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벼랑 끝의 국제중학교
죽느냐 사느냐, 벼랑 끝의 국제중학교
  • 이원우
  • 승인 2013.06.17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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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아들 입학 의혹에서 존폐 논란에 이르기까지


지난 1월 22일 ‘영훈국제중학교’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창에 등장했다.

2008년 국제특성화중학교로 지정된 이 학교는 국어, 국사 등 일부 교과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 작년부터 처음으로 졸업생이 나왔는데 전체 졸업생 중 40%가 특목고에 진학했다. 일반 중학교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전국 학부모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는 이 학교가 검색창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합격자 발표 때문인가 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영훈국제중학교의 2013학년도 신입생 160명에 대한 합격자 발표는 이미 작년 12월 22일에 완료됐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이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1월 하순 알려지면서 이 문제는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물론 이때에만 하더라도 이 문제가 국제중학교의 존폐 문제로까지 비화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년에 1000만원을 낼 수 있는데…

이 부회장 아들의 합격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입학의 방식 때문이었다. 영훈국제중학교가 신입생 160명을 뽑는 전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①일반전형(128명)과 ②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32명)이다.

①은 성적 위주의 전형이다. 3배수를 뽑은 뒤 공개추첨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한편 ②는 조금 복잡하다. 이 전형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가)경제적 배려대상자 전형과 (나)비경제적 배려대상자 전형이다.

(가)는 1년에 1,000만 원 선에 달하는 영훈국제중학교의 학비를 충당할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전형으로 장학금을 지급한다.

(나)는 경제적 문제보다는 가정적 문제, 즉 한부모 가정이나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마련된 전형이다. 탈북자‧장애인‧환경미화원‧군인‧경찰‧소방공무원‧순직자‧다자녀 가정 등에도 열려 있지만 장학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 아들의 합격소식이 여론의 공분을 샀던 것은 ‘사회적 배려’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이 표현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이 부회장이 가난한 아이들의 장학금을 빼앗았다는 느낌을 줬다.

그러나 애초에 이 전형은 경제적 배려와는 상관이 없다. 2009년 이혼한 이 부회장의 아들은 한부모가정에 해당되므로 (2)-(나) 전형에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학비를 낼 수 있는 지원자에게만 해당되는 전형이므로 다른 학생의 장학금을 가져간 것은 아니다. 이 자체만으로 이 부회장이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다만 영훈국제중학교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새로운 의문을 파생시켰다. 상식적으로 1년에 1,000만원을 낼 수 있는 한부모 가정, 탈북자 가정, 군인유공자 가정, 환경미화원 가정, 소년소녀가장이 그렇게 많다고 보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비경제적 배려대상자 전형이 합격자 수를 특정하지 않는 것도 불법입학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즉, 이 전형이 학교재단이 원하는 학생을 입학시키는 ‘통로’로 악용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서울시의회 교육의원들과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3월 국제중학교들에 대한 종합감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부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국제중학교에 대한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국제중학교는 대원국제중학교, 영훈국제중학교, 청심국제중학교, 부산국제중학교 등 총 네 곳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중에서 영훈국제중학교와 대원국제중학교 및 학교법인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지난 5월 20일 발표했다.

결과에서 드러난 부정입학의 방식은 다양했다. 두 학교는 합격자 선정 시 공정성 확보를 위해 인적사항이나 수험번호를 가리고 채점해야 하는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곧 일부 합격자를 미리 정해둔 채로 선발에 임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심지어 원하는 학생들이 합격권에 들지 못했을 경우 상위권 학생의 성적을 깎기도 했다.

성적 조작, 자료 폐기… 합격자 미리 정해두기도

조승현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서 미리 내정한 학생 중 주관적 영역에서 만점을 받았는데도 합격권에 들지 못하자 다른 지원자의 주관적 영역 점수를 깎는 방법으로 (대상 학생을) 합격시킨 정황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영훈국제중학교의 경우 일반전형 대상자에 대해서까지 교직원이 개입한 성적조작 정황이 밝혀지며 여론을 흔들었다. 대원국제중학교의 경우에도 특별전형 탈락자에게 일반전형 재지원 기회를 부여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장학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등 원칙에서 어긋난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감사 결과 발표 후 서울시교육청은 입시비리에 개입한 교감 등 관련자 1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10명에 대해서는 파면 등 중징계를 학교법인에 요구했다. 영훈학원 이사장에 대해서도 학교회계 집행에 부당하게 관여하거나 통제한 혐의로 임원취임 승인취소 처분 계획을 밝혔다.

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부 및 정치권과 서울교육단체협의회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은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국제중학교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야권은 이 여론에 적극적으로 편승에 법안 발의까지 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29일 “그동안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고 더욱이 봐주기 감사까지 해서 비리를 수수방관한 점에서 서울시교육청은 징계 대상”이라고 말했다.

정진후 진보정의당 의원과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국제중·고 및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를 골간으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와 여당도 영훈중과 대원중에 대해 국제중학교 지정 취소를 검토 중이다.

교육부 장관과 협의를 거친 뒤 국제중학교 지정 취소를 할 수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입장은 유보적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에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른 한편으로 교육청은 2015학년도부터 영훈‧대원 국제중학교의 신입생을 서류전형 없이 전원 추첨으로 선발한다는 내용의 ‘국제중학교 입학전형 개선 방안’을 지난 13일 발표했다.

과정상에서 노출된 일부의 문제점이 국제중학교, 그리고 자율형사립고라는 시스템 전체를 폐기할 명분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번 국제중학교 논란은 ‘자율 교육’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며 교육 문제에 공권력이 개입할 여지를 점점 넓히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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