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을 살린다며 전국 약 1200개의 시장에 연간 수억 원씩 지원하는 모습에 국가 예산 낭비라며 찬반양론이 크다. 비슷한 성격의 ‘골목상권 살리기’ 사업은 자영업자 약 600만 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그 가족까지 감안할 때 우리 사회 전체의 먹고사는 문제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정부의 전통시장 지원사업이 해마다 10% 이상의 시장 폐업과 약 8000개의 점포 폐쇄 등 사실상 실패로 이어지고 있어 골목상권 활성화는 업체 개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 지원도 다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골목상권 흥망의 대표적인 사례는 ‘O리단길’의 원조인 이태원 경리단길이다. 2000년 초반만 해도 10여 개의 카페와 레스토랑에 불과했는데 10년도 채 안 되어 그 숫자는 120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후 세컨브랜드인 ‘망리단길’도 급신장했다. 그러나 이후 연리단길, 운리단길, 용리단길 등 전국적으로 수십 개의 비슷한 길과 가게들로 인해 희소성이 사라지며 대기업 브랜드나 폐업이 이어져 지금은 2010년대의 영화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경리단길의 흥망성쇠는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참고할 만한 다양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온리원이 곧 세계 1위 제안
비즈니스를 할 때 상대에게는 아무 이익 없이, 요청하는 측이 어려운 형편이니 도와달라는 식이라면 십중팔구 거절당할 것이다. 소위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는 비즈니스의 기본이자 인간의 기본 심리다. 복지 대책이 아닌 사업 제안은 상권 형편이 어려워 도와달라는 형태보다는 상대의 이익이나 새로운 이익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때의 원칙 중 하나는 온리원(only one) 즉 희소성이다. 이 가게 외에는 없는 물건이거나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거나 또는 이곳의 것이 다른 데보다 품질이 월등하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다.
경리단길의 성공은 바로 이 희소성에서 출발했다. 경리단길은 이태원 지역의 외국 분위기와 어우러져 독특한 콘셉트의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고, 이는 방송 취재로 이어졌다.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장소의 매력은 호기심 많은 MZ세대들의 SNS 명소가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너무 많은 복제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매출이 나빠지는데도 건물주는 임대료를 세 배나 올려 기존 상권을 일으켰던 상인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졌다.
첫째 인사동길의 온리원 특징이다. 주변에 삼청동, 익선동길 등이 새롭게 태어나며 외국인 방문 장소 경쟁이 치열해지고, 한편으로는 도심 인구감소와 세운상가, 낙원상가 상권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데 꾸준히 명성을 높이고 있다.
지역 상인들의 꾸준한 노력이 밑바탕이지만, 다른 곳 상인들도 최선을 다하는 만큼, 확실한 차이점 중 하나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오래된 음식점들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음식점 중의 하나는 설렁탕집인데 그중에서도 119년째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며 서울시의 백년 가게로 지정된 ‘이문설렁탕’이 있다.
사실 갖가지 양념으로 맛을 더하는 프랜차이즈 설렁탕의 맛은 없다. 그러나 맛은 없어도, 마치 말로만 듣다 실제 평양가서 옥류관 냉면 먹으면 별맛 없는데도 계속 찾게 되는, 그 평범한 맛을 요즘에는 찾기 어렵다.
즉 ‘온리원’이란 꼭 특별하고 독특한 것을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맛을 지켜내듯 자극적인 것으로 가득한 현대생활에서 꾸준함과 평범함의 경험을 주는 유일한 곳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100년 넘게 중심을 지켜온 이문설렁탕 주변의 골목상권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사동 거리로 이어져 지역 상권의 시조새인 셈이다. 인사동길에는 100년은 안 될지라도 그러한 오래된 한정식과 독특한 메뉴의 집들이 많다. 흔한 설렁탕집 하나도 100년 넘는 집이 자리 잡고 있다면, 관광 목적의 3대 요소 중 하나인 ‘먹거리’로, 반드시 가야 할 이유를 주는 셈이다.
그런 만큼 인기 있는 노포 육성과 지원에 집중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서 이야기하는 플래그십(flag ship) 같은 긍정 역할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규슈 지방 ‘모지미츠(minatomachi)’는 해산물 카레 등으로 유명한데 100년 넘게 음식점이 이어지도록 주인 가족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삼고 지역사회도 이곳을 주인공으로 알리는 노력을 통해 국내외로부터 이 지역을 끊임없이 방문토록 유인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포천 ‘이동막걸리’의 경우에는 한때 전국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이동막걸리의 중심이 어딘지는 지금도 모호하다. 오히려 지금은 이름은 들어봤어도 다양한 후발 주자들의 막걸리가 더 유명세를 타고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이는 단순 막걸리 브랜드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포천 이동 지역 발전에도 영향을 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동막걸리만의 온리 원 특색과 찾게 만드는 이유를 만들지 못했다. 신세대의 트렌디한 맛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문설렁탕의 사례처럼 고유의 맛을 지키며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가게가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중앙과 지방 정부가 어떤 지역 또는 집을 주인공으로 지정해주지도 못했다. 상인들-지자체 제각각의 마케팅으로 그곳에서만 줄 수 있는 온리원 마케팅을 하지 못하는 사이 다른 지역에서는 고유의 맛을 내세워 막걸리 시장 점유율을 늘려갔다.
둘째 반복해서 알려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대표적인 불신 국가에 속한다. 세계적인 홍보컨설팅사인 에델만(Edelman)이 매년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하는 주요 국가 신뢰지표를 보면 매년 최하위권이고 평균 50점에 미치지 못한다. 같은 메시지도 최소 6번 이상을 반복해야 믿는다는 발표 내용도 있다. 그런 만큼 경쟁이 치열할수록 여섯 번 이상의 다른 채널을 이용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인사동의 사례도 그렇다. 매주 거리에서 열리는 다양한 버스킹과 행사들, 방송에 지속적인 노출, 해외에 알리기 위해 한국관광공사의 안내 영상에 소개되도록 했다. 또한 주변 조계사와 연계해 사찰음식을 상품으로 만드는가 하면 곳곳에 문화공간을 둬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는 노력을 병행했다. 인사동에 가면 전통음식과 한국의 문화를 체험한다는 고유의 강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지역상인-인근 유명 방문지-미디어 협업-정부의 지원 등이 함께 움직여 왔다.
최근 떠오른 익선동길의 경우 일반 고택을 음식점으로 개조해 외국인과 MZ세대들의 각광을 받고 있는데 당장은 인기가 높다 해도 인스타그램에 예쁜 가게가 노출되는 형태만으로는 곧 또 다른 상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소셜미디어 만으로는 전파 대상과 노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트렌디한 음식 또는 전통음식, 문화전시, 거리 공연, 방송, 신문 등 다양한 매력과 노출 수단을 통해 여섯 번 이상 색다르게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오히려 경리단길의 경우에는 초기 방송, SNS, 유명인 인터뷰,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다 유사한 내용이 새롭게 뜨는 또 다른 망리단길 등 다른 지역에서 넘어가다 보니 유명세를 잃게 된 것이다. 반복해서 알리는 노력을 소홀히 한 셈이다.
셋째 젠트리피케이션은 미리 지속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한때 가성비와 개성 있는 멋을 내세우며 길거리 캐스팅의 성지였던 서초구 가로수길의 경우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권이 무너진 대표적인 사례이다. 상권을 일으켰던 기존 상인들이 급등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며 점차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대기업 브랜드만이 차지하게 되어 개성이 없어졌다. 경리단길의 경우에도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세 배로 올리는 바람에 그 기존 상인들이 감당하지 못했다. 그 피해는 결국 10년 넘게 고생을 하며 상권을 키워온 중산층 상인들에게 타격이 크다.
이러한 시장의 실패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특정 상권이 떠오를 때 다양한 매력을 주기 위한 문화공간 등을 사전에 매입해 땅값의 기준으로 삼는다든지, 정부와 건물주, 임대인들의 의견을 모으는 거버넌스형 협의체를 구성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일본 규슈 유후인에서도 확인하듯이 오래된 백년 가게 전통을 함께 알리는 노력뿐만 아니라 유후인 철도 역사를 이용해 인류가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문화시설을 유치하는 것 그리고 가게들도 가까이에서는 중복상품을 팔지 않도록 논의하는 구체적인 협의체가 활성화 될 경우 일부 건물주의 일방적인 독단은 처음부터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나’ ‘내 상점’을 차별화하는 진짜 브랜드 ‘온리원’
정리하면 골목상권 활성화는 그곳만이 갖는 온리원을 확보하는 것이 탄생과 지속가능성의 핵심이다. 어찌 보면 마케팅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브랜드와도 비슷한 용어이지만 브랜드는 실체와는 다른 어떤 이미지를 포함하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마치 종이 빨대를 쓰며 스타벅스컵을 들고 거리를 걸을 때 마치 친환경 뉴요커의 이미지를 파는 마케팅이다.
그러나 실제는 가장 많은 1회용컵을 쓰는 기업이 개도국에서도 선진국과 비슷한 가격으로 커피를 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골목상권과 대척점에 있는 대형프렌차이즈점을 운영하는 백종원 대표가 오히려 골목상권의 수호자 이미지를 얻는 것도 대표적으로 실제와 이미지가 다른 사례이다. 온리원의 경우 진짜를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노출하며 사람들의 사랑을 꾸준히 이끌어내는 것이다.
활동하는 예능인 중 40년 넘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이경규도 항상 유일한 ‘나’에 대해 연구하고 강조한다. 내가 진짜 잘하고 좋아하는 낚시, 골프를 소재로 예능을 만든다. 거기에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유머, 유명인이지만 초짜 실력 해프닝 등 공감 코드를 심어 판매한다.
그 상품의 스펙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이끌어 낸다. 마치 유명 맛집에 가면 그 맛보다 유명인 누가 먹었거나, 시작이 어땠다 또는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 왔다는 스토리에 더 이끌리는 것과 같다. 한편으로는 버럭 개그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품성으로 어려운 후배들을 남몰래 돕는 미담제조기이다. 과거 ‘양심냉장고’ 프로그램도 본인의 실제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 그러면서 자신을 본방송에서만 드러내지 않고 다양한 앵글로 다뤄지는 것을 여유롭게 즐긴다.
이처럼 내게 있는 것,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콘텐츠로 유일하게 만든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1위인 셈이고 생명력이 길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유지하는 것은 공감 포인트를 얼마나 다양하게 녹이고 다양하게 여러 번 노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중앙과 지방 정부의 지원 역시 그런 콘텐츠를 발굴해 지원해야 한다. 전체적이고 대중적인 지원은 전통시장 지원의 부정적인 사례처럼 그 지역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하고 국가에도 피해가 될 것이다.
골목상권 활성화를 조그마한 골목가게 같은 모습들만 떠올리기보다, 물질적인 크기를 떠나, 그 콘텐츠가 유일해서 세계적인 것으로 통하고 외국인들도 찾아올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렸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현실화 된 사례를 종종 보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것(only one)’을 개인, 지자체, 중앙정부 그리고 기업이 함께 발굴하고 힘을 합쳐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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