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일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 대표
최근 탈북민들의 강제북송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들을 보면 13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1998년 3월에 북한을 탈출했다가 중국에서 보름만에 붙잡혀 북한으로 북송된 적이 있다. 직접 경험을 했던 나로서는 강제북송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며 반드시 중지돼야 하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다.
나는 북한에서 부유하게 살았다. 1990년대 중반 300만명 아사자 생겼을 때 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살았다. 탈북은 물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1998년 10월 남한 드라마 ‘모래시계’를 처음으로 보게 됐고 나는 괜찮았는데 내가 비디오를 빌려준 친구들이 검열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그 사건은 김정일에게 직보됐고 자본주의를 뿌리 뽑으리라는 황색문화 소탕작전이 1998년부터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 운명과 같은 장난에 휘말려 탈북하게 됐다. 그때는 탈북민이 적었을 때였고 체포되면 다음날 바로 북송이었다. 나는 보름만에 연변에서 잡혀 당일로 변방부대로 넘겨졌다. 당시 거기에 14명의 북한 주민들이 잡혀 있었고 대부분 사람들은 안전부에서 조사를 받지만 나와 군인은 함북 보위부로 끌려갔다.
당시 북한 정권이 내게 씌운 죄목은 첫째가 자본주의 문화 유포, 둘째가 사회주의제도 우월성 훼손, 셋째가 당 유일사상체계 10대원칙 위반이었다. 그정도면 수용소에도 가기 전에 바로 죽는 거다. 그런데 보위부에서 60일 동안 있었으니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이 가해졌고 한 가지 드는 생각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러던 가운데 이송 중에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였는데 왠일인지 죽지 않았고, 계속 북쪽으로 걸어 1999년 1월 8일 다시 두만강을 넘어 탈북했다. 중국으로 넘어오니 갑자기 긴장이 풀어지면서 기절했고 이후 3달 만에 의식을 찾았다. 3달 동안 식물인간 상태였다.
당시 눈이 왔다. 거기에 미국에서 온 한국인 선교사들이 산을 임대해 농장을 하면서 조선족을 선교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선교사가 갑자기 두만강에 나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와서 보니 국경도로에 시체가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탈북민이고 수갑을 찬 죄인이었던 것이다. 죽어 있으니까 조선족 운전수가 그냥 가자고 했지만 선교사는 그래도 자신이 목사인데 묻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차에 실었더니 온기가 있었다.
그렇게 나를 데려다 처소에 눕히긴 했는데 의식이 몇 달째 돌아오지 않고, 묻자니 숨은 있고. 소문이 퍼져 그 선교사보고 이단이다, 죽은 사람 살린다고 한다며 압박도 많았다고 한다. 자기도 잘못하면 추방될 판에 나를 두고 오직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3개월만에 비로소 의식을 찾았고 완전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건 5개월 만이었다. 그러다 그 선교사는 미국으로 떠나며 나를 다른 선교사에게 인계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분 이름도 모른다. 성이 조라는 것밖에.
나는 의식을 회복했어도 몸이 너무 아팠다. 10분 걸으면 온몸에 쥐가 나서 20분을 길에 누워 있어야 했다. 연변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니까 이 사람이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뼈가 자기 자리에 있는 게 없다고, 이 상태로 있으면 6개월 못산다고 했다.
내가 6개월밖에 못산다니까 선교사가 굳은 결심을 했다. 기도밖에 방법이 없다고. 그래서 아픈 부위에 손 놓고 기도하고 울고, 2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나도 신학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사가 부러웠다. 보름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 북한을 위해 준비하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됐고 서울에 계신 분의 도움으로 2005년 3월 15일 대한민국에 오게 됐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연세대에서 주차관리했고, 연세대 신학대에서 청강하다가 다음해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했다.
요즘 탈북민 강제북송 문제로 의견들이 많다. 어떤 교수는 정치적 문제에 왜 목사가 나서느냐고 한다. 그런데 이건 정치가 아니라 생명에 관한 문제이다. 생명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 탈북민들이 북한에 가면 죽는다. 김정은은 김정일이 죽은 이후 100일 안에 탈북한 사람은 3대를 멸하라고 했다. 그런데 누가 잘못인가. 탈북한 사람인가 아니면 탈북하도록 방치한 사람인가. 누가 탈북을 하고 싶어서 하나. 거기에 있으면 굶어죽으니까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 가는 것 아닌가.
한국에 와서 나를 이끌어 준 곳이 세이브엔케이(Save North Korea)이다. 이종윤 이사장님은 영적 아버지와 같은 분이고 김상철 회장님은 탈북민들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다. 북한을 위해, 우리 동족을 위해 울며 기도할 때 모두가 통일조국을 위해 쓰임 받으리라 믿는다. (미래한국)
세이브엔케이 월례모임 증언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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