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때때로 그 분노가 어긋난 방향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 경우에도 누군가는 성난 군중들의 분노를 억울하게 받아내야 한다. 군중들이 까맣게 잊고 있을 지라도 그 역시 사람이다.
- 지난 10일 오후 5시 10분쯤 서산시 수석동의 한 야산에서 여대생 이 모씨가 아버지의 승용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 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가 “아르바이트하는 피자 가게 사장으로부터 성폭행과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의 휴대폰 메모를 발견, 안 씨를 지난 12일 구속했다.
- 피해자를 협박한 정황이 매우 악랄하고 집요했다는 점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한 것도 요즘 정서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인터넷에는 안 씨의 부인과 아이, 지인들의 얼굴까지 인터넷 상에 무차별적으로 공개되었다. 그들도 이번 사건의 피해자임을 군중의 분노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 안 씨가 이석민피자의 가맹 점주였다는 사실은 사태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든다. 21일 내내 이석민피자 홈페이지는 마비상태다. 안 씨에게 브랜드를 빌려줬을 뿐 이석민피자라는 브랜드 자체는 본 사건과 관련이 없다.
- 그러나 이제 이 브랜드에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겨졌다. 전국에서 이석민피자의 브랜드를 걸고 영업 중인 평범한 자영업자와 납품업자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닐까. ‘채선당 사건’이 오해였고 ‘악마 에쿠스’가 오해였다는 걸 알고 머쓱해졌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자살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각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자살은 일종의 살인이며 그 가해자는 명복기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본 사건이 매우 처참하고 안 씨의 죄질이 나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판단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지성이 필요하다.
-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우리의 직관적 판단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잘 보여준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며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만큼 쉽게 증발하는 분노보다는 차분한 지성과 묵묵한 정의감의 발현이 절실하다. 비록 그 모든 것들이 2012년 8월 21일의 한국에는 결여되어 있었을지라도 말이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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