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6일, 국회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정쟁 속에 민생법안 논의를 뒷전으로 미뤘던 여야가 하룻만에 6개 상임위원회에서 459건의 법안을 상정하거나 심의했던 것. 이날 전체회의에서 61건은 본회의 개의 후 단 1분 만에 일괄 상정됐다.
이 과정에서 황정아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수사에서 검찰이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의 통신이용자 정보를 수집하면서 민감 자료인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까지 수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자신이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상정할 것을 요청해 긴급 상정됐다. 민생을 해결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치 투쟁을 위한 입법안이었다.
‘방송 장악’ 이슈로 국회를 막장까지 치닫게 만들었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도 이날 19번째 전체회의에서 처음으로 과학 관련 법안을 안건으로 올렸다. 정쟁에 정쟁을 거듭하던 국회에서 과연 이런 법안들이 세밀하게 검토되었다고 믿는 국민은 없다.
개원 3개월을 맞는 22대 국회 ‘처리 법안 0건’을 기록하던 대치 정국에서 수백개의 법안 안 건이 몰아치기로 입법화 되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은 정상일까. 지난 2020년, 민주당이 개원 2개월 만에 몰아부쳐 입법화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그야 말로 모순과 허점 투성이의 법안이었다.
그 결과 상가 임대료와 전월세 상승으로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됐다. 이 결과는 부동산 시장에 교란을 주어왔고 그렇게 누적된 모순들은 어느날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위험)으로 등장한다. 특히 야당이 정부의 경제컨트롤 타워를 흔들 경우, 그 위기는 정치실패로부터 정부실패로 이어지고 국가실패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정치실패가 불러온 97년 IMF외환위기였다. 문제는 달러 부족이 아니라, 달러를 차입할 수 없게 된 국가 신인도가 화근이었다. 그것은 97년 정치 상황이 불러온 정부실패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정치실패가 불러왔던 ’97 IMF외환위기
김영삼(YS) 정부 말기인 지난 1997년, 우리 경제에 암운이 드리우자 정부는 노동개혁을 추진했으나 유력한 대선 후보 DJ와 민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해 무위로 돌아갔다. 1996년 12월26일 노동법 날치기 파동, 야당의 반발과 노동계의 투쟁, 1997년 1월21일 노동법 재개정 착수 등의 과정을 거치며 노동개혁은 미봉됐다는 평가를 받았고, 우리나라는 그해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다.
YS 정부 초반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당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여야가 정략적으로 갈등을 벌이면서 금융개혁과 노동개혁이 표류했고,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IMF 위기를 당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당시의 이 사건을 제대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 정치적 갈등에 의한 YS의 노동개혁 실패가 IMF위기로 이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정치실패로부터 블랙스완이 어떻게 등장하는 지, 그 경로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1994-95년 중 9% 가까운 고도성장을 경험한 후 1996년 들어 경기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1996년의 6.8% 경제성장률은 외양적으로 연착륙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내용면에서는 문제가 심각했다. 90년대 경제성장은 외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미 그 질에 있어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노동쟁의가 조직화되던 시기였다. 노사분규는 이전 80년대보다 줄어들었지만, 90년대를 맞이한 노동운동은 더 이상 80년대의 그것이 아니었다.
90년대 노동운동은 학생운동을 넘어서 힘과 조직력을 가졌고, 사업장별로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90년 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와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 등을 거쳐 마침내 민주노총이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탄생하게 된다.
80년대 후반, 운동권의 주사파들이 노동현장에 위장취업 등으로 침투하면서 파업은 정치권을 위협했고 노사관계는 노(勞)-자(資) 간 이념 대립으로 치달았다. 이는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거품고용 만연을 초래해서 대부분의 국내기업에서 사내 잉여 인력이 30%에 달하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 무엇보다 임금상승률이 생산성증가율을 웃돌아 단위노동비용은 88년 2.3에서 96년에는 그 배에 가까운 4.0에 이르고 근로자 1인당 실질임금상승률은 평균 91.8%에 달했다.
당시 수출이 고용을 창출하던 한국 경제는 중국의 부상으로 가격면에서 크게 밀리고, 제품에서는 일본에 밀리는 샌드위치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기업들로서는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였으나 강력한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경영개혁은 표류하고 있었다.
경영개혁의 표류는 기아사태를 불러왔다. 강만수 재경원 차관은 책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2005년)>에서 “세계적인 대기업인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를 거부하며 석 달을 버티는 동안 우리의 대외신인도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강경식 부총리는 앞의 책에서 “7월 기아사태 이후 해외 금융시장에서는 우리 정부의 구조적 문제 해결 의지와 정책의 실천력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이로 인해 “차입 금리도 올라가는 추세였고 외화 확보도 어려워지고 있었다”며 “특히 국제신용평가회사에서는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전했다.
당시, 이 문제는 진보 운동의 현장에서 지켜보았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의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그는 지난 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아자동차가 부도사태에 직면하자 김영삼 정부는 기아자동차를 삼성이 인수토록하려 했으나,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그것을 김영삼 대통령의 출신지역인 부산에 대한 특혜이자 삼성과의 정경유착이라고 비난하면서 끝가지 반대해서 결국 기아자동차는 부도가 나고 이것은 외환위기를 초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증언했다.
그 당시 시민단체들은 ‘기아실리기 국민운동 본부’를 구성해서 모금운동까지 전개했는데 그 결과,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를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외환위기를 초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 장기표 대표는 “만약 그때 기아자동차가 삼성에 인수되었더라면 외환위기사태가 초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97년 IMF외환위기는 노동 개혁에 실패한 YS정권이 그 정치적 리더십을 잃으면서 反기업 정서들을 불러왔고 기업들의 경영 위기로 이어진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이러한 정치실패가 정부실패로 이어지는 경로는 지금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에도 그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제질서로부터 파생하는 리스크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자가당착과 국가실패의 위험
일단 미중간에 격화되는 글로벌 주도권 경쟁은 경제와 안보를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어 자유 교역과 다자간 질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수출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전망에 리스크를 더하고 있다.
폴리코노미(Policonomy)라는 新중상주의가 강대국들의 대외적 질서라면, 이들 강대국들의 내부에는 2020년 코로나19가 만든 거대한 유동성 거품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증시 급락과 엔케리 트레이드로 인한 금융자산 시장의 충격과 불안은 이러한 자산버블, 유동성버블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당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예정대로 도입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내놨다. 금투세는 대규모 주식과 채권을 거래하는 외국인 투자자들과 기관에는 예외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개미 투자자들에게는 불리해서 이들이 해외투자로 발길을 돌리게 되는 결과가 어떤 블랙스완을 만들어 낼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개인 투자자의 해외증권 투자액은 91억 달러로 2021년 4분기(108억 달러) 이후 분기 기준으로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개인 투자자가 기관 투자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투자 주체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개인들이 금투세로 인해 국내 금융시장을 이탈할 경우, 이를 외국인 투자자들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알 수없다. 금융시장을 떠난 개인들이 부동산으로 몰려가서 자산 버블을 키우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민주당이 외국인이나 기관이 아닌 개인들에게 이러한 불리한 세제를 도입하는 배경은 이해하기 어렵다. 부자와 서민을 갈라치기 하겠다는 포퓰리즘이 아니라면 이는 부동산 자금 유입을 부추켜 윤석열 정부의 경제실패를 유도하려는 정치 전략이 아닌지 의심마저 드는 대목이다.
이러한 금투세와 더불어 민주당이 한치 양보 없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 역시 그 의도를 알 수없기는 마찬가지다. 김종석 전 여의도연구원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과 다수당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왜 자기 정권 시절에 노란봉투법을 시행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 법안이 불러올 경제적 폐해를 잘 알기 때문이라는 의미였다.
민주당이 현재 추진하는 노란봉투법이 그 본질에서 정치투쟁이라는 점은 설명이 필요없어 보인다. 그러한 정책은 결국 경제실패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경제 실패의 책임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뒤집어 씌워서 정권교체를 노리겠다는 것은 그렇다쳐도, 이런 反시장적 정책이 불러올 블랙스완을 민주당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자신들에 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정치실패가 정부실패로 이어지고 그것이 국가실패로 연결된다는 의미다.
중남미의 정치실패의 교훈
정치실패가 국가실패로 이어진 경험은 중남미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국가로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를 꼽지만, 사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브라질, 칠레 등도 유사한 포퓰리즘에 의해 지속적으로 경제가 실패하고 국력이 쇠퇴하는 경험을 겪었다. 2022년, 대외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중남미 내 포퓰리즘 확산의 사회·경제적 영향과 시사점>에 의하면 집권 정부가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 정부의 포퓰리스트 스코어가 1만큼 높아지면 외국인투자 유입은 중도 및 우파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와 비교하였을 때 평균적으로 0.78% 낮은 외국인투자 유입을 경험했다.
흥미로운 것은 중도및 우파 성향의 포퓰리스트 정부에서는 집권 정부의 포퓰리스트 성향 강화가 외국인투자 유입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외국인투자는 중도나 우파 포퓰리즘 정권하에서 좌파 포퓰리즘 정권에서보다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보고서는 이러한 결과는 거의 모든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는데 좌파포퓰리스트가 집권하는 경우, 거시경제 환경이 악화하거나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2000년대 등장한 급진적 포퓰리스트 세력은 반신자유주의와 반세계화 담론을 공유하였다. 기성 정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불평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일으켰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모델을 ‘부패한’ 정치인과 기성 정당과 결부시켜 공격하고, 포퓰리즘과 ‘21세기 사회주의’의 결합을 통해 민주주의의 포용적·참여적 형태와 재분배를 강조하는 경제정책을 시행했다.
재분배를 강조하는 경제정책은 2000년대 초반부터 나타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자원 부국의 급진적 포퓰리스트는 유리한 대외 여건을 활용하여 주요 지지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사회지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재분배를 강조하는 확장적 경제정책을 운용하였다.
예를 들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국영 석유 기업의 수출·수입 대부분을 대통령 통제 아래 있는 개발기금으로 배정하여, 이를 주요 지지층을 겨냥하는 다양한 사회 프로그램을 위한 자금 조달에 사용하였다. 2010년대 들어서도 포퓰리즘 확산세는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이념적 성향이나 추구하는 정책 방향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기존 정치제도와 기성 정치세력을 공격하고 ‘선량한 우리’와‘부패한 그들’을 나누는 이분법적이며 도덕화된 담론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행정부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시장의 복수’였고, 우파 포퓰리즘과 교대하는 정치 실패는 결국 정부와 국가실패를 노정하면서 뒤처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