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창립 50주년 전경련, 기로에 서다
[스페셜 리포트] 창립 50주년 전경련, 기로에 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1.10.3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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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창수, 이하 전경련)가 기로에 섰다.

1961년 자유시장경제와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설립된 전경련은 故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등 대표적 경제인 13명의 주도로 설립됐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62년, 전경련은 울산공업단지 개발을 정부에 제안했고 1968년에는 종합무역상사의 설립을 건의하는 등 경제발전을 위한 굵직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국가발전에 기여해 왔다. 특히 1997년 정치권이 무노동.임금 원칙 폐기 등을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안을 추진할 때에는 노동법 개정의 문제점을 적극 알리는 신문광고를 내면서 여론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한 전경련이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전경련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싸늘하다. 지난 10월 5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50주년 행사는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분위기가 무거웠다. 기존의 야권과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까지 전경련 해체설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의 질타와 한나라당의 해체 요구    

지난 창립 50주년 리셉션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1960년대 초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발돋움 했다”고 말하면서도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허 회장은 여론을 의식하는 듯 ‘공생발전과 동반성장의 중요성’을 내내 강조했고 “국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해 신뢰와 사랑을 받는 경제계로 거듭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지난 8월 31일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30대 대기업 총수들과 '공생발전'을 주제로 한 오찬간담회를 열었다. 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이 산업화를 통해 성공한 데는 전경련 회원사들의 역할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이제는 향후 50년을 내다볼 때 전경련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경제단체 측면에서 고민해 달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부드러운 요청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질타였다. 전경련이 재벌들의 이익만을 위해 노력할 뿐 ‘공생발전’이나 ‘초과 이익 공유제’와 같은 자신의 국정이념에 반대하는 것에 이명박 대통령의 불편함이 있었음은 분명했다.

최근 채찍을 든 사람은 다름 아닌 박진 한나라당 의원. 박 의원은 지난 9월 29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전경련이 현 체제로는 기업과 사회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며 차라리 ‘공익 싱크탱크’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한마디로 ‘전경련 해체’를 주장한 것이다.

해체 요구의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의 시각과 같은 선상에 있었다. 박진 의원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수요가 다양해 대기업만의 힘에 의한 경제발전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해 이익을 나누고 그 이익을 바탕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해 국가경제를 확대하는 상생과 균형의 시대가 온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 경제계 맏형 역할을 해왔던 전경련이 졸지에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날선 비판을 받게 된 현장이었다.

 

당당히 시장경제 세력 후원하는 日 경단련   

이러한 정치권의 비판이 타당한지는 그 판단을 좀 유보하더라도 전경련의 역할이 재벌들의 사랑방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정당한 듯하다.

우리 전경련이 롤모델로 벤치마킹했던 일본의 경단련(經?連)은 일본을 움직이는 정치권, 정부 관료, 그리고 국민과의 사이에서 적절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며 꾸준히 영향력을 증대시켜 왔다. 경단련은 과거 개발년대 초기, 산업자금 확보를 위해 정부 관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정부 관료들에게 보란 듯이 정책기획과 대안제시를 하면서 일본을 리드하는 싱크탱크로 변신했다.

경단련은 환경오염의 주범, 사회 부조리와 온상이라는 지탄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 최초의 기업환경헌장을 만들어 공표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최대의 기부단체 역할을 하며 대국민 이미지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또 이들은 국가라는 장벽이 무너져 가는 현 시대에 맞춰 WTO, EC, 자유무역협정, 지역별 국가간 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6월 요네쿠라 히로마사(米倉弘昌) 경단련 회장은 간 나오토 총리가 재생 가능 에너지 촉진법안의 국회 통과에 의욕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 관해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므로 땅에 발을 붙이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히로마사 회장은 “현재 상태로 높은 코스트의 태양광 발전 등의 성급한 도입은 전기요금 인상을 가져오게 되고,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헤아릴 수 없다”라고 지적한 것. 히로마사 경단련 회장의 이러한 발언은 간 나오토 총리가 포퓰리즘정책으로 집권 연장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을 경고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일본 경단련은 시장경제를 훼손할 수 있는 정치권의 행태에 강력한 경고를 마다하지 않는 뚝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경단련이 처음부터 그러한 자기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1946년 8월에 설립된 경단련은 일본 자민당을 탄생시킨 실질적인 배후였다. 24개의 상설위원회와 간담회, 방위생산위원회, 우주개발추진회의를 운영하는 경단련의 회장은 '재계의 총리'라 불릴 만큼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反시장 좌파시민단체의 돈줄(?) 대기업

이러한 경단련은 2004년부터 정책평가를 도입해서 각 정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해왔다. 정책분야 별로 5단계로 채점해서 득점에 따라 회원기업이 정치자금을 제공하도록 촉구해 왔던 것. 그러나 항상 정책평가의 결과는 과거 여당이었던 자민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2008년의 정치자금을 보면 자민당이 약 27억임에 비해 민주당은 약 1억엔 밖에 되지 않는 등 크게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민주당이 집권하자 경단련의 입장에 변화가 생겼고 결국 지난해 경단련은 정책평가를 통한 정치자금 후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일본 경단련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과 노선을 분명하게 해왔다. 반면 우리 전경련은 항상 정치권의 눈치 보기에 급급해왔다는 평가다.

2003년 노무현 정권 하에서 전경련의 정치자금이 문제가 됐을 때 전경련은 마치 죄인처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자유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전경련 어디에서도 일본 경단련처럼 당당하게 ‘시장경제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에 후원금을 내겠다’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지난 8월 전경련이 회원사별로 담당 국회의원을 지정하고 로비활동을 배분했던 행태는 전경련의 목적이 대기업을 위한 로비창구라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을 뿐이다. 전경련과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GS 그룹 등이 나눠 맡을 로비 대상에는 당대표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 등 여야 지도부, 정무위 기재위 환노위 등 국회 관련 상임위 위원장과 여야 간사, 법안심사소위 위원장 등이 망라돼 있었다.

로비 방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별면담과 함께 후원금, 출판기념회, 지역구 공익 사업 및 행사 후원, 지역민원 해결 등으로 정책중심이 아닌 개별 정치인들을 마크업하는 방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이에 반하는 정치인들을 견제하기 보다는 그들과 타협을 통해 개별기업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자유보수진영에서 마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본질은 정작 다른 곳에 있다. 전경련이 실질적으로 재계를 대변하는 입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 대기업 오너가 사석에서 밝힌 '전경련 무용론'은 전경련의 무기력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전경련은 '인물난'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었다. 조석래 회장 후임 인선을 위한 지난번 총회에서는 유력 오너들이 줄줄이 회장직을 고사했다. 그렇다면 정작 전경련의 문제는 전경련 내부에 있다기 보다는 실질적인 회원으로 움직이는 우리 대기업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정확한 진단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대기업들이 자유경제와 시장보다는 자기 기업의 개별적 이해관계에만 골몰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장경제 축소 주장한 장하준, 현대 포니정 혁신상 수상

이러한 사실은 지난 좌파 정권 10년 동안 대기업들이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에 휘둘려오며 그들을 후원하고 돈을 대줌으로써 자본주의외 시장경제의 힘을 스스로 약화시켜왔다는 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노무현 정부 하에서 대기업들은 좌파단체 지원에 너도나도 나서면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좌파단체들을 살찌워 왔다.

노무현 정부가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역점 사업으로 내걸면서 좌파 시민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지자 대기업들의 기부금도 크게 증가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엔 기부금 총액이 353억원이었으나 2003년에는 1045억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기부금 총액이 1825억원까지 증가했다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에는 1389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중심에는 박원순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동아일보는 아름다운재단 모금액을 연도별로 보면 2000년 1억4300만원, 2001년 13억4900만원, 2002년 21억6300만원, 2003년 123억7600만원, 2004년 92억9500만원, 2005년 110억1800만원, 2006년 102억9100만원, 2007년 138억6100만원, 2008년 129억500만원, 2009년 112억2400만원, 2010년 81억7800만원으로 총계 928억300여만원이라고 밝혔다. 이 모금액의 대부분은 기업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직접 기부금이 아니더라도 제휴사업과 같은 형태로 모금된 금액도 상당하다.

문제는 이 금액의 상당부분이 매년 좌파단체들의 활동비와 사업비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밝힌 바에 의하면 참여연대가 대기업을 비판하면 대기업은 비판을 무마시키기 위해 아름다운재단 측에 기부금을 내고 참여연대는 대기업의 비판을 중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노무현 정부 시절 생겨난 시민단체 활동가를 위한 사외이사 자리나 해외연수도 구설수에 올랐다. 박원순 변호사가 포스코.풀무원홀딩스 사외이사를 역임했고, 한국전력.한전KDN.한전기술.남부발전.석탄공사 등 정부의 입김이 강한 회사에 환경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대거 사외이사 등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장하준 교수와 같이 자유기업과 시장경제를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가들에게도 현대자동차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 해 장하준 교수에게 현대자동차 설립자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업적을 기리는 ‘포니정 혁신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전경련, “노무현 때가 좋았다”(?) 

 
대기업들의 이러한 행태는 결국 전경련의 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평가다. 전경련이 자유기업원과 한국경제연구원과 같은 시장경제 홍보와 연구기관을 지원하고는 있다지만 정작 대기업 총수들이 발벗고 나서서 좌파단체를 지원하는 상황에서 전경련의 자유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한 활동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더해서 과연 재벌 3세들이 좌파와 맞서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구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취재 중에 만났던 한 대기업 임원은 “오히려 노무현 정부 때가 더 일하기 쉬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친노그룹의 386핵심들이 경제를 모르니 돈 좀 집어주고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도해주면 군말 없이 따랐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2002년 삼성그룹으로부터 7억원을 받았던 이광재 전 의원의 사례는 노무현 정권과 삼성 간에 한때 깊은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전경련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 등에서 터져 나오지만 사실 그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와 여당은 공생발전을 위한 전경련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전경련이 해야 할 일은 자유기업과 시장경제의 논리를 더욱 튼튼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유럽이 과도한 복지로 경제성장이 멈추고 불황에 접어들고 있는 사실로부터 전경련은 여야 할 것 없이 복지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하고 국민들이 자유시장경제의 장점을 재확신할 수 있도록 회원 기업들을 독려해 적극적인 대국민 계몽운동을 촉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자유보수진영에게 도움이 된다는 의견들이 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작금의 전경련이라면 우파진영이 나서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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