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북한 공작원의 독살 시도로부터 극적으로 벗어나셨죠. 어떤 상황이었고 배경이 무엇이었습니까.
2008년 9월 당시 부시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 초청했을 때 대북전단 10장을 전달하면서 사업 지원을 부탁했습니다. CNN, 뉴욕타임스 등의 미국 언론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보도해 유명해졌어요. 김정일도 그렇게 해서 저의 활동을 알게 됐을 겁니다. 이때부터 저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시작됐어요. 테러 기도자인 안모 씨는 2001년 처음 만났고 4,5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2006년부터 5년 동안 소식 끊어졌어요. 그러다 올해 2월 대북전단을 도와주겠다며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 국정원에서 전후를 파악하고 만나지 말라고 했어요. 할 수 없이 저는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고 국정원 요원들이 대신 나가 독침을 소지하고 있던 그를 잡은 거죠.
- 경찰의 24시간 보호와 경호를 받고 계신데, 현재 심정은 어떻습니까.
전혀 개의하지 않습니다. 김정일이 노리는 것이 북한인권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탈북민단체를 위협, 중단시키려는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탈북민 NGO 리더들끼리 살인극을 벌이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탈북민을 불신하리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거기에 넘어가 위축되거나 분열되지 않아야 합니다. 김정일은 끊임없는 공갈, 협박과 실인을 일삼으니 그러려니 합니다.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단지 제가 위험할 것을 우려해서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후원을 중단할까 걱정입니다.
북한주민에게 진실 알리는 데 대북전단 효과 커
- 전단을 만들어 북한 내부에 날려 보내는 사업은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2004년 김대중 정부 때 대북방송, 삐라보내기를 중단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남한 방송과 삐라를 보면서 남한 실정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북한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데는 대북전단이 효과가 크다고 판단해 정부에서 안하면 민간 차원에서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 풍선날리기 사업의 효과는 어떻습니까. 북한주민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것이 있는지요.
북한주민들 사이에 전단을 탈북민이 보내니 거짓말을 하겠느냐, 풍선에 달러가 많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고 합니다. 당국이 아무리 거짓 선전을 해도 먹히지 않습니다. 한번은 김일성광장에 떨어져 난리가 난 일이 있어요. 북한당국이 “쌀 안주는 건 참아도 대북 전단 보내는 건 못참는다”는 말까지 할 정도예요.
- 그동안 얼마나, 어느 지역으로 보냈습니까. 날리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비공개 10번이면 공개 1번 정도로 날리는데 공개, 비공개를 포함해 1년에 40~50번씩 8년째 날리니까 300~400번 정도 됩니다. 한번에 20만장을 보내니 6000만~8000만장은 보낸 것 같습니다. 서쪽으로는 평양까지 확실히 갑니다. 동쪽으로는 함흥까지 보내고 있어요. 언젠가 묘향산에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얼마 전 임진각에서 날린 것은 황장엽 선생 1주기 추모행사를 위한 것이고 주로 강화도 쪽에서 날립니다.
2008년 부시 미대통령 만나면서 미국 언론에 보도 돼
- 전단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풍선에 들어가는 물품은 주로 무엇입니까.
대한민국 경제 발전 역사,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 북한인권을 위한 단체 활동 모습, 탈북민이 중북 국경을 넘다 사살된 모습, 김정일 정권 비판에 관한 내용을 알리는 소책자와 동영상을 담은 DVD, USB를 보냅니다. 또 트랜지스터라디오와 달러지폐도 보냅니다. 라디오는 담배갑 크기인데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지 않게 완충장치를 답배 10갑 크기만큼 만들어 보내 라디오보다 완충장치 비용이 더 들 정도입니다.
- 대북전단보내기 사업은 다른 단체들도 하는 것으로 압니다.
탈북민 출신의 이민복 기독북한인연합 대표가 2003년 처음 풍선날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민복 대표는 한기총 등 기독교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북한선교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우리는 시민단체로서 북한인권, 북한의 수령독재 비판을 주로 합니다. 우리가 날려보내는 기술은 이민복 씨가 개발한 기술과 비교할 때 타임머신 등 조금 다릅니다. 제가 북한 김책공대 체신학부 무선과를 졸업해서 남한에 온 후 서울대 모바일연구소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때 서울대 교수 몇 분으로부터 타임머신 개발에 관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민복 대표는 기계적인 방법을 쓰는데 우리는 금속산화방법을 씁니다. 우리는 참여 인원이 많아 애드벌룬 크기도 두 배 정도 되는 것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북전단을 보내는 곳은 이민복 대표와 우리가 대표적이죠. 다른 몇 곳은 기술도 별로 없고 예산 문제 등으로 1년에 한 두 번 보내는 실정입니다.
- 자금은 어떻게 조달합니까.
저희의 경우 주로 재미 교포들이 후원해줍니다. 수잔 숄티 미 디펜스포럼 대표와 남신우 북한자유연대 공동부회장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국민적 관심과 성원이 부족해 아쉬워
- 북한자유운동연합을 통해 활동하고 계신데, 단체는 어떤 취지로 설립됐습니까.
제가 원래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와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강철환 씨와 함께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2월 대북전단 보내는 것만 전담하기 위해 탈북민들이 함께 북한자유운동연합을 발족했어요.
-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돈이 부족해 마음 먹은 만큼 충분히 풍선을 날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국민의 관심과 성원이 부족합니다. 정부나 기업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종북세력은 물론 일부 겁먹은 주민들이 자기 지역에서 날리다 북한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것을 우려해 풍선날리기를 만류하기도 합니다.
- 그만큼 보람도 있겠지요.
북한주민에게 진실을 알린다는 보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주민에게 민주주의나 자유라는 말은 사치입니다. 당장 내일 생존을 걱정해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개인적으로 언제 어떤 계기로 탈북해 남한으로 오셨나요.
아버지가 35호실 조사부 소속으로 근무하며 일본의 도쿄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중국, 홍콩, 마카오 등을 오가며 활동했어요. 아버지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유세계에서 활동하다보니 북한체제의 모순을 깨닫고 가족을 함께 탈출시켰습니다. 1999년 가을 중국 대련 비행장을 통해 가족들 모두 중국으로 왔고 2003년 3월 남한으로 왔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일본 조총련 소속으로 북송교포로 갔었어요. 다른 탈북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에 비하면 고생을 안하고 남한에 온 것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라는 곳에서 선전선동에 관한 일을 했었습니다.
- 한국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정일의 철권독재에서 시달리는 북한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는 것을 북한에 대한 도발이라며 폭파, 조준폭격, 처단 등의 말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백주대낮에 연평도를 포격하고 천안함을 폭침시키는 것이 진짜 도발이죠. 그런데도 종북세력은 대북전단을 보내는 것이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고 남북관계를 수렁으로 몰아간다고 호도합니다. 이는 비상식적이고 편향된 논리입니다. 이러한 선전선동에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진실을 거짓이라 하고 거짓을 진실처럼 믿어서는 안 됩니다. (미래한국)
인터뷰/강시영 기자 ksiyeong@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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