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후계자로 부각된 2009년 이래 북한은 끊임없는 대남도발 위협은 물론 실질적인 도발을 통해 한반도 안보 상태를 망쳐왔다.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 외에 북한의 정당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거의 없는 김정은을 후계자로 부각시키기 위해 김정일이 행했던 노력은 김정은을 대단한 군사지도자로 비춰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대장이라고 불렸던 김정은은 2010년 9월 28월 천안함 도발 후 6개월이 지난 날, 진짜 대장으로 진급했다. 약관 26세의 나이에 말이다.
천안함 폭침을 자신들이 일으킨 도발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전술, 작전, 전략적으로 대단한 성공이었던 천안함 폭침을 북한 지휘부 내에서는 김정은이 기획하고 주도한, 탁월한 군사작전이라고 은밀히 선전했을 것이다.
비록 어리지만 대담무쌍하며 대남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행할 수 있는 탁월한 군사지도자로 인정된 김정은은 대장 진급 이후 직접 자신이 주도하는 대남도발을 단행한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를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감행한 후 북한 당국은 이를 김정은이 직접 지휘한 것이라고 발표하는 동시에 김정은을 포사격의 명수라고 선전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후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진정한 권력자가 되기 위해 북한 내의 반항세력을 제거하고, 독재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대외 도발을 통한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김정은은 권력을 승계 받자마자 2012년 4월 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핵실험도 준비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2분 만에 공중 폭발하는 창피를 당했고, 핵실험은 미국의 폭격 위협에 굴복, 일단 시간을 끌었다.
당시 미국의 라 클리어 해군 대장은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할 경우 핵실험 시설을 정밀 폭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었다.
이후 김정은 정권은 과거에 전례가 없었던 저열한 용어를 사용, 대한민국과 미국,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모욕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저분한 동물로 묘사하고 쳐 죽이는 비열한 그림의 포스터를 본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북한 정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천안함 이후 대한민국의 보복에 대한 결연한 의지는 북한으로 하여금 ‘직접도발’ 보다는 ‘언어폭력’ 과 한국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주눅’ 들게 만드는 도발에 주력하게 했으니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실험 단행 등이 그것이다.
상황 악화시키는 김정은
그러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12년 12월 12일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중국마저 포함한 국제사회의 압도적 분노를 야기했다.
김정은은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불을 끄려 하기 보다 오히려 기름을 붓는 작전을 시도한다. 2013년 2월 12일 핵실험을 단행, 북한의 핵무기 체계가 거의 완성단계에 도달했음을 과시했다.
북한의 핵실험 역시 국제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 왔다. 보다 강화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나왔고 한미 양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 확대된 정례 군사훈련을 개시했다.
국제사회의 규제와 한미합동훈련을 핑계로 김정은은 긴장을 대폭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정전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했고 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천안함 폭침 3주기였던 3월 26일 언제든 전쟁에 돌입할 수 있는 1호 전투태세를 발동했다.
북한은 한국과의 채널을 모두 다 끊겠다고 선언했다. 북한군 대장이 직접 나와 한국을 격파하겠다고 말했고 국제회의에서 북한 외교관은 한국을 최종 파괴(Final Destruction) 시켜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대한민국 군 역시 강하게 되받아쳤다. 소장인 한국군 작전부장은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경우 한국은 ‘도발원점’, ‘도발 지원 세력’과 더불어 ‘지휘부’까지 격파하겠다고 되받아쳤다.
대한민국 해군은 김정은 등 북한의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이지스함에서 발사, 세계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위협은 실질적인 능력에 의해 뒷받침될 때 효력이 있다.
미국 역시 B-52와 더불어 최신예 스텔스 폭격기인 B-2를 한반도 상공에 전개하는 폭격 훈련을 감행했다. B-2 폭격기들이 한국에 처음 온 것은 아니다. 북한이 연일 미국 본토와 남한에 대한 핵 선제 타격 위협을 늘어놓고 있는 데 대한 경고로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B-2 스텔스기의 폭격 훈련에 화가 난 김정은은 29일 새벽 0시 30분에 장군들을 소집해서 회의를 했다. 서울지도와 미국 지도를 벽에 붙여놓고 작전회의를 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미국의 전쟁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라도 최고 지휘부의 군사작전 상황실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 할 수 있을 것이며, 북한이 보여준 초라한 모습의 작전 상황실에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종이에다 펜으로 그린 것이 확실해 보이는 작전지도는 북한의 협박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공갈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북한의 허접한 작전지도를 보고 안심하면 안 된다.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지 한국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했고 우리 군도 그동안 누누이 강조했던 바처럼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금 결연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북 핵무장, 또 그냥 넘어갈 것인가?
3월 27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통일부 업무 보고에서 통일부 장관이 “남북 당국 간 책임 있는 대화를 재개하고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비롯한 남북 간 교류·협력을 추진하겠다” 고 말한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들이 아직 궤도에 오르지도 못한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앞장서서 ‘남북 교류와 협력 강화’를 들고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합리적인 결정 능력이 의심되는 김정은에게 무슨 신호를 보내겠다는 것인가?
북한이 동해 어느 지점에 가져다 놓은 대형 폐화물선을 핵미사일로 공격,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는 실험을 통해 핵 능력을 과시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 날이 왔을 때 대한민국은 북한의 각종 공갈에 대응하기는 커녕 굴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핵으로 우리를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은 지금의 북한과 다르다. 그런 날이 결코 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 새 정부가 담당해야 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과제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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