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김상철 변호사님!
여기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애간장을 끊는 슬픔을 삼키고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생을 한결같았던,
그리고 마지막 투병시간까지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을 감사해 한
당신의 부인 최원자 여사와
그토록 가슴시리도록 아끼고 미더워 하던 세호, 민정이 내외와
귀여운 손주들이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당신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을 보람으로 여기는 동창 선후배와
학계, 법조계, 정관계, 언론계, 문화계, 시민사회의 지인 동지들이
생전처럼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워싱턴, 뉴욕, 제네바, 베를린, 북경, 동경, 마닐라 시애틀,
그리고 당신의 발길이 닿았던 세계 여러 곳에서
많은 명사들이 놀람과 애도의 뜻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당신이 감싸 안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있고 탈북민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기리고 떠나보내는 이 모든 일들을
당신이 진실로 두려워하고 지성으로 섬긴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바로 김상철 장로의 신앙의 고향 서울교회에서입니다.
나는 70년대 후반 독일 유학 시절 이후로
당신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당신은 사명감에 가득 차서 이 일 저 일을 같이 하자고 하고
나를 꼼짝 못하게 설득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시도 때도 없이 질문과 주문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 그랬습니다.
기꺼이 당신의 열정에 승복하고
당신이 내미는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당신이 내게 더 질문을 내어 놓을 형편도 아니고
함께 할 일을 도모하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미뤄뒀던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김상철 변호사님!
당신은 늘 현인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뛰어난 지혜를 가진 현인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고시계를 발행하고 미래한국을 창간하여 국가 장래를 논의하고
7천이 넘는 청년들을 해외 봉사에 내보내면서
앞장서서 미래를 준비하였습니다.
앞을 내다보고 대비하는 지혜가 없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당신은 늘 의인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지내보니 당신이 바로 용기 있는 의인이었습니다.
군사정권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친북을 준엄하게 나무랐습니다.
북한 공산독재에 맞서 도발을 규탄하고 비핵화를 촉구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거침없이 불의에 맞서는 사람을
별로 많이 알지 못합니다.
당신은 늘 애국자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당신이 바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한미우호협회를 창설하여 대미민간외교의 지평을 열고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통일 전선에 서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늘 선명한 애국의 길을 제시하고
망설이지 않고 앞장서서 행동하는 애국자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심히 찾던 그 지혜롭고 의로운 애국자 말입니다.
그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바로 당신에게 붙여진 ‘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입니다.
세상이 왜 당신을 ‘인권변호사’로 부르는지는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최전선에서
인권 변론을 도맡고 나서는 당신을 보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당신을 그렇게 불렀답니다.
이젠 그것이 역사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인권운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탈북난민보호운동’을 이끌면서
북한인권운동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았습니다.
2001년 5월 16일, 무려 1,180만 명이 서명한
‘탈북민 난민 인정 청원서’를 유엔 본부와 미국 의회에 내놓았을 때
세계는 3.8톤의 잘 정리된 서명지 더미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향한 크나큰 울림이었습니다.
오직 김상철 변호사이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쾌거는 이후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게 하는 등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의 실태를 알리고
국제법에서 탈북민의 난민지위를 인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과로로 쓰러졌던 2008년 12월 5일까지
당신은 계속해서 북한주민의 인권,
그리고 탈북민의 국내 귀환 및 권익 향상을 위해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일했습니다.
이것이 판사요, 헌법학 박사요, 서울시장이요,
우리정의당 의장이고, 국가비상대책협의회 의장이며
태평양아시아협회와 미래한국신문의 창립회장인 당신을
굳이 ‘변호사’로 부르는 까닭입니다.
대통령께서 친히 당신의 영전을 찾으시고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하시니
비로소 당신의 공적을 국가가 인정하였습니다.
세 살배기 어린 나이에 38선을 넘고
갖은 고초를 겪고 나서 일가를 이룬 법조인이
인류 보편의 가치 인권을 위해 헌신한 것을
그가 그토록 사랑한 조국 대한민국이 기린 것입니다.
김상철 변호사님!
당신이 쓴 미래한국의 칼럼의 제목대로
당신은 ‘시대를 보는 눈’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시대를 앞서 꿰뚫어 보는 밝은 눈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지극정성으로 이끌면서
깨우쳐 준 바가 있어 위안을 삼습니다.
“생명은 존귀하다.
사랑으로 화합하고,
미래를 준비하자.”
당신이 못다 이룬 뜻과 꿈.
이제는 뒤에 남은 우리가 일궈 나가겠습니다.
비록 바다에 이는 물결이 거세고
땅에 이는 흔들림도 심상치 않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리하셨듯이
우리를 마침내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존경하는 김상철 변호사님!
다시 한 번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잠시 후 우리는 헤어지겠지만
뙤약볕 내려쬐는 시청 앞 광장에서, 바람부는 역삼동 거리에서,
그리고 정론을 펴는 ‘미래한국’ 지면에서
당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다시 들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유민주 통일이 이뤄지는 날,
다 같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동안 큰 덕을 쌓고
좋은 일 많이 했습니다.
이제 세상의 근심과 아쉬움일랑은 훌훌 털어버리고
부디 편안히 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당신과 당신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니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2012년 12월 16일
통일부장관 류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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