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이라는 메타포
전여옥이라는 메타포
  • 미래한국
  • 승인 2012.03.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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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의 서른살의 자유주의]

이원우 칼럼니스트

최근 개봉한 영화 <철의 여인> 속 한 장면. 마가렛 대처의 실물과 깜짝 놀랄 만큼 비슷한 분장을 하고 있는 메릴 스트립이 말한다.

“뭘 느낄 필요가 있는데요? 사람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요. 느끼기만 하죠.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알아요? 그건 우리가 유권자의 기분만을 신경 쓰는 사람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거예요.”

이것은 가장 대처다운 한마디다. 그녀는 유권자의 기분보다는 자기 원칙을 고수했다. 쏟아지는 비판과 매도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래서 ‘철의 여인’이다. 그녀의 판단은 복지병에 걸린 영국의 체질을 바꿔 놓는다는 결과를 성공적으로 산출했고, 대처는 당대보다는 후대에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속 대처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한 정치인을 떠올렸다. 여성·보수주의자. 주변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으며, 정치인이 왜 눈물이나 흘리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철의 정치인’. 한나라당에서 8년을 보내고 국민생각으로 당적을 옮긴 뒤 연일 새누리당에 대한 독설에 피치를 올리고 있는 전여옥 의원이다. 영화 포스터 속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메릴 스트립 덕택에 겉모습마저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 그러나 전여옥을 직접 만나보면 ‘철(iron)의 여인’보다는 ‘천(fabric)의 여인’ 같다. 독설은 간데없이 살갑고 듣기 좋은 말도 곧잘 건넨다.

그녀는 ‘천(fabric)의 여인’(?)

“저는 사람들이 공격하는 것처럼 수구꼴통이 아니에요. 저는 그저 시장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장 적합하다는 걸 얘기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제대로 공부를 하면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인간의 가능성과 꿈을 최대한으로 실현할 수 있으니까요. 자유, 선택, 책임이야말로 보수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말 의원 사무실에서 꼬박 5일간 빵과 우유만을 먹으며 썼다는 그녀의 최근작 <i전여옥>은 하나의 주제로 포섭되는 논리적인 작품은 아니다. 전여옥이라고 하는 정치인-작가의 현주소를 전방위적으로 펼쳐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 안에 그녀의 현재 행보에 대한 복선도 어느 정도 깔려 있다.

그러나 출간 이후 실시된 새누리당의 공천을 ‘보수 학살’로 규정한 전여옥의 주장은 많은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 예상했던 탈당 러시는 일어나지 않고 있고 안 그래도 상황이 어려운데 보수 분열은 곤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불안한 표정이 늘고 있을 뿐이다.

“배신자라고 하는 사람들한테 저는 딱 한마디 하고 싶어요. 저는 조폭이 아니에요. 당에 대한 의리보다 중요한 건 애국심입니다. 애초에 제가 한나라당에 입당을 한 건 그 당이 보수정당이라고 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새누리당이 되면서 강령에서 ‘보수’라는 표현이 빠지고 포퓰리즘에 맞선다는 표현도 빠졌어요. 누가 먼저 배신한 거죠?”

물론 그녀의 이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한나라당이 지난 8년 동안 보수의 가치를 충실히 구현했을 것. 둘째, 전여옥의 탈당은 공천 탈락 이후가 아니라 강령 개정 직후에 실시됐을 것. 하지만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은 모두 충족되지 않았고, 이것이 현재 전여옥 의원에 대한 비판이 가라앉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녀가 택한 대안인 국민생각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박세일 대표가 수도이전 결정에 대해서 의원 배지를 내던진 것을 역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그가 국민생각의 초기 파트너로 진보성향 인사인 장기표 이사장을 선택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리고 수도이전 때문에 의원직을 내던지고 정당을 만든 사람이 수도이전으로 세를 얻은 심대평 대표의 자유선진당에 손을 내미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민생각’에 대한 생각

“비판 받을 만하죠. 장기표 선생님은 이념은 달라도 말이 통하는 명품 좌파세요. 하지만 같이 정치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고 결국 FTA의 이견 차이로 결별하셨어요. 그리고 자유선진당에 대한 국민생각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수도이전 문제는 이미 23개 부처 이전으로 끝이 났다는 거죠. 종료된 사안을 가지고 계속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최대한으로 세를 모아서 보수의 가치를 구현하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해요. 그런데 저쪽(자유선진당)에서 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 같네요.”

그녀는 국민생각으로 옮겨와 훨씬 마음도 편해지고 이제야 자기 옷을 찾아 입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은 진심 같았지만 정치에선 진심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확실한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녀는 이미지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며, 남아 있는 것은 앞으로의 행보를 통해 도출되는 가시적인 결과뿐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정당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인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 전여옥은 보수 변화의 조류에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상징적 메타포를 자처했다. 마치 대처의 경우처럼, 정확한 평가는 현재보다 미래에 내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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