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지난 9월 1일부터 21일까지 자동차 세제 개편에 대한 국민토론 및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토론은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에서 주관했다. 시민사회수석실은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국민참여토론에는 총 2213건의 댓글이 달렸고, 이 가운데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1631건(74%)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시민사회수석실에 따르면, 현행 자동차 세제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차량가액, ▲차량가액+다른 기준(운행거리, 배기량, 온실가스 배출량 등), ▲운행거리 순으로 제시됐다. 이 외에 차량 무게, 차량 크기, 연비 등도 언급이 됐다.
또한 “일각에서는 해외 사례와 연구 결과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나 배기량 기준은 개선하되, 친환경차 보급 촉진을 위해 세액 공제, 보조금 등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상당수 제기됐다”고 전했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자는 의견은 267건(12%) 가량에 불과했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자는 사람들은 ▲차량 유지비용 증가 등으로 친환경차 보급 확대 정책에 역행 ▲배기량 기준은 유지하면서 보완방안 마련이 적절 ▲세금부담 증가 우려 ▲현 제도가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현행 배기량 기준 차량 과세, 40년 전부터 점점 불합리한 제도로 전락
우리나라의 배기량 기준 세제(1cc 당 200원)는 1970년대 이전에나 어울리는 제도다. 1980년대부터 세계 각국은 양산차에 터보차저나 슈퍼차저와 같은 과급기를 장착해 출시했다. 적은 배기량의 엔진으로 더 많은 출력을 내기 위해서다. 이는 특히 유럽산 차량에서 두드러졌다. 내수 시장이 경차 위주인 일본은 출력 증강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 더 많은 출력을 내기 위해 배기량을 늘린 것은 미국차 뿐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 메이커가 배기량은 줄이는 대신 출력은 높이는 방향으로 차량을 개발·출시했다. 2010년을 전후로는 너도나도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카(PHEV)’와 전기차(EV)를 개발·출시하기 시작했다. ‘환경오염’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캘리포니아주, 아이오와주 등 미국 일부 주와 유럽연합(EU)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점차 기준을 강화해나가는 방식으로 내연기관 차량을 줄이는 정책을 채택·추진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도 이런 세계적 추세는 따랐다. 하지만 세제는 그대로였다. 2010년 전후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 양산 초기에는 세제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뒤 고성능 전기차가 양산되어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하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대표적인 차종이 BMW의 i8이다.
국내 판매가가 1억9990만 원으로 1300cc 터보차저 장착 가솔린 엔진과 96kW 모터를 장착해 총 362마력, 토크 570 뉴턴미터(N·m)를 낼 수 있었다.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는 4.4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고급 스포츠카였다. 하지만 세금은 1300cc에 대해서만 매겼다. 이러니 2억 원짜리 차량 세금이 2200만 원 가량인 배기량 1600cc 아반떼보다 적었다.
이런 ‘형평성’ 문제는 갈수록 커졌다. 벤츠와 BMW, 아우디 같은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이 BMW i8과 비슷한 하이브리드차를 점점 더 많이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전기차 또한 점점 고성능으로 변했다. 특히 국내에서 테슬라 모터스가 판매를 시작한 2017년 6월부터는 ‘형평성’이 아니라 역차별 지적까지 나왔다.
기존의 자동차 세제를 그대로 둔 채로 전기차에 대해서는 일률적인 세금을 부과하면서 1억 원에 가까운 테슬라 차량은 연 13만 원의 세금을 내는 반면 2000만 원대 1600cc 아반떼는 연 58만 원을 내게 된 것이다. 포르쉐의 타이칸 또한 출고가는 거의 2억 원인 반면 자동차세는 13만 원에 불과했다. 현대차가 생산한 수소연료전지차 ‘넥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수소연료전지차를 미래성장동력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가격은 7500만 원이 넘는 차량의 세금은 전기차와 같은 연 13만 원에 불과했다.
현재 국내 전기차 세금은 승용차가 연 13만 원, 승용형 영업차량 2만 원, 상용차 2만8500원, 영업용 상용차 6600원이다. 반면 하이브리드차는 장착한 내연기관 배기량을 기준으로 해서 세금을 매긴다. 즉 작은 배기량의 내연기관과 큰 용량의 모터를 장착한 하이브리드차 세금은 국산 준중형 차량보다 적다. 가솔린 차량이나 디젤 차량은 예전과 같이 배기량 기준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떤 기준에 따라 자동차세를 부과할까. 미국은 주 마다 다르지만 차량 가격이나 무게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적지 않은 주가 연 수십 달러 수준의 정액제를 채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콜로라도, 미네소타, 아이오와 같이 판매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주도 있다. 다만 미주리주와 워싱턴주는 출력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유럽의 경우 출력과 배기량에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세제 계산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총 6단계로 나눠 과세 가중치를 둔다. 나라 별로 보면, 독일은 승용차의 경우 100cc 당 2유로(약 2850원)를 기준으로 1km 주행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을 만들어 여기서 1g 초과할 때마다 2유로를 부과한다. 다만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차량은 10년 동안 자동차세를 면제해준다.
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을 100g으로 정하고 초과하면 최대 2000파운드(약 327만 원)의 세금을 부과한다. 롤스로이스 던처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km 주행 때마다 300g이 넘을 경우 695파운드(113만6700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때 EU가 정한 ‘유로 6’ 등급 중 ‘유로 4’를 충족하지 못하는 차량은 런던 도심과 같이 혼잡 지역에 출입할 때 추가로 10파운드(약 1만6000원) 정도를 낸다.
프랑스는 출력을 자동차세 과세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출력이 아니라 ‘행정마력(CV)’을 기준으로 삼는다. 알려진 데 따르면 자동차의 최고 출력을 40으로 나눈 뒤 1.6을 제곱한 수치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로 나눈 수치를 더해서 과세 기준으로 삼는다.
이와 함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자동차를 구입하면 세금을 환급해주고, 반대의 경우에는 세금을 중과세한다.
세계 모든 차량에 통하는 원칙 “좋고 비싼, 새 차일수록 출력이 높다”
평범한 차량과 스포츠카 간의 과세 형평성 논란을 불러 일으킨 BMW i8의 경우 엑센트 1.3과 같은 세금을 냈다. 반면 출력은 362마력이다. 엑센트 1.8의 86마력과 한참 차이가 난다.
독일, 이탈리아, 미국,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를 만들 때 양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출력이다. 테슬라 모터스의 경우 최근 1020마력짜리 모델 S를 선보이기도 했다. 벤츠와 아우디, BMW, 렉서스 등이 만드는 고급 차량들은 내연기관에서 내뿜는 출력은 줄어도 총 출력은 결코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작은 엔진과 동력기에서 더 많은 출력을 내뿜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터보차저나 슈퍼차저 같은 과급기를 장착한 엔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우리나라 자동차 제조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즉 최고 출력 기준 1마력 당 세금을 매기면서 경차와 상업용 승용차, 일반 승용차, 상업용 화물차, 일반 화물차마다 마력 당 얼마의 세금을 매길지 기준을 정하고, 동시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과중치를 만들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 수소연료전지 차량에는 할인율을 적용해 최종 세액을 정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반발할 사람도 있겠지만 2575만7000대의 차량을 소유한 사람들, 앞으로 차량을 구매할 사람 입장에서는 간단명료한 기준이 된다. 이유는 “세상 거의 모든 차는 출력과 가격이 비례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차량은 연식이 오래될수록 출력이 줄어든다”는 사실 또한 잘 안다.
50년 이전의 기준을 지금까지 쓴다는 것은 제도가 사회 발전을 부정하는 꼴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구악’이라 불리는 제도 개선을 국정과제로 밝히고 있다. 그 선봉에 선 각료 중 한 사람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이번 자동차세 개선을 앞두고 원희룡 장관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에 차량 소비자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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