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푸틴, 그가 이끄는 러시아호
내가 만난 푸틴, 그가 이끄는 러시아호
  • 미래한국
  • 승인 2012.03.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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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루카스(Lucas)의 <신냉전>(The New Cold War)을 읽고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교수
1992년 11월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시(市) 네프스키가(街)에 위치한 리테라투라 카페.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등이 자주 들렀다고 전해지는 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담한 레스토랑에서 한국인 2명과 러시아인 2명이 식사를 하면서 러시아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인은 필자와 K씨였고 러시아인은 콤소몰(공산청년동맹) 간부 한 사람과 상트 페테르부르크시 대외위원장이었다. 당시 K씨는 러시아에 기업을 등록시키고자 뛰어 다니고 있었는데 가는 관청마다 자기 관할이 아니라며 핑퐁을 쳐대는 바람에 애를 먹고 있었다. 이때 필자가 알고 지내던 콤소몰의 한 간부가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이날 저녁식사 자리가 마련됐던 것이다.

소개받은 러시아인은 한 눈에 봐도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똑바로 마주보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눈빛의 소유자였다. 그는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고 한국인 사업가 K씨가 러시아 사업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귀를 기울이며 메모를 했다.

식사가 끝나자 이 러시아인은 “기업등록은 내가 해결해 주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퍽한(?) 술자리를 만들려던 우리의 음모는 완전히 무산됐다. 심지어 계산도 더치페이로 하는 정말 ‘비(非)러시아적’ 상황이 벌어졌다.
 
푸틴과 저녁식사를 하다  

이후 K씨는 ‘다산 인터내셔날’이라는 ‘100% 외국인 지분의 러시아 기업’을 상트 페테르부르크시에 등록할 수 있었는데 이 등록증의 서명자가 바로 함께 식사했던 러시아인,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이후 러시아 대통령이 된 당시 푸틴 시(市)대외위원장에 대한 첫 인상은 존경스러운 것이었다. 부패와 책임 회피가 만연한 러시아 관료주의 사회에 저런 인물이 있다니! 술과 식사 대접도 거부할 정도로 청렴하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업무능력에 감탄했다.

그후 푸틴은 대우그룹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대우에서 러시아인들을 한국으로 초청, 견학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상트 페테르부르크 인사 가운데에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의뢰를 받아 필자가 푸틴을 강력 추천했던 것이다.

이후 푸틴이 국가지도가가 된 후 먼발치에서나마 직접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1999년 8월 제2차 체첸전쟁이 발발했을 때이다. 40대의 젊은 총리가 전투복을 입고 전투 현장에서 직접 독전하고 있었다. ‘정치쇼’적 측면이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혼란과 무질서에 시달리고 있었던 1990년대 러시아인들에게, 특히 술에 찌든 ‘종합병원’ 옐친 대통령의 노년기 무력감에 좌절하고 있던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강한 러시아 재건’을 부르짖으며 전선을 누비는 근육질 사나이의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러시아군도 제1차 체첸전쟁 당시의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징집병 위주로 구성됐던 제1차 체첸전쟁 당시의 러시아군과 달리, 직업군인 위주로 편성된 제2차 체첸전쟁에서의 러시아군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결국 다게스탄을 침공했던 체첸군은 격퇴당하고 자신들의 근거지인 남부 산악지대로 퇴각해야만 했다. 푸틴은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됐다. 그리고 이듬해 대통령에 당선된다.

푸틴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으로 크게 엇갈린다. 푸틴 옹호론자들은 푸틴의 최대 공적으로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인 1990년대를 극복한 점을 거론한다. 1990년대 러시아는 ‘혼돈’ 그 자체였다. 경제가 엉망인 것은 물론, 기본적 치안질서마저 부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른바 ‘마피아의 천국’이었다. 그런데 푸틴이 집권하면서 러시아는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으며, 경제도 상승곡선을 그려 나갔다. 즉 망해가고 있던 러시아를 부흥시킨 인물이라는 것이다.

소련식 패권주의의 부활 예고

 
그러나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루카스의 <신냉전>이 바로 반대 입장의 대표적 예이다. 지난 2000년대 러시아의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고유가 덕분이며, 러시아 경제는 석유 및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저개발 산유국형’으로 전락됐다는 것이다.

또 옐친 시절 혼란의 도가니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하기 위한 ‘과도기적 진통’이었으며 그나마 옐친 시절 획득됐던 러시아의 자유민주주의적 요소가 푸틴 정권의 의해 뿌리 뽑혔다는 것이다. 또한 책 제목 ‘신냉전’과 부제 ‘푸틴의 러시아와 서구에 대한 위협’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처럼 루카스는 러시아를 서구세계의 가장 큰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루카스는 푸틴 정권의 이데올로그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의 ‘주권 민주주의’(sovereign democracy)에 주목하고 있다. 수르코프는 “러시아는 서구와 전혀 다른 세계이며 따라서 서구식 민주주의는 러시아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면서, “‘개인’에 기반한 서구민주주의가 아닌 러시아 전통과 러시아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주권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루카스에 따르면, 이러한 수르코프의 ‘주권 민주주의’는 반(反)서구적 러시아 국수주의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러시아와 서구세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루카스는 2008년 러시아의 그루지아 침공을 예로 들면서, 러시아는 과거 소련식 패권주의를 부활시키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루카스의 주장은 중국보다도 러시아가 더 문제라는 미국의 저명한 지정학자 조지 프리드먼의 ‘예언’과도 일맥상통한다. 현재 서구 유럽, 특히 독일의 대(對)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에 독일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동유럽이 다시 러시아의 위협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 천연가스는 ‘가즈프롬’이란 국영회사에 의해 독점되어 있으며, 가즈프롬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정치’를 통해 유럽을 분할 지배(divide & rule)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푸틴은 기본 질서를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인기를 영위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2000년,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 푸틴의 첫 정치적 도전은 2008년에 이뤄졌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푸틴이 3선개헌을 통해 재집권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이 사용됐다. 푸틴은 자신의 대학교 과후배이자 심복이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자신은 총리직에 앉아서 실질적 대통령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바꾼 뒤, 이번에 대통령에 다시 당선됐다.

현재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푸틴의 앞날은 그리 평탄할 것 같지 않다. 적어도 이 2개의 대도시에서의 푸틴의 인기는 바닥인 것이다. 대안 부재와 지방에서의 지지로 당선됐지만, 고학력 대도시 중산층에서의 푸틴 지지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푸틴의 최우선 과제는 우선 경제이다. 푸틴은 석유 및 천연가스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러시아 경제는 국제 원유가에 좌우되고 있다. 심지어 정부예산도 국제 원유가에 맞춰지고 있다. 최근 러시아 예산이 균형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원유가격이 2007년 배럴당 34달러에서 올해 117달러로 오른 덕분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인의 기대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대수준을 맞출 여력과 기초가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 국민의 높아진 기대수준에 맞추자면, 원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겨야 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민주화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보이는 反푸틴 데모는 과거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불안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러시아는 구소련 지역과 동유럽에 대해 과거 소련식 패권주의 대외정책을 구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주한 미군 지지 발언 속내

한편 러시아가 힘을 회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과 전면적으로 패권싸움을 전개할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반미동맹을 형성시키면서, 미국의 1극체제에 파열구를 내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레토릭이 아닌 실질 상황에서 러시아의 보다 큰 위협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특히 극동지역에서는 이러한 측면이 매우 강하다.

바이칼 호수 동쪽의 광활한 러시아 영토의 러시아인 인구는 불과 800만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의 잠재적 위협은 당연히 중국일 수밖에 없다. 유럽지역에서 나토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러시아가 “통일 이후도 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이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러시아 국제문제 최고의 싱크탱크이자 러시아 외교관 양성의 산실인 IMEMO(세계경제와 국제관계 연구소)를 통해 흘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러시아는 극동지역 자원 개발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렇기에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를 한국 철도와 연결시키는 사업, 그리고 한국으로 시베리아 가스 송유관을 연결시키는 사업 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업에 북한이 장애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통일(혹은 북한 붕괴)에도 반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북한을 버리고 대한민국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등거리 외교를 통해, 남북한 모두에게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파리행 고속철도를 타고 시베리아 침엽수림을 달리는 상상의 날개를 잠시 펼쳐본다. 그런데 신문에서 본 ‘눈물 글썽한 푸틴’의 사진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라는 영화의 주제곡이 귓가에 울리는 것이었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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