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당시 어느 날. 한 대학생 모임 초청으로 ‘미국 신보수주의 운동’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나오는데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짙은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갑자기 어깨를 잡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변절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아니 공포감을 느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잡은 손을 뿌리치고 방어자세를 취하자 이 사람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으며 “나야, 나”라며 환하게 웃는 것이었다. 솔직히 얼굴을 확인하고도 긴장감을 풀지 못했다. 이른바 ‘옛 동지’인데 좌익운동권의 핵심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이 ‘친구’는 “혼자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끼리 너무하는 것 아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비밀리에 얘기하기 좋은 노래방
우리는 인근 삼겹살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어색함은 계속됐다. 서로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상 위에 소주병이 3병째 올라왔을 때 비로소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서로가 알고 있던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주된 화제였다. IT산업에서 대박을 터뜨려 새끼재벌이 된 A선배 이야기, 처가의 반대로 결혼식도 못 올렸다가 최근 3급 공무원으로 특채돼 장모에게 처음 인사갔다는 B선배 이야기, 이혼했는데 다시 뭉쳐 사는 C와 D의 이야기 등등.
이 친구는 자리를 노래방으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노래방만큼 싼 비용에 은밀한 이야기를 할 만한 장소도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이 친구는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맥주를 몇 병 주문한 뒤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흘러간 80년대의 노래들이었다. 운동가요도 몇 곡 불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으며 엉엉 우는 것이었다.
“네 말이 다 옳아. 사회주의는 실패했어. 다시 성공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해. 그러나 나는 이대로 살 거야. 20년 넘게, 30년 가까이 이 생활을 해 왔는데… 이제 너처럼 변절한다면, 내 삶은 뭐가 되지… 이 판에서 존경도 받고, 생활도 유지하고 있는데… 이대로 살다가 죽을 거야…”
그후 이 친구를 개인적으로 만나 본 적이 없다. 단지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이 친구의 근황을 엿볼 수 있는 따름이다. 지금도 ‘그 세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한 후배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기러기 아빠’가 됐다고 한다. 그 친구 와이프도 열혈 운동가였는데… 자식과 함께 캐나다에 가 있다고 한다.
최근 이석기 RO내란음모 사건이 터지자 “아직도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심지어 무장투쟁 준비를 운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이비 종교에 미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하곤 한다. 또 “아직도”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대학가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의해 점령당해 있었다. 골수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사상에 어느 정도 감염돼 있었던 것이 당시 대학가의 현실이었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북한의 잔혹한 현실이 드러남에 따라 골수 운동권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삶의 공동체에 가까운 집단
또 많은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현실에 적당히 풍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골수집단은 폐쇄적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끝까지 자신들의 순결성(?)을 유지해 나갔다.
이러한 집단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이념과 사상 혹은 이데올로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이비 종교집단이 그러한 것처럼 이들 집단은 이들의 ‘삶의 공동체’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독특한 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인간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따라서 가장 무서운 처벌 중의 하나가 ‘왕따’이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신도들은 사이비 종교 공동체에 심리적으로 종속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심리적 종속’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마약 중독자가 마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못지않게 힘들다. 또 이 ‘생활공동체’는 단순한 심리적 공동체가 아니다. 이번 이석기 RO사건에서 보여주듯 이들 공동체는 ‘말씀’ 뿐만 아니라 ‘빵’도 제공한다. 이석기가 운영하는 선거기획회사 CNP를 통해 자금이 ‘RO 공동체’에 뿌려졌던 것이다.
물론 북한 공작금도 상당히 포함돼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RO 성원의 많은 인원이 지방자치제 선거에서의 야당 공조를 통해 지방자치제 단체 및 그 유관 단체에 대거 취직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석기의 지도력은 ‘이념’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돈줄’과 ‘취직줄’이 지도력의 주요 바탕인 것이다. 심지어 조직의 중매로 결혼한 쌍도 여럿이었다.
또 “어느 사회에나 ‘똘아이’나 ‘사이비 종교집단’이 있으며 따라서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불과(!) 130명 정도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첫째, 소련 볼셰비키 혁명도, 쿠바 혁명도 극소수의 정예요원에 의해 일어났다. 둘째, 최근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를 분석해 보면 극소수에 의해 테러가 얼마나 가공할 사태를 만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셋째, 이들 소수 광신도 집단이 정치사회에서 고립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특정 정치세력을 ‘숙주’로 삼아 생존·성장·번식하고 있다. 이러한 숙주가 계속 존재하는 한 이들의 현실적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넷째, 가장 중요한 지점인데, 북한의 존재다. 사실 북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무시해도 될지도 모르겠다. 북한이 무력도발한 상태에서 이들이 후방에서 주요 통신선과 교통망을 교란시키고 게릴라 투쟁을 전개한다면 그 파급력은 상상력을 뛰어넘을 것이다.
이번 이석기 RO 사건과 관련, “내란음모를 130명이 한 자리에 모여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지하혁명조직이라면 3∼4명으로 구성된 세포조직에 의해 움직여야 되는 것 아니냐”며 국정원 발표에 의구심을 표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80년대 학생운동에 관여했던 사람들 중에 아는 척을 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첫째, 1990년대 이후 주사파의 조직 원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위조직과 대중조직
1980년대 레닌주의 조직 원칙에 입각한 좌익지하운동세력은 조직의 기본형태를 ‘전위조직’(VO, vanguard organization)과 ‘대중조직’(MO, mass organization) 2가지로 분리해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원론에 입각해 이른바 ‘레닌주의 전위당’을 건설하는 일에 힘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주사파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원론적 조직론은 퇴색되게 된다. 우선 ‘전위당’ 조직에 대한 필요성이 약화됐다. 아니 ‘전위조직’은 ‘조선노동당’과 그의 지도를 받는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형태로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 주사파의 정통 입장이다. 따라서 “제대로 훈련되지도 않는 학생운동집단의 전위당 조직놀이는 대중으로부터의 유리를 자초할 뿐만 아니라 적들의 표적이 될 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조직노선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이른바 대중조직 건설에 혈안이 된다. 그러나 막연한 대중조직만으로 혁명을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 판단이었으며 이에 전위와 대중조직을 연결하는 이른바 ‘혁명조직’(RO, revolutionary organization)과 ‘혁명적 대중조직’(RMO, revolutionary mass organization)을 만들게 된다.
여기서 RO는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혁명조직을 말하며 RMO는 그 산하의 행동대 조직을 말한다. 그럼 전위는 누구인가? 민혁당 사건 등에서 보여 주는 바처럼 북한 조선노동당과 직접 연결된 조직이다.
둘째, 그래도 의문이 남을 수 있다. 90대 초반만 하더라도 RO조직은 엄격한 비밀조직으로 유지됐으며 소수 인원의 세포와 점조직으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RMO도 아니고 RO조직이 한 자리에 모여 총회를 하다니…
90년대 초반까지의 경험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조직형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특히 ‘전위조직’(VO)과 ‘대중조직’(MO)을 연결하는 중간조직의 경우 주어진 조건과 환경, 그리고 전략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조직이다. 과거 점조직 형태를 취했던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공안 당국의 조사가 치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김대중 정권 이후 공안 당국은 무력화되고 좌익조직 추적을 사실상 포기한다. 또 일심회, 왕재산 사건이 보여주듯 설령 검거된다 하더라도 그 형량은 솜방망이다. 주동자라 해 봐야 겨우 징역 2∼3년이다. 그나마도 형기를 다 채우지도 않는다. 각종 특사와 형기간 단축 및 감면으로 나온다.
또 하부 성원들은 구속조차 되지 않는다. 단순 시위 주동만 하더라도 징역 2∼3년을 살아야만 했고 조직사건 주범일 경우 무기징역 혹은 최소 징역 10년을 살던 과거와는 현저히 다른 상황이 된 것이다.
셋째, 세월이 흐르면서 기존의 점조직에 의한 조직원 관리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었다는 점도, RO단위에서의 총회를 개최하게 만든 이유이다.
사이비 종교집단이 그러하듯이 현실과의 이론적 정합성이 깨져 나가는 가운데 소규모 비밀 세포만으로는 ‘조직적 긴장감’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 이게 이들에게 이들의 ‘단합대회’ 혹은 ‘부흥회’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이 공안 당국의 약화와 결부되면서 과거의 조직원칙과 부합되지 않는 ‘RO총회’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RO조직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다가 이석기에게 질책을 당했다는 이야기에서도 ‘조직적 긴장감’ 문제를 엿볼 수 있다. RO조직의 위장 명칭이 ‘동창회’ 혹은 ‘산악회’ 등으로 사용되는 점도 이러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넷째, 이번 이석기 RO 내란음모는 북한의 전쟁도발 위협을 ‘실제적’으로 해석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북한의 정전협정 폐기를 ‘실제적 전쟁 가능성’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사이비 종교집단의 말세론과도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들 나름대로는 6·25 당시의 보도연맹사건과 유사한 일이 재발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종말을 대비하면서 ‘천년왕국’을 맞이하려 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이석기 RO 사건과 관련, “이번 사건으로 종북세력은 종언을 고할 것”으로 분석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데 이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이번 이석기 RO조직을 보면 참석자는 130명이었지만 전체 인원은 대략 200명 선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RO가 이석기 조직 하나 뿐인가”라는 문제이다. 우선 통진당의 주요 계보는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 그리고 울산연합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골수 주사파의 실태는?
경기동부연합이라는 RMO을 바탕으로 조직된 RO는 이번에 드러났다. 논리적으로, 또 주사파의 조직원칙으로 미뤄 볼 때 광주·전남연합과 울산연합 등에도 이번에 드러난 이석기 RO와 유사한 형태의 RO가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RO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왕재산 사건 당시에도 인천지역에 약 200명 정도로 구성된 무장폭동준비 조직이 있었음이 밝혀진 바 있다.
여러 가지 사실들을 추론해 볼 때 골수 주사파는 지역단위를 기본으로 200명가량으로 구성된 RO로 조직돼 있으며 이러한 RO는 대략 5∼6개 정도는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러한 RO 구성원을 핵으로 하는 보다 광범위한 형태의 행동대 RMO가 정당·노동조합·시민단체 등과 같은 대중조직을 숙주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RO는 ‘전위조직’(VO), 즉 북한 조선노동당과의 연계조직에 의해 조종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이석기 RO조직 사건과 관련, 더글라스 하이드(Douglas Hyde)의 <헌신과 리더십>(Dedication and Leadership)을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하이드는 영국 공산당 핵심요원으로 활동하다가 가톨릭으로 전향, 반공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이 책은 하이드가 공산당의 조직원칙과 원리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하이드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은 “사람들의 심장, 마음 그리고 영혼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규정한다. 젊은이들은 이상주의적 경향을 띠며 이러한 경향을 이용, 공산주의자들이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정신적 굶주림’(spiritual hunger)을 느끼기 쉬우며 이 지점을 공산주의자들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당 조직 원리에 대해 쉽게 해설해 놓은 책인데 마르크스 책을 읽고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공산주의자가 된 다음에 마르크스 책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극소수의 이론가를 제외하고는 이론보다는 행동을 먼저하고 그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론을 받아들인다는 ‘이론-실천’ 원칙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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