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보상법’은 정치권의 바로미터다
‘민보상법’은 정치권의 바로미터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7.12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혈세로 종북인사 먹여살리는 악법 개정해야

민보상법(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은 2000년 1월 12일 제정된 법률이다. 김대중 정부와 야당인 한나라당이 공동발의한 민보상법은 99년 12월 28일 국회에서 의결됐다. 그리고 이듬해 1월 12일 공포가 있은 후 속전속결로 추진돼 동년 4월 22일 민주화운동보상지원단(1단장, 1과, 3계 13명)이 설치되고, 7월 10일 민보상법 시행령이 시행됐다.

이후 2005년 5월 3일 한나라당은 이른바 ‘과거사법’ 통과에 동의했다. 민보상법도 과거사법의 범주 안에 있다. 특히 5월 3일은 1989년 5월 3일 동의대사태가 일어난 날이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과의 줄다리기 속에서 사학법을 받고, 과거사법을 통과시키는 역사적 과오를 범했다. 동의대사태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건을 뒤집는 출발점을 만들었다. 이에 동의대사태 당시 불에 타 순직한 7명의 경찰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게 했다.

대한민국은 소위 법치국가이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있은 후에 그에 불복하는 경우에도 헌법소원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다. 민보상법은 대법원 확정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을 수 있는 법률이다. 한마디로 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법률인 것이다.

그리고 민보상법을 근거로 설치된 민보상위는 국무총리 산하의 일개 위원회다. 민보상위의 결정이 대법원의 판결에 우선하는 결정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사법과 더불어 민보상법은 일사부재리, 일사부재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그런 법률임에도 민보상위를 통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민보상위의 결정을 살펴보면 과거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형이 집행된 사건, 간첩과 빨치산 활동, 그리고 살인범과 폭력범 등을 무차별적으로 민주화인사로 둔갑시켰다. 그 숫자가 1만 명이 넘고, 보상금만도 1,000억 원이 넘었다.

특히, 동의대사태 유족들이 낸 ‘동의대사태 범법자가 민주화운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그 근거가 ‘죽은 자가 헌법소원을 내야 한다’는 황당한 논리로 정리됐다. 이에 반발해 당시 민보상위 위원 중 3명(김경동, 노정래, 김철수)이 사퇴하는 등 헌법재판관 사이에도 논쟁이 있었다.이어 당시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2009년 2월 25일 ‘민보상법 개정안’을 준비하던 중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이정희 대표와 조순덕 상임대표가 2월 27일 국회 본청에서 현역의원을 테러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용산 순천향병원에 입원 중인 3월 2일 민보상법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18대 국회가 끝나기 1년 전부터 민보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된 일, 한나라당 내에서도 민보상법과 관련된 인물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민보상위의 결정에 대한 재심신청자 확대와 재심기간 연장에 대한 민보상법개정안 통과는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 최근 종북 논란으로 근래 민보상위 결정에 따라 민주화인사로 둔갑해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의 이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이제 19대 국회에서의 민보상법개정안 통과 여부는 정치권과 대한민국 앞날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강재천 민보상법개정추진본부장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