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마찬가지다. 대작을 관람하고 감동과 환희에 이은 희망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견디기 힘든 슬픔과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한다.
지난 12월 20일 회사에서 단체 관람한 영화 ‘레미제라블’은 인생의 모든 슬픔을 다 현실로 끌어내 3시간에 압축시킨 뒤 관객에게 묵직한 ‘돌직구’를 던지는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잘 알려진 ‘장발장’의 스토리다. 장발장(휴 잭맨)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 뒤 석방되지만 전과자라는 이유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한 채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는다.
그러던 와중에 장발장은 우연히 만난 신부의 선행과 축복으로 인해 구원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어려운 이들을 도우면서 지내다가 운명의 여인인 판틴(앤 해서웨이)을 만나게 되지만, 병에 걸려 있던 그녀는 딸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장발장에게 부탁하며 세상을 떠난다.
결국 코제트를 맡기로 판틴과 약속한 장발장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챈 경감 자베르(러셀 크로우)의 추격을 물리치고 코제트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자신의 친딸처럼 돌봐준다.
그러던 와중에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나지만 실패로 끝나고, 코제트는 혁명군의 리더였던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진다.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사랑을 꽃피우지도 못한 채 이별할 위기에 놓였으나 장발장은 자기희생(self-sacrifice)의 극한을 보여주면서 마리우스를 구해낸다. 이로 인해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이루어질 수 있었다.
출소 이후 멸시와 박해를 받던 장발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함에 괴로워하는 마리우스와 코제트. 행복했던 추억을 회상하는 판틴. 평생 고통과 빈곤에 시달리다가 최후를 맞이한 판틴의 슬픈 죽음.
같은 꿈과 이상을 가진 사람들과의 슬픈 이별. 그리고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옛 추억을 회상하면서 죽어가는 장발장의 마지막 모습. 사랑, 이별, 패배, 절망, 추억 등 인생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슬픔들이 이 영화에 총망라돼 있다.
12월 27일자 <한겨레>는 레미제라블에 대해 “대선 패배로 인해 침울한 야당 지지자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영화”라는 정치색 짙은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필자는 한겨레 기자와 정치 성향이 다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영화로부터 희망과 위로를 얻었다기보다는 호흡이 곤란할 정도의 슬픔과 그로 인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원초적 한계를 보여준다.
비록 장발장은 신앙과 선행으로 인해 구원받고 영생을 얻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세상을 등지게 되는 건 원죄를 가진 인간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 운명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이다. (미래한국)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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