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러·北·中 대북제재 위반 노골화?
[심층분석] 러·北·中 대북제재 위반 노골화?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4.05.0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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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반대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해체 이후 

지난 3월 28일(이하 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렸다. 2009년부터 활동해 온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활동 연장을 결정하는 회의였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반대, 중국의 기권으로 인해 미국, 한국, 영국 등 다른 이사국 13개국이 찬성을 했음에도 결의안은 채택되지 못했다. 15년 동안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 여부를 감시해왔던 조직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가 3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일 등 총 10개국과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가 3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일 등 총 10개국과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활동 종료…韓美 등 러시아 비판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이하 전문가 패널)은 이로써 오는 4월 30일까지만 활동하게 된다. 유엔 회원국의 대북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독립기구가 사라지게 된 셈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대북제재 감시망에 구멍이 뚫리게 됐다”고 우려했다. 

3월 29일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유엔 안보리 북한제재위 전문가 패널 활동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중단되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인애 부대변인은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핵·미사일 개발과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 등 북한의 대북제재 위반 행위를 충실히 감시해 온 전문가 패널 활동을 종료시킴으로써 국제사회의 눈과 귀를 막아 북한의 불법적 행위를 비호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부대변인은 이어 “전문가 패널 활동이 중단되더라도 (유엔 회원국의) 대북제재 준수 의무에는 변함이 없다”며 “북한이 잘못된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외교부도 “북한은 그동안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핵·미사일 도발, 불법적 무기 수출과 노동자 송출, 해킹을 통한 자금 탈취,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등 제재 위반을 계속해왔다”며 “(전문가 패널이 그동안 활동하면서)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외교부는 “유엔의 대북제재 이행 감시 기능이 더 강화돼야 할 시점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이사국들의 총의에 역행하면서 스스로 옹호해 온 유엔의 제재 규범과 안보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키는 무책임한 행동을 택했다”면서 “이번 표결에서 나타난 대다수 이사국의 의지를 바탕으로, 북한이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하고 비핵화의 길로 복귀하도록 기존의 안보리 대북제재 규범을 굳건히 유지할 것이다. 이를 엄격히 이행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가 북한의 정제유 밀반입에 대응하기 위한 실무 협의체를 발족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해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이 포착된 지점. / 연합
한미가 북한의 정제유 밀반입에 대응하기 위한 실무 협의체를 발족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해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이 포착된 지점. / 연합

2006년 창설 이후 15년 동안 대북제재 이행 그물망 좁혔던 전문가 패널

전문가 패널은 그동안 유엔 회원국의 대북제재 이행 여부를 감시하면서 큰 성과를 거뒀다. 주요 활동만 봐도 화려하다. 2010년 5월 첫 보고서에서 북한이 유엔 제재를 피해 핵무기·탄도미사일 관련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듬해 5월에는 북한의 농축우라늄(UEP) 프로그램 개발이 군사적 목적이며, 북한이 수출금지 무기를 거래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2년 6월에는 북한이 중국 다롄항을 통해 화물을 불법환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6월에는 북한이 열병식에서 공개한 이동식차량발사대(TEL)의 기본이 되는 차량을 중국에서 불법 수입했다고 밝혔다. 

2014년 3월에는 파나마 당국에 적발될 화물선 ‘청천강’호 사례를 통해 북한의 불법화물 은닉 수법을 밝혀냈다. 2015년 2월에는 북한이 불법 무기거래를 위해 선박 이름을 변경한 사실을 폭로했다. 2016년 3월에는 북한 기업소들이 중동·아시아·아프리카에서 외화벌이 활동을 벌이며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7년 3월에는 제재 대상인 북한 선박 8척이 운항 중이며, 중국 무역업체를 통해 미사일 부품 등을 조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 3월에는 북한이 국제해사기구(IMO)가 의무사항으로 하고 있는 자동선박식별장치(AIS)를 고의적으로 끄고, 변칙항로, 해상배회, 서류조작, 제3국 선적에 대한 환적 등을 통해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같은 해 7월에는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를 거쳐 제3국 선적 선박에 실려 인천과 포항에 들어온 사실을 밝혀냈다.

2019년 3월에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등에서 사용 후 핵연료봉을 인출하려 한다고 보고했고, 2020년 3월에는 북한이 영변 경수로 건설을 계속하는 것은 물론 지속·평산 우라늄 공장도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북한 IT 노동자들의 해외 근무 실태와 이들이 외화벌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김정은 정권에게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을 밝혔다. 

2021년 3월에는 북한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단거리 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체제를 이미 구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2022년 4월에는 북한이 요격 회피 역량을 가진 극초음속 미사일을 완성했거나 SLBM의 실전 배치를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위성사진을 분석해 북한이 2018년 5월 공개적으로 파괴했던 풍계리 핵실험장 및 관련 시설을 복구하는 정황과 추가 핵실험을 준비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2023년 4월에는 북한이 핵물질을 꾸준히 생산 중이라고 밝혔고, 올해 3월에는 북한이 사이버 탈취로 지난 6년 동안 4조 원대 수익을 올렸다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의 호화 외제차, 김여정과 리설주의 명품 등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을 공개했다. 이처럼 전문가 패널은 개별 국가들이 밝혀내거나 감시하기 어려운 북한 및 전체주의 국가들의 대북제재 회피 및 위반을 찾아내 유엔 회원국에 공개함으로써 대북제재 포위망을 점점 더 늘려나가고 좁혀나가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한미 전문가들 “유엔 안보리 아닌 제3의 새로운 감시 체계 만들어야”

한국과 미국 안보전문가들은 러시아 반대 때문에 전문가 패널 같은 기구를 유엔 안보리 체제에서 새로 만들기는 어렵다면서 독자적 대북제재 이행감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3월 29일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빅터 차 한국 석좌와 엘런 김 선임연구원은 홈페이지에 올린 리포트를 통해 “그동안 10건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동의했던 러시아가 이제는 제재를 준수하지 않고 있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에 대응하는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거부권 행사로 대북제재위의 권한을 종료한 것은 물론 기존 제재에 대해 ‘일몰 조항 첨부’을 요구함으로써 대북제재 체제를 영구적으로 해체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에 착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으로 러시아가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더 심화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북한의 지원 대가로 위성, 핵잠수함,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군사 기술을 제공해 비확산 질서를 아예 포기할 우려가 크다. 북한의 (탄약) 재고를 회복하고, 러시아에 더 많은 탄약을 공급하기 위해 새로운 탄약에 대한 공동 생산 협정을 맺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푸틴으로서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추가 군사지원법이 의회를 통과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북 간 호혜적 협력을 지속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결정적인 이익을 얻고자 안보리에서 북한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가 패널이 사라지면 유엔 회원국 입장에서는 현재 대북제재 체제에 생긴 구멍을 메우고 이행을 감시할 제3자 기구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차 석좌 등은 “미국, 일본, 한국, 호주와 유사한 입장을 가진 다른 파트너 국가 등 핵심 국가들이 정보, (대량살상무기 등의) 확산 저지, 제재 정책 집행을 위한 입법 등에서 공조해야 한다”며 “주요 7개국(G7)과 호주, 한국, 스페인 등이 적극적으로 정책 공조를 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효과적인 대체 체제를 만들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4월 1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이상근 연구위원의 보고서를 소개했다. 이상근 연구위원은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활동이 중단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위반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러시아는 대북제재 결의) 수출 상한선을 넘어서는 양의 원유와 정제유를 해상 운송을 통해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관광비자·유학비자 발급을 통해 북한 노동자 편법 고용 등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상근 연구위원은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에 같은 성격의 새로운 기구를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유엔 체제 밖에 해당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다국적 조사기구 설립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별국가의 조사보다 다양한 국가들이 참여한 기구의 조사 결과가 신뢰성이 높을 것이므로 광범위한 국가들이 추천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그런데 이 연구위원이나 차 석좌가 말하는 것과 유사한 체계가 이미 있다. 다만 사람들 이목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바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미래에 있을 대규모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가 안보 핵심과제라고 판단했다. 2003년 5월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이 폴란드 크라코우 연설에서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를 주창했고, 같은 해 9월 프랑스 파리에서 PSI 차단원칙(The PSI Statement of Interdiction Principles)에 관한 합의문을 11개국이 공동 발의하면서 체제가 출범했다. 

이후 미국 주도로 PSI 체제는 급속히 발전했다. 2023년 5월 기준으로 EU 회원국과 중국을 제외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등 106개국이 체제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참여하지 않다가 2005년 12월에야 부분적으로 참여했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PSI의 특징은 대량살상무기와 관련 품목의 이동을 차단하며, 이때 무력을 수반한 강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PSI는 이를 위해 2003년 9월 ‘4개 차단 행동원칙’을 채택했다. 여기에는 참여국들이 단독 또는 공동으로 항구, 공항, 해로, 항공로 등에서 취해야 할 구체적인 조치들도 명시해 놓았다.

또한 ▲PSI 참여국들은 PSI 훈련을 통해 이행 능력을 강화하고 정보 공유를 추진해야 한다 ▲대량살상무기 의심물질을 거래하는 선박·항공기에 대해서는 차단 작전을 실행한다 ▲미국은 PSI와 병행하여 컨테이너 안보구상을 시행, 미국행 컨테이너의 3분의 2가 출발하는 해외 항만에서 검사를 시행한다 등의 원칙을 갖고 있다. 

PSI 운영전문가그룹(OEG) 발전시키면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대체 가능 

PSI는 시행 과정에서 이미 성과도 올렸다. 2003년 8월 대만 가오슝에 정박 중이던 북한 선적 ‘기흥’호를 수색해 로켓연료로 전용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압수했고, 같은 해 10월 말레이시아에서 리비아로 향하는 독일 선박에서 우라늄 원심분리 농축기 부품을 찾아내 차단했다. 

이런 PSI에는 ‘운영전문가그룹(OEG)’이 존재한다. PSI 참여국 가운데 20개국이 동참한 OEG는 PSI 훈련을 지원하고 PSI 참여국과의 회의·워크숍·훈련 등을 주최한다. 특정 분야 협력 심화를 위한 실무그룹 구성도 담당한다. 또한 회원국들과의 협력도 지원한다. OEG는 또한 PSI를 발전시키기 위한 개념을 논의하고 개발하는 포럼 역할도 맡는다.

PSI OEG가 눈길을 끄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영국, 폴란드 등 대북제재를 적극 지지하는 나라들은 거의 다 참여하는 반면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북한을 돕는 나라가 없다는 점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을 대체할 수 있는 ‘토양’으로 적합하다는 뜻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감시에 가려져 있었을 뿐 PSI는 여전히 활동 중이다. 지난해 5월 30일 제주에서는 PSI 고위급 회의가 열렸다. 나흘 간 열린 회의에 70여 회원국 대표가 모였다. 이어 31일 한·미·일·호주 등 여러 국가 해군이 참여한 해양차단훈련 ‘이스턴 엔데버 23’이 시작됐다.

함정 7척, 항공기 6대. 승선검색 6개팀 등이 참가해 대량살상무기와 관련 물품을 적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에 대한 차단과 승선 검색 과정에 대한 훈련을 중점적으로 실시했다. 이처럼 지금도 살아 있는 PSI 체제를 보다 진화시키면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보다 더 강력한 기구로 만들 수 있다. 특히 PSI가 무력까지 동반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북한의 대북제재 이행 감시 강도 또한 더욱 높일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하는 것 또한 저지할 명분이 있다. 미국은 PSI 출범 이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조치를 요구한 유엔 안보리 결의 1540호 채택, 2005년 해상불법행위억제협약(SUA) 채택 등 국제법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애썼다. PSI 참여국 영해에서 대량살상무기 적재 의혹 선박에 대한 강제 검색 및 화물 압류가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 상의 ‘무해통항권’을 침해한다는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중국이 이미 남지나해와 동지나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펼치면서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대응할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한미 전문가들은 PSI 체제로는 충분치 않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PSI 체제를 버릴 필요는 없다. 다만 PSI 체제를 토대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 인도·태평양 안보협력체 ‘쿼드’ 또는 미국과 영국, 호주 간의 안보기술협력체 ‘오커스(AUKUS)’까지 아우르는 대북제재 이행 감시기구를 창설한다면 그 효과는 상당할 것이라는 데 안보전문가들도 동의한다. 단 이때 한국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맡지 않는다면 다른 유엔 회원국들이 대북제재 이행 여부 감시 및 단속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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