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내 생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3권이 떠오른다. 학창시절, 직장시절, 그리고 은퇴 후에 영향을 준 책들이다.
학창시절: ‘가치의 세계’를 알려주다
<학생들에게 주노라>. 가와이 도쿄대 교수가 쓴 이 책을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고서점에서 만났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세상에 왔다가 그냥 밥만 먹다 갈 뻔했다.
6‧25 난리 통에 누구 한 사람 젊은 사람을 붙들고 인생 얘기를 들려 줄 멘토라곤 없었다.
“인간의 최고 가치는 ‘진‧선‧미’를 갖춘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는 대학생들에게 4년 동안 일체의 생활 책임을 면제해 주는 ‘모라토리엄’의 특권을 준 것이다.”
영수 공부밖에 모르던 나에게 새로운 정신세계가 펼쳐졌다. 인간이란 뭔가, 가치란, 진 선미, 인격은…
생전 처음 들어본 정신세계의 얘기는 당시 피란지에서 곤궁의 극을 헤매던 나에게 의지하고 살아 갈 용기를 줬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나는 한국장학재단의 장학생들을 데리고 4년째 이 책의 감격을 전해주고 있다.
직장시절: ‘직장인 철학’을 알려주다
<사원의 마음가짐>. 전란 후 폐허가 된 이 땅 위에서 밥먹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뛴 10년, 겨우 한숨 돌리고 고개를 쳐들었을 때 찬바람이 가슴에 휘몰아쳤다. 이게 인생이란 말인가. 이 때 집어든 것이 마쓰시다의 책이었다.
“우리는 좋은 물건을 ‘수돗물처럼’ 싼 값에 무진장 만들어 사회에 이바지한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나쇼날 전기 마쓰시다 창업주의 ‘수도철학’이 가슴에 꽂혔다.
“그렇다. 내가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은 이 나라 전후 복구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에 대한 사명감을 깨닫는 순간, 그간 몸에 쌓였던 피로가 일시에 싹 가시고, 전신에 힘이 차오르는 것을 확연히 느꼈다. 사원들도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이해가 잘 가지 않던 괴테의 <파우스트>가 술술 읽혀졌다. 필경 파우스트도 깨달음의 과정을 그린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경험은 일생을 두고 참으로 소중했다.
은퇴시절: ‘인간의 천성’을 알려주다
<몽테뉴 수상록: 나는 무엇을 아는가>.
세상에서 한권 책만 골라 가지고 떠나라면 서양에서는 성경, 동양에서는 논어를 고를 것이고 나는 몽테뉴를 고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천성’대로 살 수 밖에 없고 또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길이다.”
‘천성’이란 무엇일까.
“모든 인간은 몸 안에 ‘무한한 재능’과 ‘무한한 쾌락’의 씨앗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찾아내고 잘 가꿔 한껏 엔조이하게 되면 그것은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까운 완성이다.”
수상록은 몽테뉴가 이 생각을 몸소 실천한 기록이다. 그는 남들보다 2배의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이렇게 권한다.
“남의 처지, 남의 경우를 부러워하지 마라. 자기의 재능과 쾌락의 씨앗을 발굴해 몸과 마음이 함께 즐기도록 노력하라.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길이다.”
은퇴 후 20년은 종교 서적이나 이 책 한권이면 지적탐구 생활을 한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성원 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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