의 전쟁이었지만 국권을 상실하고 그들의 식민통치하에 있었으니 도리가 없었다. 야스쿠니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물이다. 따라서 식민통치 피해 당사자인 우리로선 충분히 할 말이 있다.

하지만 그럴 권리가 있다 하여 계속 그 문제에 매달려 있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지 따져보자. 야스쿠니 참배, 우리로선 결코 기분 좋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반드시 저지해야 할 절체절명의 문제인가? 개인 간이든 국가 간이든 결단코 저지해야 할 일이면 ‘말’이 아니라 ‘실력’을 동원해야 한다. 그럴 것도 아니면서 ‘말’만 반복하는 건 듣는 쪽은 내성만 강화되게 하고 발언 당사자는 무게감만 잃게 만든다.

 

아시아 패러독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냉정히 말해 그것은 일본의 부끄러움 이전에 우리의 수치다. 우리의 아녀자들을 지키지 못한 것은 결국 우리가 못난 탓 아닌가?

일본의 속 좁은 처신은 결국 그들의 양식의 문제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그것은 우리의 못난 역사의 결과다. 그런 문제를 지금처럼 국제적으로까지 떠들썩하게 다루는 건 일본의 체면 손상 이상으로 우리의 위신도 실추시킨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아 패러독스를 말했다. 동아시아가 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과거사 문제 등으로 반목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이 있다. 특히 한일 간의 냉기류가 간단치 않다. 여기에는 분명 일본의 책임이 적잖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일본을 탓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들이 옳아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과거사 문제의 짐은 일본의 문제다. 그것을 흔쾌히 털어내든 못하든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우리가 굳이 그들을 가르쳐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겠다는 건 매우 낭만적 발상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백번 머리를 조아려 본들 우리의 힘이 허약하면 그런 사과는 아무 쓸모없는 수사학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일본이 과거사를 어떻게 미화하든 우리의 힘이 강력하면 그것은 단지 그들 자신의 자족일 뿐이다.

국가 간의 관계는 결국 힘이 좌우한다. 역사인식 조차도 궁극적으로는 논쟁과 말싸움이 아니라 실력에 의해 결정된다. 강력한 힘을 갖춘 나라는 애써 주문하지 않아도 이웃 나라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 아우라는 결국 역사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역사인식이 선행함으로써 국가 간의 존중과 선린이 확보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실력에 대한 존중이 역으로 공통의 역사인식을 갖게 만든다.

삼전도비(三田渡碑)

일본과 중국, 누가 더 큰 위협이었나?

한국이 여전히 개발도상에 놓여 있던 시기 일본은 우월감 속에서도 부채의식을 갖고 한국을 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계심이 강해지고 있다. 소니는 몰락하는데 삼성전자가 세계를 휩쓸게 되는 상황을 일본의 입장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 것인가?

한국 입장에서도 일본의 비중이 예전 같지 않을 만하다. 한국은 한때 일본에 기술적으로도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이제는 충분한 자립을 넘어 거의 전 분야에서 일본에 대해 경쟁적이다. 반면 중국과의 경제관계는 날로 더 확대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볼 때 일본보다는 중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 보일 만하다.

이런 상황이 친중반일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교훈에 부합하지 않는 단견적 태도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에 대한 위협은 압도적으로 대륙으로부터 왔다. 반면 일본으로부터 적대적 침탈을 당한 것은 7세기 말 백제 멸망 당시 일본의 구원병 파병, 조선 중기의 임진왜란, 그리고 구한말의 침탈 등 사실상 3차례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역사를 들먹인다. 그러나 대개 그것은 정제된 역사인식이 아니라 가까운 시절에 대한 단순한 기억인 경우가 많다. 일본과의 불쾌한 기억이 바로 가까운 시절에 있었다. 덕분에 그 이전 중국에 의해 겪었던 굴욕은 마치 책속에만 있는 먼 이야기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일동맹 강화는 미국의 오랜 구상이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정말 중요한 문제는 미국의 입장이다. 미국은 지금 한국의 친중반일을 가벼이 볼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의 패권야욕 저지를 위해 한미일 삼각동맹이 굳건해지길 기대한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거기서 이탈해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 또한 일본의 우경화 흐름에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적어도 그 점과 관련해선 미국도 한국 편에 서 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입장에 대한 몰이해일 뿐만 아니라 전략적 판단으로서도 오판이다. 일본의 재무장화에는 일본의 독단이 아니라 미국의 강력한 주문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일반적 오해와는 달리 일본의 평화헌법 고수는 강요된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자신이 일본에 평화헌법을 강요했지만 냉전이 격화되면서 일찍부터 그 변경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일본은 1950년대 초반 일본 총리를 맡았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이래 냉전시대 내내 경제제일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평화헌법을 핑계로 안보는 철저히 미국에 맡긴 채 경제적 이득을 챙긴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이 같은 무임승차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미중수교 이후 아시아에서의 대소 냉전에선 중국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중국의 거부감이 확실한 일본의 재무장화를 무리하게 추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일본이 우려스럽다면 더 크게 묶어라

2000년 10월 부시 행정부 출신의 리처드 아미티지와 클린턴 행정부 출신의 조지프 나이가 공동으로 ‘초당적 보고서’(제1차 아미티지 보고서)를 내놓았다. 핵심은 미국 영국의 ‘특별한 관계’를 일본과의 동맹의 모델로 권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미일동맹 강화와 일본의 집단자위권 보장은 일본 내 우익세력의 갑작스런 부상에 의한 게 아닌 것이다. 미국의 오랜 구상이 근래에 들어 중국의 패권야욕이 본격화되면서 마침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이 같은 역할 확대를 우려한다. 그렇다면 한미일 삼각동맹은 더 중요하다. 동맹은 역으로 독단을 제어하는 통제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큰 차원의 집단안보체제에 일본을 참여시키지 못할 이유도 없다.

동아시아판 NATO 같은 게 그것이다. 서독은 NATO의 일원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독일에게 국제 정치적 면죄부를 준 것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적 행동을 못하도록 족쇄를 채운 것이기도 했다. 일본이 참여하는 집단안보체제도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해 그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선 일본의 집단자위권 보장은 불가피한 통과점이다.

한국은 이 구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일본을 통제 아래 두면서 이미 현실적 위협인 북한의 핵위협과 중국의 위압적 패권행사로부터 안전을 지키는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걱정거리라면 중국의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미일동맹과 그를 주축으로 한 안보 틀에서 이탈해 있는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대접받으리라 믿는 건 큰 오산이다. 그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또다시 중국을 ‘모시는’ 것밖에 없다. 그러다 중국이 경제적 요동이나 정치적 격변에 휩싸이기라도 하면 공도동망(共倒同亡)이다.

한일문제 우리가 먼저 담대하게 털자

문제는 우리의 트라우마다. 일본이 독일처럼 확고하게 과거청산을 했으면 되지 않았겠느냐고? 그러나 독일이 그렇게 애를 썼지만 천하의 대처 총리도 독일이 통일된다면 차라리 달나라로 이민을 가겠다고 까지 했다. 트라우마라는 게 그렇다. 그래서 이것은 결국 스스로가 털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과거사 문제 등을 한 번에 크게 매듭짓지 못하는 일본의 모습은 때로는 딱하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자신의 문제다. 중국이 일본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고 우리도 똑같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가? 억지로 꿇어앉혀 사과를 시킨다고 ‘통석의 념’이 더 깊어질 리 없다. ‘엎드려 절을 받는다’고 우리의 위신이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몫은 그들에게 맡겨두고 우리가 먼저 담대하게 털고 미래를 향해 가는 게 현명하다.

일본의 한 의원이 국회 의사진행발언 도중 미군 주둔군을 일본을 지키는 “방켄(번견 番犬)”이라고 했다. ‘집지키는 개’라는 뜻이다. 미국더러 ‘개’라니! 너무 무례한 언사 아니냐는 지적이 있자, 그는 이렇게 사과답변을 했다. “미안합니다. 그들은 방켄 사마(번견 님)입니다.” 조롱이다. (1966년 3월 18일, 제51회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 의사록)

반미적인 야당 의원의 발언이 아니었다. 자민당 지도자 중 한 명인 시이나 에스사부로(椎名悅三郞)의 발언이었다(Kenneth B. Pyle 著 <강대국 일본의 부활 Japan Rising> 2008, 한울). 일본 정치인들이 아무리 한국에 망언을 해도 우리를 개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만약 그랬다간 일본 대사관에 화염병이 날아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국은 조용히 넘어갔다. 물론 이면으로는 조용했을 리 없다. 아마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미국에 사과를 하느라 난리를 쳤을 것이다.

미국이 그럴 수 있었던 건 힘과 함께 그 실력만큼의 여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런 정도로 배짱을 가질 만큼은 못된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는 약소국 콤플렉스에 마냥 젖어 있을 만큼 허약하진 않다.

게다가 우리는 여전히 세계 1위국인 미국과 강력한 동맹이며, 3위로 밀려났다지만 여전히 막강한 국력을 지닌 일본과도 단단한 결속을 만들 수 있다. 세계 1, 3위국을 등에 업은 동맹이라면 지구상 최강동맹 아닌가? 이 국제정치적 행운을 걷어차야 하나? 행운이든 불운이든 결국 스스로 마음먹기 달렸음은 개인이나 국가나 다를 게 없다.

이강호 편집위원·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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