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한 외교정책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해 8월 미일동맹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조셉 나이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아시아담당 국장, 빅터 차 CSIS 한국 국장 등 미 외교가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든 보고서라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관심이 컸다.
보고서는 일본은 지금 일류국가로 존속하느냐 아니면 이류국가로 떠내려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출생률 감소, 200%에 달하는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 6년 간 6명의 총리가 왔다갔다하는 정치적 불안정,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한 비관주의와 내부지향적 태도로 일본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 글로벌 비전을 갖고 국제이슈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류국가로 존속할지 우려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워싱턴 DC를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CSIS에서 이 보고서를 일컬으며 “일본은 이류국가가 결코 되지 않을 것”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돌아온 것처럼 일본도 돌아올 것”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침략 역사를 부인하는 망언을 하고 일본 정치권이 우경화되는 것을 보며 미국 정치권은 일본은 결국 이류국가로 전락하는 것인가 라며 크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CSIS보고서가 일본이 일류국가로 존속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제안한 내용 중 하나가 일본은 민감한 역사적 이슈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를 훼손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미일 3국의 긴밀한 협력이 북한의 핵위협을 억지하고 중국의 부상을 대응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외개발원조 등 국제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한일 양국이 역사적 이슈로 인한 긴장으로 정작 중요한 국제안보이슈에 힘을 모으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미국 정부는 한미일 3국이 별도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슈를 해결하도록 하는 등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실제로 지난해 12월 출범한 아베 내각의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동북아에 큰 논란이 발생하는 가능성에 대해 일본 정부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2월 일본을 방문해 일본 각료들에게 아베 내각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불편해하는 미국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베 총리가 침략 역사를 부인하는 망언을 하고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대거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감행하자 미국 정치권은 당황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아베 총리의 망언에 공식 항의는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주미 일대사관과 주일 미대사관을 통해 아베 총리의 발언이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을 야기할 것을 우려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불편한 심기’ 드러내
반면 미국 언론들은 공개적으로 아베 총리의 망언을 규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6일 “아베 총리의 ‘역사적 상대주의’ 발언은 미국 진주만 공습, 필리핀의 ‘바탄 죽음의 행진’, 중국 난징대학살 등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경악하게 할 것”이라며 “국제사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잔혹 행위를 오래 전 용서하긴 했으나 결코 잊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저널은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자 동맹이지만 아베의 망언으로 일본은 친구들을 다 잃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같은 날 사설에서 “한국·중국은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격분하고 있으며 이는 이해할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는 물론 늘 재해석되곤 하나 사실(fact)은 존재한다”며 “일본은 한국을 점령했고 만주와 중국을 점령했으며 말레이 반도를 침공했고 침략을 저질렀다는 것은 ‘사실’ ”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독일은 이미 수십 년 전 자신들의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현재는 유럽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며 “일본의 일부 정치권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다지도 어려운가”라고 반문했다.
번역 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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