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던 새내기 교사의 자살로 촉발된 현장 교사들의 교권보호 대책 마련 요구는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이 멀쩡하다가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니다. 불과 2년 전에도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사 두 명이 학부모들에게 지속적으로 시달려 6개월 사이 연달아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이런 일들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교육계에 안타까운 사건들이 계속 있어왔다.
가까운 지인인 초등학교 선생님은 교권이 추락되는 것을 견디지 못해 정년을 불과 몇 년 앞두고 작년에 명퇴를 신청했다. 올해 또 다른 지인 선생님도 초등학교 교사 정년을 몇 년 앞두고 명퇴를 신청했다.
두 분 모두 우리나라 교육은 교사로서 더 이상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현재 공교육 초중등 교사들은 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상해를 당하거나 학부모로부터 고소당했을 때 비용을 감당해주는 월 2만원짜리 소멸성 교권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열풍이라고 한다.
교육 현장에서 교육 활동과 관련한 가장 큰 문제점을 꼽는다면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박탈한 것이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소리를 질러대 수업을 방해하거나 대놓고 엎드려 잠을 자더라도 교사는 즉각적으로 지도하기 어렵다.
하지만 즉각적인 지도를 하지 않으면 열심히 공부하는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올바른 교육이 될 리가 없다.
교권(敎權)이 무엇인가? 교권은 ‘전문직으로서의 교직에 종사하는 교원의 권리, 교원의 권위’를 의미한다. 교권의 권리 중 학생교육에 관한 권리에는 교육과정 편성권, 교육내용 및 교육방법의 결정권, 학생평가권, 학생 지도 및 징계권이 있는데 실제 교육 현장에서 학생 지도와 징계권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교사에게 권한은 없고 책임만 남았다. 여기에 학부모가 학생인권침해라는 이름으로 교사를 고소하기라도 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학생에게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학교교육과정에서 보장하고 실현하겠다는 취지로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2011년), 서울(2012년), 전북(2013년), 충남(2020년), 제주(2021년) 등 6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제정한 것이 학생인권조례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의 교사가 교육 활동 못하게 작용
그런데 이 학생인권조례가 아동학대특별법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제대로 된 교육 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모든 학생을 완벽하게 평등하게 대해야만 ‘정서적 학대’가 문제되지 않는다. 교사가 로봇도 아니고 감정과 판단이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그러려면 학생 역시 감정도, 생각도, 행동도, 실력도, 경제적 상황 모두가 평등한 조건이어야 하지 않은가? 애초에 불가능한 조항을 넣은 것이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교육계에 끊임없이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쟁이 있는 것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진정으로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 실현되었는지 물으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변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뿐 아니라 학생들도 피해자다.
지난 5월 10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발표한 '2022년도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처리 건수는 520건으로, 이 가운데 1위는 241건의 학부모에 의한 피해(46.3%)였다.
학생에 의한 피해는 유형별로 보면 수업 방해(34.4%)가 가장 많았고, 폭언·욕설 28.1%, 명예훼손 20.3%, 폭행 9.4%, 성희롱 7.8% 순이다. 지난 7월에는 초등학생이 교실에서 선생님을 수십 대 폭행하여 교사가 전치 3주를 입는 사건도 있었다. 오래 전엔 학생 인권이 전혀 존중받지 못해 문제였다면 이제는 교사의 권위가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대한민국의 사교육비는 연간 26조 원으로 경제적으로 서민들에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 명 혹은 많아야 두 명인 자녀를 잘 교육시켜보려는 학부모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왜 이지경이 됐느냐고 분노하기보다 현 시점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은 나라를 살리는 근본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키우는 토양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교사가 학생의 생활지도를 할 때는 아동학대 면책권을 주는 것으로 교사의 권익을 법적으로 보장해 줘야 한다. 학생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보호하되 한쪽으로만 편향된 잘못된 부분은 고쳐야 한다. 다만 이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이 부분은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번 추진했지만 법안 통과가 안 됐다.
둘째, 교사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한다. 학부모가 교사 개인 전화로 주말에도 문자 폭탄을 날리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교사들이 개인 전화로 시달림 받지 않게 강력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셋째, 스트레스가 많은 교사들은 지속적인 상담 및 멘토링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그 어디에도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하고 홀로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속병이 난다. 그러다보면 수업을 듣고 선생님과 함께 창의적 수업을 만들어가는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휴대폰 게임에 장기간 노출되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학생들에게도 상담과 멘토링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넷째, 학교와 학부모간 소통 창구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 문제가 있다고 아예 소통 자체를 막아버리면 오해가 생겨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 학부모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이 될 수 있도록 하되 공식적인 소통라인을 통해서 하면 된다.
교육의 영어 단어 education은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했다. 어원적 의미는 ‘밖으로(e)+끄집어내다(ducare)’이다. 즉, 학생의 잠재력을 끄집어내 주는 것이 교육이라는 뜻이다. 대학입시를 위해 정보를 뇌에 집어넣기 바쁜 우리나라 교육은 방향이 정반대다. 내 자녀만 소중히 여기고, 남보다 더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지나친 입시 경쟁과 욕심이 현재의 괴물 같은 교육 현실을 낳았다 보인다.
교육자로서 학교 교육을 법적으로 법령을 제정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슬프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를 가르칠 교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고, 학교도 사라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법이 개입하지 않아도 해결될 방안으로 가야겠지만 단계적으로는 학교 교육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을 통해 교사와 학교와 학생에게 진짜 교육을 할 수 있는 단계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는 역지사지. 학부모는 교사의 입장을, 학교는 학부모의 입장을, 정부는 교사와 학부모 및 학생의 입장을 생각하면 서로 한 발 양보할 수 있다. 나도 교육자이기 전에 세 자녀의 학부모이고 교사들 역시 그러하다.
정부 관계자들도 교사들에게 자녀를 맡긴 학부모이다. 이들의 다음세대를 올바로 키우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상호간에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학생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낼 수 있다. 바로 그게 교육이다. 교육에는 정치가 개입할 수 없다. 우리가 비록 AI시대를 살고 있지만, 시스템적인 솔루션이 아니라 인간적인 역지사지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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