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중국 방문 때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방까지 가서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보통 이상의 환대다.
후계체제 구축에 있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북한과,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 국익에 맞는다고 판단한 중국의 이해가 일치한 것이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발표문을 보면 “100% 지지”라는 인상을 피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한편 미국은 북.중 관계를 좀 더 신중히 지켜보겠다는 자세다.
지역의 안정을 우선하는 중국
중국의 환구시보 30일자는 ‘안정된 북·중 관계가 중국에 가장 유리하다’는 사설을 실어 북한문제가 중국과 한.미.일 사이에 마찰을 유발했던 경위를 돌아보고 중국은 북한의 대외개방을 지원하고 지역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혼란을 두려워하는 중국은 북한 경제 상황을 가장 염려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원활한 후계체제 구축을 위해 국내의 안정이 필요한데 작년 말의 화폐개혁 실패로 인한 경제 불안 극복이 시급하므로 두 나라의 이해가 여기서 일치하는 것이다. 중국은 앞으로 동북3성(길림, 요녕, 흑룡강)과 북한의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경제를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동안 북·중 관계를 냉전시대의 ‘특수한 우호관계’로부터 ‘정상적인 국가관계’로 변화시켜왔지만 김정일의 건강 불안과 경제위기 속에서 권력 계승을 추진하려는 북한의 현황을 보면서 이번에는 특별 대우를 해줄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번 중국 방문은 김일성이 다녔던 길림성의 중학교와 항일투쟁 사적 순례를 표면적인 목적으로 했고 김정일이 방문한 지방도시인 장춘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일부러 찾아가는 형식으로 ‘중국에 의지하는’ 인상에서 벗어나려는 북한의 체면을 살려 준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정일은 혁명사적 순례보다 중국과의 화담과 기업 시찰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동북3성과 북한의 경제협력에 관해 심도 있는 협의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은 나선(羅先)시에 대한 외자 유치를 원하고 있으며 인접한 동북3성으로부터 투자를 절실히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대중 불신감 증대 가능성
신화사통신에 의하면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은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자력갱생뿐 아니라 대외협력이 불가결하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길이며 국가의 발전을 가속시키는 길” 이라면서 전에 없이 강력한 표현으로 북한의 대외 개방을 촉구했다.
안보면에서는 “한국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UN 안보리 의장 성명 이후 새로운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한반도 정세의 완화와 외부 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김정일에게 촉구했다. 한국과 미국의 시선을 의식해 무조건의 ‘북·중 밀월’이 아님을 시사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대를 이은 북·중 우호’라는 김정일의 발언을 되풀이 보도하고 있으나 신화사통신은 이를 언급하지 않고 ‘청소년 교류의 중요성’ 등을 소개할 뿐이다. 김정은에 대한 세습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미묘한 온도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이번에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과의 회담보다 중국 방문을 우선했다. 오바마 정부가 이런 태도에 불쾌감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오바마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서 중국이 북한을 옹호한 일과 한미 합동 훈련에 반발한 것으로 보아 동북아의 안정에 관한 중국의 진의를 의문시 하게 됐다.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받아들인 일은 이런 중국 불신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미국의 앞으로 중국의 태도를 계속 봐가면서 6자회담 문제를 포함한 대북정책을 모색해 갈 것이다.#
마이니치신문 9/6
정리·김용선 객원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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