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월 총선의 숨겨진 의미
이번 4월 총선의 숨겨진 의미
  • 미래한국
  • 승인 2012.04.2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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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위버(Richard Weaver)의 <이념은 결과를 가진다>(Ideas Have Consequences)를 읽고
 
이번 4월 총선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올 초만 해도 100석도 얻지 못해 개헌 저지선마저 돌파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왔던 새누리당이 152석을 획득, 전체 의석의 과반수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 이에 많은 보수우익 인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으며 제도권 언론들은 민주통합당이 너무 자만했기 때문이라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개표 직전만 하더라도, 새누리당이 잘해야 130석이며, 제1당 자리는 민주통합당에게 내줄 것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진단이었다.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몰라도 최고 가능성으로 점쳐진 것이 142석에 제1당을 차지하는 것이었으며 이것도 대부분 희망사항 정도로 취급됐었다.
 
이러한 새누리당의 승리는 “건전한 국민의 승리이며, 이제는 대선을 준비해야 할 때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민주통합당이 제1당이 되지 못한 것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위해 지나치게 좌경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분명 새누리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뒀다. 그러면 이번 4월 총선의 결과는 우리 보수우익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가져다 준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이번 승리의 다른 이면은 종북 및 친북 좌익운동권 세력이 제도권 야당을 사실상 장악했다는 무시무시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번 총선 결과 특히 당선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민주통합당의 종북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구(舊) 민주당을 숙주로 ‘좌익 친노 세력’과 주사파 영향 하에서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하던 386세력이 대거 당선됐으며 이들이 현재 민주통합당의 당권파이다. 구 민주당의 역사적 뿌리는 정통 보수야당인 한민당(송진우, 김성수)-민주당(조병옥, 장면)이었다. 이러한 보수야당의 전통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DJ가 당권을 장악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DJ 시절만 하더라도 민주당 전체를 좌익 혹은 종북세력으로 규정짓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러한 요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관료 및 기업 출신의 호남인사들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이후 전대협 출신 386과 좌익 시민운동세력이 대거 당에 유입되면서 이질감이 노골화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민주당이 분열되고 열린우리당이 출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실험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로 끝나고 다시 호남지역 기반의 민주당으로 회귀하는 듯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과 MB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기로 ‘좌익 친노 세력’과 386세력이 화려하게 부활해 당권을 장악하고 이런 4월 총선을 통해 대거 국회로 입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민주당엔 나 같은 사람조차 설 자리가 없다”라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의 말에서도 잘 읽을 수 있다. 현재 민주통합당 내부에서는 ‘노무현 노선’도 우경화 노선으로 백안시되고 있다는 것이 친노 핵심이었던 김병준 교수의 고백이다. 구 민주당 호남세력 특히 강봉균과 같은 관료 출신의 테크노크라트들은 당 정체성(한미 FTA 폐기,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 등)에 어긋나는 인물로 규정돼 사실상 숙청(?)된 상황이다. 박지원과 같은 일부 구 민주당 호남세력이 ‘장식용’ 혹은 ‘달래기용’으로 살아남았으나 현재 당권과는 거리가 멀다.
 
이번 총선에서 종북세력의 약진은 통합진보당의 13석 획득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통합진보당은 민노당+진보신당 탈당파+유시민 추종세력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번 당선자 면면을 들여다보면 민노당, 그 중에서도 최근 민노당 종북 핵심세력으로 알려진 이른바 ‘경기동부’세력이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민노당의 당권은 이른바 ‘경기동부’라는 정파에 의해 장악돼 있었는데 이 정파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하는 주체사상파라는 사실은 오랜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정희 대표는 ‘경기동부’의 이른바 ‘기획상품’(청순해 보이는 서울법대 출신의 여성 변호사)으로서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합 답변을 지금까지 회피해 오고 있다.
 
이번에 이정희  대표 대신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당선된 이상규를 가리켜 대표적 좌파 논객인 진중권 교수는 “얼굴 대신 몸통”의 등장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경기동부’로 분류되고 있는 당선자로 이상규 이외에 이석기, 김재연, 정진후, 김미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사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경기동부’가 아니라 ‘민혁당’이다. 민혁당은 이 조직의 대표인 김영환(서울법대 82학번, 일명 강철)이 북한 잠수정을 타고 방북, 김일성과 면담했을 뿐만 아니라 강화도 비밀 아지트에 북한으로부터 받은 각종 무기를 숨겨 놓았을 정도로 극렬한 폭력혁명조직이었다. 다행히 이 조직의 대표였던 김영환과 하부 지역조직이었던 ‘전북위원회’는 조직적으로 전향했다. 그러나 김영환과 함께 민혁당을 이끌던 하영옥(서울법대 82학번)은 이번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석기 당시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과 함께 전향을 거부하고 이른바 ‘민혁당 재건파’를 구성했다. 이번 선거에 울산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창현이 바로 이 조직의 ‘경남위원장’이었다. 문제는 이 ‘민혁당 재건파’의 행방인데 이들이 ‘경기동부’ 및 통합진보당의 ‘지하 당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 지점에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이른바 ‘종북성 문제’이다. 노회찬, 심상정과 같은 ‘진보신당 탈당파’는 종북파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노회찬, 심상정 당선자는 민노당의 종북성에 반발, 민노당을 뛰쳐나가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사실 종북이란 용어의 저작권도 보수우익보다는 진보신당파에게 있다. 그런데 배지를 달기 위해 자신들이 비판하던 종북세력과 다시 손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있다. 노회찬과 같은 非종북 좌익세력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좌익진영에서의 종북이냐 아니냐는 문제는 남한좌익의 북한 노동당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 혹은 독자성에 관한 입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현재까지는 보다 설득력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 4월 총선의 숨은 승리자는 종북 좌익 운동권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보수정통야당의 사실상 소멸이다. 그리고 이번 야권연대는 ‘좌익연대’라고 명명해야 정당할 것이다.
 
그럼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됐는가? 대한민국 주류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음에도 불구, 이를 자기 정당화시키는 이념으로 ‘자기 내재화’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학생운동 혹은 반(反)정부 운동의 주변 세력이었던 종북세력이 그 이념의 담지자들의 자연 연령의 증가와 함께 사회 중추세력으로 성장한 것이다. 현재 이념문제를 거론하면 이른바 색깔론을 운운한다. 원래 정치란 자신의 이념(ideas)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 행위이다. 오히려 ‘이념 없는 정치’야말로 자기 출세를 위한 야바위꾼들의 놀음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념문제를 제기하기만 하면 한쪽에서는 색깔론을, 다른 한쪽에서는 탈이념과 민생을 거론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념하면 고개를 젓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6.25라는 뼈아픈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이데올로기(ideology)와 이념(ideas)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때문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념은 ‘사고의 틀’이며, ‘아이디어(idea)의 복수형’이다. 다시 말해 이념이 없다는 것은 “골이 비었다”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이번에 읽은 리차드 위버의 <이념은 결과를 가진다>는 책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대표적 저서 중의 하나로서 ‘이념의 우선성’(the primacy of ideas)을 강조한 책이다. 사실 <이념이 중요하다>라고 의역하는 편이 더 정확한 번역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또 다른 주된 주제는 "정치적 국가에는 필수적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minimum consensus of value necessary to the political state)가 존재해야 하며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국가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등교육을 받은 ‘도덕적 바보’(moral idiot)들이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현대문명의 위기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위버에게 있어서 현대사회 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정치의 위기’가 아니라 ‘도덕의 위기’, ‘이념의 위기’, ‘문명의 위기’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위버는 현대 정치의 위기를 ‘버릇 없는 아이의 심리’(the spoiled-child psychology)에서 찾고 있다. “진보(progress)는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역사주의적 발상’이 자신이 이루지 않은 것, 혹은 자신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향유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사회에 만연되면서 정치와 문명의 위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응석받이 국민’(a spoiled people)이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전제 통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위버는 행복추구권(the right to pursue happiness)이란 개념을 행복소유권(a right to have happiness)으로 잘못 이해하거나 이러한 혼동을 유발시키는 선동에 휘둘리는 대중의 존재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즉 민주사회에서 각자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행복을 추구해 나가야 하지만 이러한 행복추구권을 정부 혹은 정치인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버는 ‘말의 힘’(the power of the word)을 강조한다. 바로 세상을 창조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념(ideas)과 말(word)의 힘과 능력을 믿지 않고 실증주의 혹은 실용주의에만 머물러 있을 경우 물질세계만을 지배할 뿐 정신세계를 장악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이 정신세계를 빼앗긴(골이 빈) 물질세계의 지배는 의미가 없을 뿐더러 또 지속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위버의 책은 그리 길지 않다.(186쪽) 그러나 읽기가 편했던 책은 아니다. 그리고 중세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지는 대목에서는 다소 생경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 젊은이들이 나꼼수 안 들어서” 낙선했다는 제1야당 당대표 대행인 문성근의 발언을 들으면서 위버의 진단이 1948년 미국사회가 아닌 오늘날 한국사회인 것처럼 느껴졌다.
 
황성준 편집위원. 동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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