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수우익 모임에 나가면 한결같이 표정들이 밝다.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각종 모임에 나가면, 이번 대선과정에서 겪어야만 했던 마음고생, 그리고 무용담(?)을 주제로 이야기꽃이 만발하곤 한다. 한 분은 20대 아들 2명이 있는데 아무리 설득해도 야당을 지지하기에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아들들이 투표하지 못하도록 작전을 세웠다.
이 분은 선거를 앞두고 보름 동안 일절 선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선거일에 스키장으로 놀러가자고 두 아들을 꼬드겼다. 그리고 선거 전날 아들들을 데리고 노래주점에 데려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셨다.
접대할 때 사용하던 비장의 ‘개인기’마저 공개하면서 그만 마시겠다는 아들들에게 폭탄주를 거듭 권했다. 그리고 선거일 새벽에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두 아들과 함께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새벽 5시 반에 눈을 떠서 아들들이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동안 아내와 함께 몰래 집을 빠져나와 투표를 한 뒤 돌아와 잠을 청했다. 아침 10시가 넘어 아직 덜 깬 아들들을 깨워 스키장에 가자며 자동차에 태워 스키장에 갔다.
89.9, 그 분노의 숫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처량하다 못해 참담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현재 한국 투표 행태의 양대 축은 지역과 세대이다.
우리나라처럼 세대별로 투표 행태가 나눠지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대한민국 이념 축을 가르는 기준은 계급이나 계층이 아니라 세대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이념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앞의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물어 보았다. 이번 선거 전에 아들들과 몇 번 노래방에 갔었냐고. “이번이 처음”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50대 이상의 세대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위대한 세대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위대한 삶을 부정하는 이른바 ‘진보진영’의 논리에 분노했고 이러한 분노를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했다.
89.9%에 달하는 50대의 투표율은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경이적인 투표율이다. 이 자체가 이들의 울분을 웅변해 준다. 이들은 삶을 정말 열심히 살았다. 물론 살다보니 때도 묻었다. 비도덕적 행위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못살던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987년 6월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이들의 참여로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달성됐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들이 만들고 가꿔온 대한민국을 세상에서 가장 살기 나쁜 나라, 아직 민주화가 안 된 독재국가로 묘사하는 세력, 더 나아가 북한체제를 옹호하는 세력에게 대한민국을 맡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정부·여당 의존성향 버려야
이들은 투표장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세대의 마음이다. 아들 세대의 정신과 영혼이 다른 곳에 있는 한, 이들의 승리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혹자는 말한다. 세월이 약이라고. 지금 50대도 40대 시절 노무현에게 보다 많은 표를 던졌다고. 물론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세대 간 갈등은 자연치유에 맡기기엔 너무나 골이 깊다. 한 외국기자는 한국의 세대갈등을 가리켜 ‘가족의 붕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 가족 내에서 이같이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면 이는 이미 ‘사회적 단위로서의 가족’은 붕괴되고 ‘생물학적 단위로서의 가족’만 남아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럼 젊은 세대의 두뇌와 심장을 어떻게 되찾아 올 것인가? 우리 ‘보수우파’의 약점 중의 하나는 정부 및 여당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MB정권과 새누리당의 이념적 불철저성과 기회주의성에 대해 성토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분명 그러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부나 여당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민주사회에서 정부와 여당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또 본질상으로 정부나 여당은 문제 제기 집단이 될 수 없다.
이들의 역할은 제기된 문제를 결집하고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수우파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보수우파 ‘시민사회’의 강화 없이 정부와 여당이 알아서 모든 것을 잘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행위이다.
우리는 흔히 ‘이념투쟁’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경향이 있다. ‘이데올로기’를 이념으로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란 뜻이다.
적어도 상대방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우리 이데올로기’란 말은 반어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 안 되는 용법이다.
이념은 영어로 ‘ideas’다. 다시 말해 이념투쟁이란 아이디어 전쟁이다. 그리고 이념이 없다는 말, 아이디어가 없다는 말은 ‘골이 비었다’는 말과 사실상 동의어인 것이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현실투쟁’에서 승리한 보수우익이 왜 젊은 세대의 두뇌와 심장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는가? 바로 ‘이념전쟁’(the war of ideas)에서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을 전후해서 칼 보거스의 <버클리>란 책을 읽어 보았다. 이 책의 부제는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와 미국 보수주의의 성장’(William F. Buckley JR. And The Rise of American Conservatism)이다.
버클리는 ‘미국 보수주의의 대부’로서 사실상 미국 현대 보수주의와 그 운동을 건설하고 발전시킨 인물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 중의 하나는 역설적으로 이 책의 저자 보거스가 보수주의자가 아닌 리버럴(liberal)이란 사실이다.
보거스는 버클리의 일생을 중심으로 미국 현대 보수주의가 어떻게 태동되고 발전돼 왔는지를 조명하고 있는데 리버럴로서의 그의 비판적 관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비판적 관점을 통해 버클리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며 버클리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배가됐다고 이야기한다면 보거스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미국 현대 보수주의의 역사
버클리(1925~2008)는 <예일대에서의 신과 인간>이란 베스트셀러를 통해 미국 보수진영에서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이 책은 기독교 재단에서 지원받는 예일대에서 무신론이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시장경제를 옹호해야 할 예일대에서 반(反)시장경제 이론이 중심적으로 강의되고 있는 현실을 공격한 책이다.
이 책을 쓸 때만 하더라도 버클리는 자신을 ‘개인주의자’(Individualist)라고 규정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도 ‘보수주의’란 말이 ‘기득권 옹호’와 동의어인 혐오스런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서의 보수진영은 ‘경향’ 혹은 ‘정파’로 존재했을 뿐 뚜렷한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한 ‘이념운동’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이러한 이념운동의 출발점은 1955년 <내셔널 리뷰>라는 격주간지의 창립이다. <내셔널 리뷰>는 여러 경향의 보수운동의 이념적 용광로가 됐으며 이 용광로를 바탕으로 ‘미국 현대 보수주의’가 태동되게 된다.
즉 여러 경향의 보수주의 흐름을 1)자유 기업(free enterprise) 2)제한된 정부(limited government) 3)강한 국방(strong national defence) 4)전통적 미국 가치(traditional American values) 동 4개의 가치로 융합시킨 ‘미국 현대 보수주의’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부의 적들과의 이념투쟁도 치열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용공이라는 식의 ‘음모론적 반공주의’와 싸워야 했으며 전통적 미국 가치, 즉 ‘가족과 교회’를 부정하는 극단적 리버테리안(libertarian)들과 사상투쟁을 벌였다. 또 반대로 ‘시장’과 ‘자유’의 가치를 등한시하는 ‘전통주의자’들과도 각을 세워야만 했다.
한국에도 <내셔널 리뷰>가 필요하다
이러한 버클리의 이념투쟁은 1960년 9월 11일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들’(YAF, Young Americans for Freedom)이란 대학생 조직을 만들면서 본격화된다.
미국 코네티컷주(州) 샤론이란 곳에서 첫 회합이 이뤄지면서, 이곳에서 ‘샤론 성명’(Sharon Statement)를 발표하는데 이 문서는 훗날 좌익진영에 의해 ‘보수주의 선언’(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빗대어 지은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기념비적 문헌이 된다.
이러한 미국 보수주의 청년학생운동은 1964년 미국 대선에서의 보수주의 후보 배리 골드워터 선거운동을 통해 대중화된다. 물론 배리 콜드워터는 패배했다.
그러나 그 자양분을 통해 보수주의 청년운동은 급속히 성장했으며 그 결실은 1980년 레이건 보수주의 혁명으로 결실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미국 보수주의 운동사를 다시 살펴보면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되새겨 본다. <미래한국>이 한국판 <내셔널 리뷰>가 돼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하루속히 ‘자유를 위한 젊은 한국인들’(YKF)이 조직돼야 한다는 점이다.
2013년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2013년을 대한민국 보수주의 학생운동의 원년을 만들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 보자.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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