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5월 5일 난데없이 공습경보가 울렸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방송에서 ‘실제 상황입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경기 북부지역에 적의 공습이 예상됩니다~~’ 라는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시 기자는 대입 준비로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급히 밖으로 뛰어 나온 기억이 있다. 곧 이어 공습경보가 해제되고 중국 민항기가 공중 납치되어 춘천의 미군 캠프 페이지에 긴급 착륙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한.중 외교사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88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대 공산권 외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정부는 민항기와 승무원 그리고 여행객 송환을 위해 중국 정부 고위관계자와 직접 접촉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그때만 해도 북한과 중공, 그리고 소련은 한국의 적대국이었다. 미소 냉전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중국이라고 하지도 않고 ‘중공’이라고 불렀다. 이런 관계 속에 중국 민항기의 불시착은 1992년 한중수교로 이어지는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노태우 정부는 대공산권 외교, 즉 북방정책을 과감히 펼쳤다. 88서울올림픽 성공 개최로 인한 국가적 자부심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1992년 중국과 국교수립을 했다. 이때부터 한국 사업가들과 민간인들은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중국 길림성 연변자치구에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은 한국인들에게 생소했다. 한국전쟁 이후 중국은 북한과 함께 가볼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한중수교 후 한국의 방송사들도 앞다퉈 중국 연변지역에 대한 취재를 하고 방송으로 내보냈다.
당시 방송 한토막은 기자의 기억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방송에 나온 연변자치구 조선족의 말투에서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나왔기 때문이다. 북한과 가까운데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세월이 흘러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중국 조선족의 상당수는 일제 강점기 경상도지역에서 올라간 사람들 후손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제의 만주개척시기에 많이 올라갔다. 그 후손들이 경상도 말씨를 사용하는 조선족이 된 것이다.
구한말과 일제시대 만주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인은 크게 세차례로 구분할 수 있다. 1차는 구한말 간도지역으로 몰래 흘러들어간 함경도지역 조선인들이다.
그 다음 2차시기는 1910년 한일합방을 전후 때다. 당시 만주는 일종의 무주공산(無主空山)이었다. 청나라도 일본도 만주, 특히 간도지역에 대한 확실한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관(官)의 지배가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조선의 농민들이 간도지역으로 넘어갔다. 마지막 3차 시기는 만주국 건국과 만주 개척시기 이땅은 많은 이들이 만주로 만주로 풍운의 꿈을 안고 갔다. 이 당시 나온 유행가가 바로 남인수 씨가 불렀던 ‘감격시대’라는 노래다.
그렇게 만주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이들의 후손이 지금 조선족이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중국이 중국내 소수민족의 하나로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도 그말을 그대로 받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중국동포’라는 말과 혼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2020년 중국 인구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선족 인구 2010년 기준 183만929명이고, 2021년 기준 170만2479명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은 70만 명으로 조사됐다. 수치상으로는 현재 중국에는 약 100만 명, 한국에 약 70만 명의 중국 국적 조선족이 살고 있다.
외교부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시점 국내 외국인 등록자는 약 240만 명이다. 외국 국적자의 3분의 1이 중국 조선족인 셈이다.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 등록된 조선족은 50만 명이다.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이 연변자치구 조선족보다 많은 셈이다.
한국과 중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조선족은 어디를 응원할까
동포라는 말속에는 같은 핏줄이라는 혈연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 기준에 따른 용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혈연이나 민족 감성이 아닌 국적 중심의 표현이다. ‘조선계 중국인’이 맞는 표현이다. 우리가 조선족을 ‘중국동포’라고 부르는 데는 그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쪽에 더 가깝다는 우리의 생각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들 조선족도 우리처럼 같은 민족이나 혹은 ‘동포’의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그런데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만의 ‘짝사랑’으로 결론 난다.
한국과 중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조선족은 어느 쪽을 응원할 것인가라는 설문조사에서 조선족의 87%는 중국을, 17%는 한국을 응원한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도 세대 차이가 있다. 한국을 응원한다는 조선족은 대체로 고령자이고 청장년층은 대부분 중국을 응원한다고 답했다. 벌써 오랜 기간 중국에서 나고 자란 조선족들에게 그들의 조국은 중국이다.
기자는 조선족을 채용한 업체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취재를 했다. 업체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족들은 조선말 하는 그냥 중국인입니다. 우리 업체 성격상 중국과 연결이 많아 중국어 사용하는 사람이 필요해서 조선족을 채용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민족감정 그런 거 없습니다. 그저 그들에게 한국은 돈벌이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24시간 감자탕을 운영하는 요식업체 대표는 인건비 때문에 조선족을 채용했다고 말한다. 그동안 조선족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조선족들이 한국을 보는 눈이 2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세계 2위로 올라서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부러워하는 눈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 다음으로 경제 강국이 된 중국을 자랑스러워하면서 한국을 소국 취급하는 그런 모습까지도 보입니다.”
중국 연변에 유학하고 국내 조선족 사회에 대해 정통한 한 인사는 기자에게 충격적인 말을 건넸다.
“조선족 99%는 자기들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절대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동포의식’ 같은 것은 없습니다. 조선족이 한국에 처음 들어오던 당시의 조선족과 지금의 조선족은 완전히 다릅니다. 조선족 상당수는 경제적 뿌리를 내리고 있고 이들은 오히려 한국인을 고용하면서 장사를 합니다. 국내에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코인시장 상당수는 조선족 손아귀에 들어가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 정부에서 주는 투표권을 가지고 정치적 영향력까지 발휘하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조선족이 많은 일부 지자체에서는 귀화한 조선족이 시장까지 도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탈북자들의 조력자 조선족
현재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북한이탈주민)는 2022년 말 기준으로 3만3882명이다. 이들 상당수는 중국을 거쳐서 제3국을 경유해서 입국했다. 자유를 찾아 온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동질성을 갖는다. 조선족과는 다른 점이다. 탈북자들 중에 많은 이들이 유튜브방송을 하고 있다. 구독자수가 10만이 넘는 대형 유튜버들도 많다. 주로 탈북자들의 탈북과정을 담는 인터뷰 내용이 주를 이룬다. 기자도 즐겨보곤 한다.
탈북자들은 선진국 대한민국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것을 결정하는 데 중국 조선족의 조언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돈 벌러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된다. 대체로 조선족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거나 조선족 가정에 숨어 있다가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는 루트다.
한 탈북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한국으로 올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조선족이 한국으로 가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면서 한국이 얼마나 잘 사는지를 알려 줬다는 것이다. 탈북자 눈에는 24시간 전기가 들어오는 중국만 해도 엄청 잘사는 나라인데 그 조선족이 한국은 중국보다 훨씬 더 잘산다고 하니 정말 놀랐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한국을 알게 되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한국으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증언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조선족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얼마나 자유스러운 나라인지를 알려주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이 점은 우리가 몰랐던 중국 조선족의 가치다.
조선족을 국내 정치에 도구로 활용하려는 정치권
국내에 들어온 조선족에 대한 한국민의 인식은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 그 이유는 언론에 보도되는 중국 조선족의 흉포한 범죄 때문이다. 히트를 친 영화 ‘범죄도시’는 대림동 일대에서 활개치던 중국 조선족의 범죄를 그린 영화다. 오원춘사건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또한 한국 사회와 융화되지 못하고 중국인에 더 가까운 조선족의 정서도 문제점이다. 중국인의 건강보험 무임승차도 국내 여론을 악화 시켰다. 국내 6개월 이상 장기 체류 외국인도 일정 금액을 납부하면 국내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악용하는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2018년에는 15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그 대부분이 중국인에 지급되 건강보험료였다.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자체 단체장들은 대부분 민주당 소속이다. 지자체 선거에서는 조선족들도 투표를 할 수 있다. 선거법은 영주권을 취득한 지 3년이 지난 외국인들에게 지방선거에 한해 투표권을 부여한다. 한국은 지난 2005년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이러한 외국인 참정권을 도입했다. 지자체 선거에서만 투표가 가능한데 대부분 중국 조선족이다. 전체 유권자 수에 비하면 외국인 투표는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조선족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매우 큰 비중이다. 민주당은 이들 조선족에 대한 투표권을 확대하려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중국은 한국인에 대해 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한국에서만 이러한 법을 시행하는 것은 상호주의에 위배된다면서 제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0년 7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중국 조선족이 많은 지자체에 한해 중국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 교육을 하겠다고 말하면서 학부모들의 큰 반발을 산 적도 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이 중국 동포 밀집 지역인 구로·금천·영등포 등 남부 3개 구(區)의 초·중·고교 가운데 이중언어 교육을 원하는 학교를 자율학교로 지정, ‘중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편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재외국민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는 교포도 ‘표’ 관리 대상이 되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모두 재외동포청 설치를 약속한 바 있다. 2022년 10월 6일 윤석열 정부는 재외동포청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설립 논의가 시작됐다. 그 이전까지 재외동포 업무는 관계 부처와 재외동포재단 등이 나눠 하고 있다. 재외동포 원스톱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오는 6월 5일 재외동포청을 설립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외교부가 파악한 재외동포는 732만5143명(2020년 기준)으로, 외국국적 동포(시민권자) 481만3622명, 재외국민 251만1521명으로 구성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외국 시민권자는 그 나라 국민이다. 외국 시민권을 획득하지 않는 재외국민은 영주권자이지만 국적은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어떻든 정부에서 재외동포 관련 법령을 만들어 관리하는데 그 법안은 문재인 정부 때 ‘재외동포재단법’이라는 이름으로 2020년 11월 27일 만들어졌다.
‘재외동포재단법’에서 정의하는 재외동포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국적에 관계 없이 한민족(韓民族)의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외국에서 거주·생활하는 사람.
또 다른 법령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2020. 2. 4. 시행)’에서 정의하는 “재외동포” 정의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외국의 영주권(永住權)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이하“재외국민”이라 한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대한민국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 또는 그 직계비속(直系卑屬)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이하“외국국적동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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