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종이슈 촉발 짐머만 사건, 그 후
美 인종이슈 촉발 짐머만 사건, 그 후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3.08.09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7월 20일 조지아 애틀란타에서 열린 짐머만 무죄판결 항의 집회에 참석한 흑인들.

“무엇을 원하십니까?” “Justice”(정의)
“언제 원하십니까?” “Now”(지금)

20일 정오 조지아 애틀란타 시내 연방정부 빌딩 앞에 모인 수천명의 흑인들은 연사의 질문에 한 목소리로 “정의”와 “지금”을 반복해서 대답했다.

지난 2월 플로리다 샌포드에서 비무장한 17세 흑인 청소년을 사살한 히스패닉계 백인인 조지 짐머만이 지난 13일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것이 부당하다는 비난이었다. 어떻게 29세 성인인 짐머만이 17세 청소년을 총으로 쏴 죽였는데 처벌을 하나도 받지 않고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느냐며 정의가 실종됐다는 외침이었다.

이들은 민사소송을 해서라도 짐머만은 처벌을 받아야 하고 무죄석방의 근거가 된 ‘Stand Your Ground’(정당방위법)는 폐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tand Your Ground’는 플로리다를 비롯 미국 내 30여개 주에서 발효되는 법으로 어떤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도망가지 않고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자율방범대원이었던 짐머만은 지난 2월 저녁 아버지의 여자 친구 집으로 돌아가던 트레이번 마틴을 수상하게 보고 경찰에 신고한 후 추적했다. 그러다 둘 사이에 몸싸움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짐머만이 쏜 총에 마틴이 사망했다.

이 사건을 3주간 배심한 6명의 여성 배심원들은 몸싸움 과정에서 마틴이 짐머만의 뒷머리를 땅바닥에 수차례 찍는 등 짐머만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이 분명하다며 이 상황에서 짐머만이 총을 발사한 것은 정당방위라고 봤다.

흑인사회, 무죄판결에 분노

짐머만은 증오나 악감정을 갖고 저지른 살인인 ‘2급 살인죄’로 기소됐는데 재판 과정에서 짐머만이 마틴에 대해 이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배심원 모두는 무죄로 판결했다. 많은 흑인들에게 이 판결은 심정적으로 부당하고 억울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상처 때문이다.

지난 2월 이 사건이 발생한 후 플로리다 경찰은 짐머만을 체포하지 않았다. ‘Stand Your Ground’에 따라 짐머만의 행위가 위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인 청소년을 총으로 죽인 사람이 백인인데 경찰이 체포하지 않았다며 전국적으로 인종차별이라는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다른 주의 흑인들이 플로리다에 가서 시위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아들이 있었으면 트레이번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동조하면서 이 사건은 인종 이슈로 부각됐다. 플로리다 주정부는 짐머만을 긴급 체포했고 짐머만은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는 ‘2급 살인죄’로 기소됐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인종적 편견은 이슈가 되지 못했다. 연방수사국(FBI)은 조사 결과 짐머만은 평소 흑인들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밝혔고 5명의 백인과 한명의 히스패닉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짐머만의 인종차별에 대한 흔적이 없어 인종 이슈는 배심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흑인들은 이번 사건을 흑백 차별의 인종 이슈와 결부시키고 총에 맞아 죽은 청소년이 백인이었으면 판결이 달랐을 것이라며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스탠퍼드대 마틴 루터 킹 목사 연구소의 로버트 프랭클린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인종 이슈가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종 이슈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흑인인 프랭클린 교수는 지난 19일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좋은 예라고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예정에 없이 참석한 백악관 기자 브리핑에서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흑인사회가 이 사건을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경험과 역사를 통해 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인 그는 “트레이번 마틴은 35년 전의 나일 수 있다”며 자신이 겪었던 인종적 편견을 소개했다.

“미국 내 흑인들 가운데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때 누군가 따라오며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경험을 안해 본 사람은 없다. 나도 그 중 하나다. 흑인들 가운데 거리를 걸어가다보면 차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어본 경험을 안한 사람이 없다.

내가 상원의원이 되기 전까지 그 일은 내게도 있어 왔다. 흑인들 가운데 엘리베이터를 타면 같이 탄 여성이 자신의 지갑을 꼭 쥔 채 문이 열릴 때까지 숨을 죽이고 서 있는 경험을 안해 본 사람이 없다. 그것은 지금도 자주 일어난다.”

‘인종편견은 흑인 탓’ 반성론도

그는 “이것을 과장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이 흑인 사회가 플로리다에서 한 밤에 일어난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밝힌 흑인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이 미국사회에서 계속 남아 있는 것은 흑인들 탓도 있다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흑인 평론가인 제이슨 라일리는 흑인들이 미국사회에서 범죄를 많이 저지르고 있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라일리는 “미국 전체 인구의 13%인 흑인들은 1976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 자행된 살인의 절반을 저질렀고 강도 등 다른 범죄로 인한 흑인들의 체포율은 다른 인종보다 2~3배 높다. 살인율은 백인에 비해 7배가 높으며 흑인에 살행당하는 사람의 90%가 같은 흑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부에서 그 원인을 두고 개인 책임보다 백인의 인종차별이나 제도를 탓하고 있다”며 “하지만 흑인 청년들의 행동이 바뀔 때까지는 그들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일리는 흑인 인권운동의 아버지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1961년 집회 연설을 소개했다. “흑인은 세인트루이스 인구의 10%에 불과한데 그곳 범죄의 58%을 자행하고 있다. 백인 세계에 잘못된 것이 많다. 하지만 흑인사회에서도 잘못된 것이 많다. 우리는 백인들만 계속 탓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날 집회에서 연사들은 짐머만 판결의 부당성과 함께 흑인들의 높은 범죄율과 학교 중퇴율을 소개하며 자녀들에 대한 교육, 기업가 양성, 지역사회 참여, 비만 제거를 위한 운동 활성화,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 등을 강조했다.

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