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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호(雅號)와 이름을 빠른 속도로 붙여 읽으면 안 되는 남자, 도올 김용옥이 움직였다.
- 그는 오늘 오후 혁세격문(革世檄文)을 발표했다. 18분여에 달하는 낭독문도 함께 공개했다. 이 맥락에서의 ‘혁세’란 투표를 의미한다. 공백 포함 5,000자 분량의 장문을 쓰고 읽으며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반드시 18대 대선에 참여하자”는 얘기인 것이다.
-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하러 가자는 얘길 하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톺아보면 그의 격문에서는 독특한 점이 몇 군데 보인다. 첫 문장부터 “지금 조선의 들판이 혁명의 불길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고 시작하는 이 격문에서 ‘대한민국’보다 더 많이 나오는 단어는 ‘조선’이다.
- 남한과 북한을 한 겨레로 보는 평화적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의 참상에 대해서 언급이라도 해 주는 것이 진정 ‘조선’의 안위를 걱정하는 민족주의자/평화주의자의 자세가 아닐까. 혁세격문은 북한 주민에 대한 걱정은 들먹여보지도 않는다. 현 정부에 대한 비난이 표현법을 달리 하며 길게 이어질 뿐이다.
- 나아가 대한민국 건국을 이룩한 거인들에 대해서도 도올은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이승만은 ‘권력찬탈과 무능한 6·25전쟁 대처’를 한 인물일 뿐이고 ‘일제 만군출신’ 박정희는 쿠데타와 유신폭정을 저지른 폭군일 뿐이다. 이 정도면 반드시 투표를 하자고 주장하는 그의 의중이 어느 후보를 향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이승만과 박정희는 논쟁적인 인물이며 공(功)이 막대한 만큼 과(過)도 많다. 투표일이 가까워 올 때마다 ‘이번 투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숱하게 보아 온 바이며 누구든 자유롭게 특정 정치인을 지지할 수 있다. 현 정부가 서민대중의 삶을 ‘노예 이하의 나락으로 추락시키고 있다’는 과장도 워낙 많이 들어 별로 놀랍지 않다.
- 하지만 그가 이번 대선을 두고 “안보의 위협에 대책 없이 속을 셈인가”라고 일갈하는 부분에서는 분노를 넘어선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스스로 칭하기를 ‘수십만 권의 장서를 수십 년에 걸쳐 뇌리에 입력한’ 그의 현실인식인가?
- 북한 정권에 대한 도올의 터무니없는 태도는 그의 근작 <사랑하지 말자>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 “그토록 우직하게 주체사상을 고집하고 미국이나 일본에는 물론, 소련이나 중국에 대해서도 비굴종적 태도를 고수해온 그들(북한)의 삶의 방식이 비록 인민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반드시 세계질서의 보편성으로 편입되어야만 한다는 획일적 사고를 강요할 수는 없다. 터무니없는 이념이상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지켜온 주체적 삶의 방식을 우선 시인하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교류의 시작을 삼아야 한다.”
- 김용옥, <사랑하지 말자> 中
- 책 수십만 권을 읽었다는 사람이 내린 결론이 겨우 ‘버티는 게 장땡’인가? 허무하다.
- 12월 17일 아침 9시 대치동 서울교회에서는 만 4년의 병고 끝에 지난 13일 별세한 <미래한국> 발행인 김상철 前서울시장의 발인예배가 진행되었다. 80년대 권인숙 성고문 사건, 김근태 고문사건의 변론을 담당하는 등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던 그는 말년엔 북한 구원을 위해 정열을 쏟았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진보에서 보수로 돌아섰다”고 말했지만, 그에게는 북한 문제에 침묵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유’라는 가치로부터 돌아선 자들이었다.
- 그가 살아 도올의 혁세격문을 읽었다면 ‘혁지식인격문(革知識人檄文)’이라도 써서 마네킹처럼 한 쪽만 보고 있는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에 일침을 가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의 자유인을 잃었고,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지식의 탈을 쓴 선동을 막아낼 책임이 무겁게 남았다. 초대 발행인은 떠나고 없지만 <미래한국>은 그의 뜻을 담담히 이어갈 것이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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