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을 소개합니다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8.3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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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로젠탈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읽고
 

2008년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워싱턴 DC에서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관광 차원에서 잠시 들렀었다. 그런 만큼 여유가 있었으며 망중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공원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데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추는 백인 할머니들을 볼 수 있었다.

노래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귀에 익은 러시아 민요였다. 또 이들은 러시아와 영어가 섞인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러시아 할머니들인가? 말을 걸어 보았다. 알고 보니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 내전 당시 러시아를 떠나온 러시아계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이었다.

러시아어로 대화하다가 기억하고 있던 이디시어(Yiddish language · 중부 및 동부 유럽 출신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몇 단어를 사용했다.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유대인이냐”는 질문도 받았다. “아니다”라는 말에 다소 실망하는 표정을 엿볼 수 있었다. 어쨌든 이날 술과 음식 접대를 융숭하게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을 뛰어넘는 유대인들의 교육열

몇 단어나마 이디시어를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1992년 러시아 유대인 집에서 하숙을 한 경험 덕분이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기숙사에 있다가 식량 구하기가 힘들어서 식사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방 한 칸을 임대한 적이 있는데 군의관 대령 출신의 유대인 집이었다.

처음에는 유대인인 줄 몰랐다. 돼지고기도 먹는 세속화된 유대인으로서 러시아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자유분방한 다른 러시아인들과 달리 자녀 교육이 매우 엄격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의대생 딸이 있었는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오후 6시까지는 귀가해야만 했다. 그리고 과외 열풍이란 것이 결코 한국 극성엄마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극성 유대인 아버지 덕분에 유대인 딸은 영어, 피아노, 바이올린, 피겨 스케이팅, 발레 등의 과외를 유치원 때부터 받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특수한 사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하숙집 유대인의 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실은 유대인들의 강한 친척 유대관계 때문에 알게 됐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었다. 유대인 설날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였던 것이다. 4촌, 6촌 심지어는 8촌에 해당되는 사람들까지 모였다. 일부 노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말을 러시아어에 섞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히브리어인가 생각했다. 이디시어였다. 그리고 정작 히브리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의 주된 화제는 자녀 교육문제였다. 누가 어느 대학 무슨 과에 들어갔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으며 누구 아들이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말에 서로 축하하고 또 부러워하는 분위기였다. 모름지기 유대인은 최소한 4가지를 배워둬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외국어 하나, 악기 한 가지, 운동 한 종목, 그리고 전문기술이나 지식 한 가지를 배워둬야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유대인 없는 곳이 어디 있느냐”

1990년대 러시아에서 반(反)유대주의(anti-Semitism)에 직면한 적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유대인 집에 하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일부 러시아인들은 “너 혹시 한국계 유대인이냐?”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한국에는 유대인이 없다”는 대답에 반유대주의 러시아인들은 “세상에 유대인이 없는 곳이 어디 있느냐”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왜 그렇게 유대인을 싫어하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유대인 교수, 유대인 의사, 유대인 언론인은 흔해도 어디 유대인 노동자를 볼 수 있느냐”며 “1%도 안 되는 유대인들이 금융, 언론, 대학, 문화계를 장악하고 흔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모스크바 특파원을 하면서 느낀 체감온도에 따르면 금융계와 언론계의 주요 직책의 50% 이상이 유대인이었다. 반대로 군이나 경찰에서 유대인을 찾아보기란 정말 힘들었다.

1970년대 어린 시절 이스라엘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적 국가 중 하나로 간주됐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와 여러 언론매체에서 접한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골리앗에 둘러싸인 다윗이었다.

1967년 6일전쟁과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당시 해외 유학 중이던 유대인 청년들이 참전하기 위해 귀국을 서둘렀다는 애국적 미담, 새마을운동의 귀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스라엘 키부츠의 협동정신,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다’는 강력한 이스라엘 예비군 이야기 등은 우리 한국이 따라 배워야 할 모범사례로 교육됐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이후 친이스라엘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미운동이 강화되면서 이스라엘은 ‘아랍 민중을 탄압하기 위한 미(美)제국주의의 도구’로 비난받기 시작한 것이다.

또 좌경화의 확산과 더불어 이스라엘은 더 이상 거대한 아랍으로부터 위협당하는 ‘다윗’이 아니라 불쌍한 팔레스타인을 핍박하는 ‘골리앗’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현재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연대를 자처하는 여러 시민단체(?)가 등장, 반(反)이스라엘 시위 등 각종 활동에 열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한국에서의 일반적 정서는 양비론에 가깝다. “양쪽 다 한 걸음씩 양보하면 될 텐데…”라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스라엘 측에도, 요르단강 서안(West Bank)을 ‘유대와 사마리아’(구약 시절 이스라엘 왕국이 위치해 있던 지역은 현재 이스라엘 영토보다는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가깝다)라 부르면서 이 지역의 절대 사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주의적 이스라엘인은 소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현실주의적 인구학적 관점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을 독립시켜 주지 않고 이스라엘에 합병시킬 경우 향후 출산율이 높은 아랍계가 다수가 돼서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로 전환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2개의 국가론’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반면 ‘자궁의 전쟁’(the war of the wombs)에서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측의 입장은 강경하다. 팔레스타인 측, 특히 강경파인 하마스(Hamas)가 제작한 지도를 보면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모든 이스라엘 영토가 팔레스타인 영토인 것이다. 또 이들은 이른바 ‘3No 정책’(No Recognition, No Negotiation, No Peace)을 고수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국의 양비론자들은 사실상 이스라엘 측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민낯’

 

최근 우리 구트만(Uri Gutman) 이스라엘 대사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도나 로젠탈(Donna Rosenthal)이 쓴 <이스라엘 사람들>(The Israelis)을 읽었다. ‘기이한 나라의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 In an Extraordinary Land)이란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일상화된 테러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카추샤 베이비’(Katyusha Babies)란 말이 나온다. 이는 레바논 시아파 무슬림 헤즈볼라의 카추샤 로켓 공격 당시 태어난 아이가 많아 생긴 신조어라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종족보존의 본능이 발동된 것이다.

또 군대 이야기도 나온다. 잘 알려진 바처럼 이스라엘에서는 여자도 군복무가 의무이다. 유대인 남자와 드루즈 남자는 3년, 유대인 여자는 2년 의무 근무해야 한다. 덕분에 이스라엘인의 연애가 군대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하레딤(Haredim)이라 불리는 초정통주의(Ultra Orthodox)파 유대인들은 군복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 다른 유대인들과의 갈등도 심하다고 한다. 또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인지, 이른바 ‘카푸치노 세대’(cappuccino generation)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자란 구세대와 달리 ‘카푸치노 커피’에 익숙한 신세대의 애국심이 예전과 같이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병역기피율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스라엘은 ‘한 민족, 다 부족 사회’(One Nation, Many Tribes)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주류인 유럽계 유대인 아슈케나짐(Ashkeazim), 이슬람지역에서 아랍어 혹은 페르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다가 이스라엘 독립 이후 쫓겨 온 미즈라힘(Mizrahim), 소련 붕괴 이후 몰려들어온 러시아계 유대인들, 에티오피아 유대인 등 정말 다양한 형태의 유대인 이야기가 나온다.

1948년 현재 이라크 바그다드 인구의 1/4이 유대인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독립 이후 이라크 땅을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은 유대인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다. 인구의 20% 정도는 아랍계 이스라엘인(Israeli Arab)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구성도 매우 다양하다. 이들의 대부분은 무슬림이지만 기독교 아랍인(주로 정교회 계통)과 독특한 종파인 드루즈(Druze)도 있다.

한 아랍어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논문 준비는 잘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필자는 2009년 한국외대 아랍어과에 학사편입해 졸업한 뒤 현재 동대학원에서 아랍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대화 도중 이스라엘 대사와의 인터뷰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필자를 아끼는 이 교수는 “연구를 위해서는 아랍국가도 방문해야 하는데… 이스라엘과 친하다고 알려지면 곤란한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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