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협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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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3.02.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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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The Concept of the Political)을 읽고
 

“종군기자를 하셨다면서요? 위험하지 않나요?” 전쟁기자(war correspondent) 생활을 했다고 할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나오면, “종군기자는 별로 위험하지 않습니다. 종군기자로 전쟁터에서 죽을 확률은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보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쟁기자는 제법 위험합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물론 이 대답은 말장난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읽으면서 전쟁터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 보니 어떻게 보면 핵심을 찌른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war correspondent를 ‘종군기자’라고 번역한다. 어떻게 이러한 말이 나오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종군(從軍), 말 그대로 풀어쓰면 ‘군대를 쫓아 다니는’이란 뜻이 된다.

이러한 표현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군대를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 진짜 종군을 하게 되면(특정부대에 배속돼서 함께 움직이게 된다면), 전쟁터나 분쟁지역에서 그것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일도 없을 것이다. 정식으로 군에 배속된 기자가 되면 연대장급에 해당되는 대우를 받게 된다.

종군기자가 총알에 맞아 죽을 확률은?

과거 제2차 세계대전이나 6‧25와 같은 전쟁이라면 모를까, 최근 벌어지고 있는 현대분쟁에서 연대장급이 전사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카메라 기자들이 욕심(?)을 부리다 순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른바 ‘볼펜’일 경우에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 즉 ‘좁은 의미에서의 종군기자’가 전투현장에서 총알이나 폭탄을 맞고 죽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전쟁기자’는 많이 죽는다. 동료기자가 죽는 것을 처음 목도한 것은 92∼93년 압하지아 전쟁 때였다.

소련이 붕괴되자 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지역에 위치한 그루지아가 독립하게 됐다. 문제는 그루지아에 소속돼 있던 압하지아가 그루지아에 소속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루지아를 제어하기 위해 러시아가 압하지아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자 분리 독립을 원하는 압하지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그루지아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었다. 다국적으로 구성된 기자들과 함께 압하지아 지역에서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일단의 무장집단이 나타나 우리 기자단을 정지시켰다. 우리는 그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주며 기자임을 밝혔다. 러시아 신문 이즈베스티아 소속 기자가 있었는데 이 기자 신분증을 보더니 무장집단의 지휘자로 보이는 자가 그 자리에서 소총으로 쏴 버리는 것이었다. 그 러시아 기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제 다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신분증을 되돌려 주면서 “스파이는 처단하지만 기자들은 걱정할 필요없다”며 말하는 것이었다. 압하지아에 대해 불리한 기사를 쓰고 있던 이즈베스티아에 대한 반감의 표출이었다.

어쨌든 나머지 일행은 무사히 살아나올 수 있었다.(인간 삶이란 것이 뭔지? 이때 함께 있었던 기자들이 죽은 러시아 기자 미망인에게 아이 학비조로 매년 돈을 모야주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유야무야됐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돈을 낸 것이 2000년이었나? 지금은 그 유가족들과 연락도 되지 않는다.)

이 사건 이후 많은 기자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타지키스탄에서 일본 기자 시체를 가지고 나오려고 고생했던 일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2,000m 넘는 고지에서 시체를 가지고 내려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직접 메고 내려온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러했다.(현지인을 고용해서 한국 지게 비슷한 것에 싣고 내려왔다.)

그럼 전쟁기자들은 왜 죽는가? 앞에 언급한 압하지아의 경우처럼 정치적 이유로 살해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약 50%는 강도에게 살해된다.

전쟁기자들이 무장을 하는 이유

여기서 강도 살인이라 함은 ‘금품을 목적으로 사람을 죽인 행위’를 말한다. 전쟁터에서 민간인, 패잔병, 탈주병, 무장강도 등의 구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니 순수해 보이는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프가니스탄 오지 마을에서 물을 구하러 우물가에 갔다가 마을 아줌마들에게 살해된 사건도 있었다. 이 경우도 금품이 목적이었다.

이 아주머니들은 수십 년 계속돼 온 내전 속에서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저 외국기자 한 명만 죽이면, 우리 아이들이 빵을 먹을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그 기자를 죽이게 만든 것이다.

전쟁터에서 외신기자는 ‘움직이는 달러’이다. 어떤 기간 동안 있을 예정인지 또 언제 들어왔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외신기자 몸에는 최소한 3,000달러에서 2만 달러 정도의 현찰이 있기 마련이다.

ATM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크레딧카드나 여행자수표가 통용될 리도 만무하다. 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무력과 돈 뿐이다. 어차피 경찰이나 공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자들은 원칙적으로는 무장하지 못하게 돼 있으나 무장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나라들의 경우 소득수준이 매우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5급 공무원에 해당되는 국가 관리의 월급이 미화 15달러 수준인 경우에 3,000달러란 어마어마한 돈이 아닐 수 없다.

국가 체제가 붕괴되고 아나키 상태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군대이다. 바로 이런 군대가 지켜주는 곳에 있는 ‘종군기자’가 전쟁터에서는 가장 안전한 직업일 수 있다.

문제는 ‘전쟁터에 있는 기자’를 포함한, 그러한 국가권력의 보호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다. 참고로 강도 살인 다음으로 전쟁기자들의 사망 원인은 지뢰이다. 약 30% 정도이다.

그 밖에 사망 원인은 교통사고, 비위생적 상태와 보건의료시설의 미비로 인한 병사(病死)이다. 정상적인 곳에서는 별 것 아닌 병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급성맹장이나 파상풍 등으로 인한 사망이 그러하다.

'주권'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교과서에 의하면 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으로 구성된다. 그럼 여기서 주권(sovereignty)는 무엇인가?

칼 슈미트는 ‘예외적 상황에서 결정하는 자’(he who decide on the exception)라고 정의하고 있다. 칼 슈미트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란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행위’이며 여기서 적이란 개인적 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적’을 의미한다.

홉스가 ‘자연상태’(the state of natural)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정의한 것에 대해 슈미트는 그러한 개인적 투쟁의 상태는 실질세계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투쟁은 ‘집단’의 형태로 발현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것’은 ‘상대적으로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근본적’(fundamental)이라는 것이다.

국가는 자신의 구성원에게 목숨을 희생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주권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다른 조직체와 엄격하게 구별된다. 원래 ‘기존의 모든 것을 초월한 최고 권력’을 의미하는 주권은 신(神)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권이 부여된 것이 현대 주권국가인 것이다. 이러한 주권 개념에 자유주의자 혹은 무정부주의자들은 반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장질서와 사적 소유도 그 개념을 인정하는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만약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사적 소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장구한 인류역사를 볼 때 시장거래가 아닌 주먹에 의해 문제가 해결된 경우가 더 많다. 결국 폭력 독점 집단으로서의 주권국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외부와 내부의 적들과 투쟁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즉 주권국가의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반(反)헌법적 세력은 내부의 적(the domestic enemy)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적에 대해 단호히 맞서야 하는 것이 주권국가의 책무이자 기본기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협회나 동아리, 혹은 기업 정도로 이해하는 나이브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황성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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