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의 숨은 강자, 베트남이 꿈틀댄다
동남아의 숨은 강자, 베트남이 꿈틀댄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3.09.1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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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무더위가 가시기 전인 8월말, 굳이 남방의 베트남 호치민市를 방문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 영국 이코노미스트誌의 표현을 빌리자면 - '자본주의를 열망하는 공산주의자들(ardently capitalist communists)'의 나라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1주 뒤 이곳을 국빈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은 베트남의 정치, 경제 상황과 한국-베트남 관계와 미래에 대한 필자의 호기심을 한층 더 자극했다.

우선 내심 가장 궁금해진 점 하나.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9월 7~11일 하노이와 호치민시를 방문해 40년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내린 베트남 파병 결정에 대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줘서 미안하다"고 말해 역사 논란을 불러오지 않았던가.

물론 이러한 발언이 국익을 위해 필요한 외교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평소 마오쩌둥과 호치민을 존경해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4년 베트남 방문 당시 발언, "우리 국민들은 (베트남 국민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말을 보면 '불의했던 베트남전쟁'에 대한 앞선 두 대통령의 비슷한 역사 인식이 읽혀진다.

'미국전쟁'

베트남인들은 우리가 아는 베트남전쟁을 '미국전쟁(American War)'이라고 부른다. ‘베트남 민족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미국 제국주의의 압제와 침략에 맞서 싸운 성전’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명소로서 매년 50여만명의 관람객이 찾는다는 호치민시내 전쟁박물관(War Remnants Museum). 섬뜩함과 음산한 기운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머리카락이 쭈뼛해지고 머리가 아프고 무거워져 가학적 호기심이나 취재 목적만 아니라면 그냥 나와 버리고 싶을 정도다. 일행은 밖에서 기다린다.

전쟁 당시 미군이 정보부로 사용했다는 박물관 건물 앞에는 ‘호랑이 우리’로 명명된 전쟁 당시 베트콩 정치범들의 감옥과 고문시설, 머리를 자르는 길로틴, 모골이 송연한 족쇄가 채워진 정치범 인형 등이 전시돼 있다.

이어 건물로 올라가보니 미군이 저질렀다는 온갖 ‘전쟁범죄’의 기록들이 있다. 미군 병사가 베트콩 게릴라의 잘려진 목을 들고 미소 짓는 사진, 발가벗겨진 여성의 시체사진과 ‘베트남 애국자’의 해골을 지프 위에 꽂고 다니는 미군 사진, 방부제를 넣은 유리병에 담긴 태아 등이 ‘승전국’ 베트남 공산정권의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마치 사진으로만 본 평양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쯤되면 역사박물관이 아니라 가히 프로파간다 박물관이다. 관람객들의 대부분은 ‘쇼킹’한 표정으로 비장감과 ‘미국의 만행’에 대한 분노에 젖어 있는 듯하지만 그러한 가운데 간혹 냉정하고 떨떠름해하는 얼굴들도 눈에 띄는 걸 보면 필자만이 외톨이는 아닌 것 같다.

사람 반 오토바이 반, 베트남의 미래

60,70년대와 같은 조잡한 박물관 건물을 나오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베트남 도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끊이지 않는 오토바이의 물결,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다.

활기찬 사람들과 시장, 공사 중인 건물들, 일류 브랜드 간판이 걸린 백화점 등이 매캐한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의 연기와 혼재한다. 베트남人 가이드에 따르면 호치민시의 900만 인구 가운데 등록된 오토바이 숫자가 700만~800만대에 이른다고 한다. 사람 반, 오토바이 반이다. 베트남 가이드는 “베트남인 30%만 공산당을 지지하고, 70%로는 반대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지리적으로 보면 베트남은 중국와 아세안으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다. 중국, 쿠바, 라오스, 북한 등과 함께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1986년의 이른바 ‘도이모이’ 정책 이후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면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2000년 이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국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고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우리나라와 2009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체결했다.

양국 교역규모는 지난 20년간 40배 이상으로 늘었고 베트남은 우리에게 동남아에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큰 수출시장이 됐다. 한국은 일본 대만 싱가포르에 이어 베트남의 4대 투자국이며 건수로는 1위다.

한‧베트남 FTA 체결이 논의되고 있고 원자력 협력, 과학기술 및 에너지 자원 등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놓여 있다. 인도 및 ASEAN 국가들과 함께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픈 과거와 이념의 차이를 극복할 필요가 여기 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이 이 남방 국가에 4박 5일간이나 머무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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