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이념 전사 집단’이다!
국정원은 ‘이념 전사 집단’이다!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6.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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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토마스의 <기드온의 스파이>를 읽고
 

1980년대 좌익 학생운동권은 일명 ‘여왕봉 교육’이라 불리는 핵심간부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보통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실시됐는데 이 교육 프로그램은 이른바 뛰어난 투쟁경력과 이론역량을 갖춘 소수의 운동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에 앞선 운동권 교육의 대부분이 주로 “왜 싸워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이 과정은 이미 “왜 싸워야 하는지를 잘 아는 핵심 멤버”를 대상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가르치는 코스였다.

선발과정 자체가 매우 엄격했던 관계로, 선발된 ‘여왕봉 후보자들’은 일반 학생은 물론 보통 운동권 학생들과도 구별된다는 ‘선민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교육 기본과정은 조직론, 선전·선동론, 투쟁론 등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투쟁론 중에는 ‘대적(對敵) 투쟁론’이란 과목이 있었다. 이 과목을 통해 무인 포스트 설치 및 이를 통한 연락(혹은 접선) 요령, 미행 따돌리기, 안가(safe house) 유지 및 운영 원칙, 법정 투쟁 원칙 등을 학습했다.

이때 교육받은 내용 중에 생각나는 것의 하나는 미행 따돌리는 방법 중의 하나로, 고급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뒤를 밟힌다는 느낌이 들면, 미리 사전에 답사해 놓은 후문이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잠시 기다렸다가 후문으로 빠져 나오는 방식이다.

운동권 학생이 고급 레스토랑으로 가야만 했던 이유

이 간단한 방식이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미행자가 예산관계(!)로 고급 레스토랑으로 쫓아 들어오는 것을 꺼렸으며 또 설령 쫓아 들어온다 해도 분위기와 복장 때문에 금세 눈에 띄기 때문이다.

당시 교육자가 한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동지들! 적들도 활동비 부족으로 고생하는 것은 마찬가지요.” 이 이야기를 작년 어느 모임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들에게 해주었더니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었다.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 구(舊) KGB 요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파리의 어떤 박물관에서 접선을 하게 돼 있었는데 입장권 가격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표를 사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본사(KGB)의 경리 아가씨 얼굴이었다. 영수증 처리해 달라고 표를 내밀면 ‘안 돼요’라고 매몰차게 말하는 모습이…”

이 교육과정에서 가장 강조된 것 중의 하나는 체포된 이후의 투쟁 요령이었다. 취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리고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이뤄졌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짜로 강조된 부분은 “왜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투쟁을 해야 하느냐”였다.

교육자의 말을 빌리자면 ‘법정투쟁’은 적들에 대한 “출혈 강요투쟁”이다. 끝까지 혐의를 부정하고 증거제출을 요구하라는 것인데 이 경우 “적들이 증거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어떻게 노출되게 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또 ‘두더지’(조직 내부의 제보자)도 색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증거제출을 강요하면 할수록, 공안조직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미국 FBI는 친소 좌익세력이 소련 첩보조직과 연결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감청 및 이에 대한 암호해독을 통해 확보했음에도 불구, 이를 법정자료로 제출하지 않은 적이 있다. 제출하면 암호가 해독됐다는 사실을 소련 정보기관에게 알려주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소련 간첩으로 활동한 일부 미국인들이 기소를 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매카시즘 운운하며 인권탄압의 희생자가 된 것처럼 행세하기도 했다.

다른 예로, 송두율 간첩사건 당시 증거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노력을 기울여 구축해 놓았던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유럽 정보망이 대거 노출·와해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국정원 심리정보국이 전격 폐지되고 원세훈 전(前) 국정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야말로 북한 및 종북세력의 국가정보기관 와해 및 무력화 공작에 말려들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정치적 중립’이란 말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둘러지고 있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이란 국정원이 대한민국 헌법적 질서 하에 있는 정치인이나 정파 사이에서 특정 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대한민국’과 ‘반(反)대한민국’ 사이의 중간지대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작요원의 주된 임무는 ‘리쿠르팅’

국정원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정보기관이며 또 그러해야만 한다. 그런데 국정원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옹호하고 이를 파괴하려는 북한 공산당 및 그 추종 종북세력과 투쟁하려 하면 이를 정치개입 혹은 정치중립 위반으로 해석하는 정치세력이 있으니 “도둑놈이 자기 발 저린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적’들의 국정원 와해공작에 놀아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든 토마스(Gordon Thomas)의 <기드온의 스파이>(Gideon's Spies)를 읽어 봤다. 무려 7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이었건만 워낙 박진감이 넘치고 흥미로워 단숨에 읽어 버렸다. 이 책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역사책이다.

1951년 창설부터 최근(2008년)까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이 책에는 세계 첩보사의 신화와 같은 존재가 된 엘리 코헨(Eli Cohen)이나 모사드의 비밀 암살조직인 키돈(kidon) 등과 같은 첩보영화에나 나옴직한 이야기들도 나온다.

그러나 이 책의 주된 이야기는 우리가 007영화 등에 나옴직한 슈퍼 액션 스타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모사드의 주된 활동은 액션 영화에 나오는 폭파·암살과 같은 비밀공작(covert operation)이 아니다.

공작요원(case officer)의 주된 임무는 정보제공자를 ‘리쿠르팅’(recruiting)하고 이를 통해 정보를 확보해 내는 일이다. 정보제공자를 ‘리쿠르팅’하는 방법은 대략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념이고, 둘째는 돈이고, 셋째는 약점을 통한 협박이다.

이 가운데 가장 저비용 고효율 방식이 이념을 통한 방식이다. 돈을 통한 매수는 믿을 수 없다. 더 많은 돈을 제공하겠다는 역공작에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사드의 힘은 바로 이러한 ‘이념에 의한 리쿠르팅’ 풀(pool)이 전 세계에 널려 있다는 점에 있다. ‘사얀’(sayan)이라 불리는 ‘자발적 유대인 협조자’들이 모사드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대국가 이스라엘 수호’라는 이념 하에 돈을 받기는 커녕 심지어는 자기 개인 돈을 써가면서 모사드를 돕는다. 따로 현지 언어를 훈련시켜 침투시킬 필요도 없다. 이미 현지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발적 정보 제공자의 광범위한 풀을 가지고 있었던 또 다른 대표적 조직이 소련의 KGB와 GRU였다.

국정원 직원이 ‘7급 공무원’된 현실

전 세계에 퍼져 있던 공산주의자 혹은 용공주의자들이 이 정보망의 잠재적 풀이었다. 리쿠르팅을 하기 위해 접근했다가 거절당하더라도, 최소한 신고하지 않는 것이 이들 ‘이념적 협조자’들이었다. 이러한 대목을 읽으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광범위하게 양성된 주사파 인사들이 북한 간첩조직의 망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경원시됐던 1980년대와 달리 요즘 국정원은 대학생들에게 인기 직종의 하나로 자리 잡아나가고 있다. 국정원 입사 준비 학원이 성업을 이루고 있을 정도이다. 얼핏 보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전사(戰士)로서가 아니라 안정된(?) ‘7급 공무원’으로 국정원 요원이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정원 공채 시험 준비 학원에 출강한 전(前) 국정원 요원이 “국정원을 첩보영화에 나오는 스파이로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하는 일의 대부분은 일반 공무원하고 다르지 않습니다”라면서 홍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첩보영화를 통해 인식된 국정원 요원의 모습은 왜곡된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을 ‘이념 없는’ 관료조직으로 이해하거나 이해시키려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국정원은 무(無)이념 혹은 탈(脫)이념 조직이 아니며 또 그렇게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 국정원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이념 전사 집단’이어야만 한다. 또 현재 자유민주주의를 다원주의라는 미명 하에 몰가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다원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세력을 다원주의 틀 안에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망원이나 협력자를 리쿠르팅할 때도 ‘이념’이 가장 믿을 만한 기준이 된다.

하물며 이들을 관리하는 요원들의 경우는 더 그러해야 한다. 국정원 요원 리쿠르팅이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념’인 것이다. 또 국정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기’(士氣)이다. 특히 어느 때보다도 요원들의 긍지와 사기 진작이 요구되고 있다.

모사드의 표어로 사용된다는 구약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리라”(잠언 11장 14절)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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