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아십니까?
미국을 아십니까?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4.29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폴 존슨의 <미국인의 역사>를 읽고


미국을 처음 가 본 것은 2002년 1월이었다. 자동차 메이커 GM이 초청해 난생 처음 비행기 1등석을 타 보는 호사를 누리며 미국에 갈 수 있었다. 숙소도 매우 훌륭했다.

디트로이트 GM 본사 건물에 위치한 방문객용 호텔이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흔치 않던 인터넷 전용선이 방마다 깔려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영장, 헬스클럽, 각종 바 등 거의 모든 편의시설이 구비돼 있었다. 업무를 보기 위해 건물 밖을 나갈 필요도 없었다. 호텔이 위치한 건물과 GM의 주요 시설이 공중 모노레일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담배였다. 당시 하루 2갑 이상을 피우는 골초였다. 그런데 건물 전체가 금연이었다. 그리고 건물 자체가 워낙 크고 넓기에 건물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가려면 최소한 왕복 30분 이상이 소요됐다. 그야말로 “담배 끊는 놈이 독한 놈이 아니라 이 와중에도 담배를 계속 피우는 놈이 정말 독한 놈”이었다.

담배, 그 계급적 존재

GM 본사 건물에서는 담배 피우는 미국인들을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곳의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날씬했다. 그리고 매우 흔할 것으로 상상했던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스시와 두부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인의 이미지는 생산공장을 방문했을 때 완전히 무너졌다. 그곳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정상 체중으로 보이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다. 시가를 물고 있는 뚱보 부르주아와 깡마른 프롤레타리아트를 대비시켜 놓은 20세기 초의 공산당 선전 포스터와는 정반대로, 담배를 피우고 뚱뚱한 사람이 프롤레타리아트이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마른 사람이 부르주아였다. “유산자와 무산자가 아니라 피흡연자와 흡연자로 계급이 나눠진 것이 미국사회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다른 미국을 발견한 것은 GM 본사건물 생활에 지친 몇몇 기자들이 탈출 음모(?)를 꾸미면서였다. GM 관계자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권유했다. 특히 밤에는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 ‘로보캅’의 배경도시가 괜히 디트로이트인 줄 아느냐는 협박(?)도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내 구경 한 번 못하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쟁터도 전전했는데 디트로이트 밤거리쯤이야 하는 만용도 없지 않았다.

결국 기자 몇 명과 밤 10시쯤에 숙소를 벗어났다. 쉽게 택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오판이었다. 다니는 차 자체가 거의 없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골목길을 서성이던 흑인들이 우리를 보고 도망가는 것이었다.(우리를 베트남 갱 정도로 오인했던 것 같다!)

좌우간 길거리엔 사람이 없었으며 문을 연 곳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지나가던 택시 한 대를 세울 수 있었다. 택시기사가 데리고 간 곳은 스트립 바였다. 그런데 무희들이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아가씨들이었다. 그리고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없었다.

근육질의 백인 몇 명이 오더니, “잽, 고우 홈”이라고 외쳤다. 우리를 일본인으로 오인한 것인데… 사실 한국인도 그들에게는 마찬가지였다. 디트로이트 경제가 무너진 것이 일본(한국 포함) 자동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가 험악해짐을 느낀 우리는 도망치듯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이 모험담을 떠드니 GM 직원들이 놀라는 것이었다. “아니 당신들, 목숨이 몇 개쯤 되느냐”며 …

GM 연구소의 미국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첫 느낌은 ‘인종 전시장’이었다.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흑인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종은 러시아계 유대인들과 인도인들, 그리고 중국과 한국계였다.

한 연구원은 “미국이 위대한 것은 미국인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똑똑한 사람들이 미국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세기 후반에서 지금까지 약 150년 동안 세계의 주요 발명은 거의 모두 미국에서 이뤄졌는데 이는 재산권을 보호하고 창의력을 권장하는 미국의 정치 경제 시스템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Jap, Go home”

전기와 전구, 비행기, 고무, 전화기, 컴퓨터, 인터넷 등… 20세기 물질문명을 바꾼 위대한 발명은 거의 대부분 미국에서 발명되거나 TV, 자동차와 같이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미국에서 대중화를 이룩한 다음,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그후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새로운 미국을 발견하곤 한다. 한번은 뉴욕에서 기차를 타고 미국 남부로 여행한 적이 있다.

옆자리에 조그만 체구의 젊은 백인 여성이 앉았다. 이 여성은 자신을 뉴욕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했다. 다소 수다스러운 성격이었다.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이 여학생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가서 롱스커트로 갈아입고 나오는 것이었다. 고향에 다가왔다는 것이다. 뉴욕에서의 옷차림으로 고향에 내리면 “소돔에서 살더니, 저렇게 됐다고 손가락질 받는다”는 것이었다. 21세기 미국에서 이런 일도 있다니?!

하기야 새벽기도는 한국에나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착각도 무너졌다. 미국 아틀란타시(市)에서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야만 했던 경험도 있다. 미국하면 미국 드라마에 비춰진 뉴욕과 LA의 자유분방한(?) 삶을 연상하곤 했다. 그러나 뉴욕과 LA는 미국의 일부였을 뿐이다. 아니 아틀란타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뉴욕과 LA는 미국도시가 아니라 국제도시(cosmopolitan city)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코스모폴리탄’이란 단어는 매우 경멸적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진짜 부족한 건 ‘미국 전문가’

우리는 흔히 “중국 전문가가 부족하다”느니, “중동 전문가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진짜 부족한 것은 미국 전문가인 것 같다. 미국에서 박사를 받은 미국 박사는 정말 많다. 그러나 정작 미국을 연구한 미국 박사는 그리 많지 않다.

현재 한국 대학의 사회과학 교수들의 많은 수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왔지만 그 논문 주제가 미국인 경우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흔히 미국에 대해 제법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러나 막상 미국 역사와 사회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미국에 대해 알고 싶어도 미국에 대해 제대로 써진 책을 찾기도 쉽지 않다. 미국사만 하더라도 반미적, 혹은 이른바 수정주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들이 대부분이다. 수정주의 입장도 읽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통주의적 시각을 어느 정도 안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오래 전부터 읽다 시작했다가 최근 다 읽은 책이 있다. 폴 존슨의 <미국인의 역사>이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미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한국 지식인들은 유럽사를 과대포장하고 미국사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민주주의 역사하면 프랑스혁명만이 강조될 뿐 미국혁명은 독립전쟁 정도로 폄하되기 일쑤다. 미국은 근대 최초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민의 공화국’(a republic of the people)이다.

흔히 프랑스 혁명사를 미화하는데 혁명과 반혁명의 피의 역사로 점철된 프랑스 혁명사에서 죽어간 수많은 민초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 혁명의 가치를 지킬 수 있었다면 혹시 모르겠다. 나치즘에 유린당하고, 공산주의에게 희롱당했던 프랑스를 구원한 것이 미국이었음이 역사적 사실이다. 또 루소의 혁명사상이 실제적으로 남긴 것이 무엇인지를 신중히 생각해 보자.

오히려 우리가 읽고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은 미국 건국이념의 기초가 됐던 <페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라고 생각한다. 폴 존슨에 의하면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의 가장 근본적 차이는 미국혁명은 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것임에 반해 프랑스혁명은 반종교(anti-religion)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혁명사와 소련 볼세비키당사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한국 지식인들의 현실이다.

싫든 좋든 미국과의 관계는 우리에게 사활적인 문제이다. 이제 진짜로 ‘미국 바로알기’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만 얻어먹다가 투정부리는 관계가 아니라 ‘가치동맹’을 중심으로 서로에게 진짜로 필요한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될 때라 생각한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단지 한반도 주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 세계 글로벌 차원에서의 협력관계를 모색할 때 진정한 21세기 한미동맹이 구축될 수 있다고 믿는다.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