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와 애플이 '특허괴물' MPT(Multimedia Patent Trust)와의 특허소송에서 승리했다. 특허 괴물(patent troll)이란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제품은 만들지 않고 다른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만 활용하는 업체를 말한다.
LG전자의 소송 대상 제품은 '초콜릿 터치 VX8575', '블리스 UX700', 등 9종이었고 애플의 소송 대상 제품은 아이폰·아이패드·맥북 등이었다.
MPT는 LG전자와 애플이 특허침해 배상금으로 각각 910만달러(약 97억원)와 1억7230만달러(약 1849억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법원 배심원단은 지난해 12월 평결에서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피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LG전자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특허 괴물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의 승리만을 보면 우리는 특허를 무기로 전세계 기업들에게 로열티를 긁어 모으는 이 특허회사들을 정말 괴물처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 특허회사들은 한마디로 ‘서부 금광의 청바지 장사꾼’으로 표현할 수 있다. 미국의 서부개척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노다지를 잡으러 금광에 몰렸지만 정작 돈을 번 자는 청바지 장사였던 것처럼 말이다.
청바지 장사는 금광 근로자의 이익을 갈취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싸고 질긴 청바지를 공급해 금광 근로자들의 편의를 높여 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특허회사들은 기업들에게 필요한 특허를 다른 회사들로부터 사서 공급하는 긍정적인 역할이 더 크다. 그러한 예가 있을까.
특허괴물은 누군가에게는 천사
초고속 성장을 이루고 있는 미국의 RPX라는 회사가 그렇다. 전 세계 140여 개 글로벌 기업들이 이 회사에 매년 수백만 달러씩 회비를 낸다. 그 돈으로 RPX는 R&D로 특허를 얻었지만 시장을 만나지 못한 기업들의 특허를 사들인다.
그렇게 얻어진 특허는 나중에 필요한 회사에 공급된다. RPX는 지난 1월 삼성 애플 구글 MS 페이스북 등을 모아 코닥 특허를 사들이는 중개인 역할까지 했다. 삼성전자도 이 회사에 매년 수백만 달러를 준다.
RPX가 지난 13일 밝힌 지난해 연간 순마진율은 19.7%. 삼성전자(11.9%)의 두 배에 가깝다. 지난해 매출은 1억9770만달러에 불과한 기업이다. 이 회사가 실적을 발표하자 하루 새 주가가 22%나 올랐다.
이러한 특허회사들은 어찌 보면 지식산업의 중개상들이다. 만일 이들이 없다면 돈을 들여 특허를 내는 활동들이 크게 감소할 것이다. 왜냐하면 힘들여 얻은 특허가 당장 시장을 만나지 못하면 특허 개발자는 자금난에 빠지거나, 그 아이디어를 특허 내지 않고 가지고만 있다가 나중에 다른 기업들에게 도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아이디어가 그 자체로서는 공공재의 성격을 띤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아이디어는 비경합성(그것밖에 없다)과 비배제성(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이라는 경제원리에 의해 누군가에게는 유용하지만 공짜 상품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한 아이디어에 사적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특허제도다. 만일 특허제도가 없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한다. 그러면 더 나은 지식 노하우는 개발되지 못한다.
실제로 19세기 산업혁명기에는 그러한 특허괴물들의 전성시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특허괴물들 때문에 산업혁명이 침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창발성과 효율성에서 더욱 중요한 성과를 올렸는데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는 그 기관으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증기기관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진공장치 기술 특허로 돈방석에 앉았다.
이러한 특허회사들은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제연구소 CATO의 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 미국의 특허괴물들이 소송 상대로 한 기업들의 평균 수익은 340억달러, R&D 지출은 17억달러, 종업원 수는 9천명 수준이었다. 글로벌 기업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특허 소송은 한편으로 글로벌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특허를 함부로 무단 도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과 특허를 침해하는 데 매우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오히려 국내에도 이러한 특허괴물들이 등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필요성마저 제기된다고 하겠다.
경제는 보이지 않는 이면이 중요
흥미로운 것은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러한 특허괴물들과 전쟁을 선포했다는 점이다. 지난 16일 오바마 미 대통령은 "특허괴물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로채서 돈을 뜰어낼 기회만 엿보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말했다고 기가옴이라는 한 외신이 보도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구글 플러스 행아웃에서 이뤄졌다. 한 여성이 특허괴물 때문에 걱정이 많다면서 특허제도를 개혁할 용의가 없냐고 질문하자 오바마 미 대통령은 특허괴물의 폐해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라고 기가옴이 전했던 것.
이러한 사건은 오바마 미 대통령이 특허괴물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가 대중적 포퓰리즘을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러한 미국인들의 특허괴물 인식 배경에는 특허괴물과 초일류 글로벌 기업들간에 검은 유착이 있다는 음모론이 주효하게 먹히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그러한 사례로 MS가 이미 오래 전부터 특허괴물과 연계를 갖고 있는 등 MS가 특허괴물에 상당한 돈을 투자 했고 특허괴물을 앞세워 경쟁기업을 괴롭힌다는 이야기가 횡행한다.
애플은 물론 구글 등 여러 기업들이 특허괴물과 직간접적으로 거래하면서 이들로 하여금 자사의 경쟁기업을 공격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형태가 드러난 사례는 없다.
경제란 대부분 우리의 상식과 부합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상식을 배반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많다. 그래서 프랑스의 경제학자 바스티야는 “훌륭한 경제학자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며 그 포기한 다른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특허괴물은 소송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야 말로 괴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괴물 때문에 다른 수많은 발명자들이 오늘도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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