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키 가츠히로 일본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 대표 “납북 일본인 문제, 한일 협력 기대”
아라키 가츠히로 일본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 대표 “납북 일본인 문제, 한일 협력 기대”
  • 강시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3.03.23 0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납북 일본인을 찾기 위한 단체인 일본의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가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2002년 10월 15일 방북했던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납북자 5명과 함께 귀국했을 때 납북자로 파악되지 않았던 소가 히토미가 포함돼 납북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일본 내 여론이 높아지자 이 단체가 설립된 것이다. 대표인 아라키 가츠히로 다큐쇼쿠대 교수가 탈북민 출신 등 북한인권운동가들과 납북 일본인 조사 활동에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2월 23일 아라키 가츠히로 대표로부터 납북 일본인 조사 활동과 한일관계와 관련한 최근의 일본 사회 분위기에 대해 들어본다.

1996년부터 납북 일본인 문제 부각  

- 납북 일본인 문제는 언제부터 이슈가 되었는지요?

일본의 한반도 전문 월간지 ‘현대코리아’ 1996년 10월호에 한국 정보기관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로 작성된 논문이 게재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는 ‘1970년대 후반 일본해(동해)쪽 해안에서 중학교 1학년 소녀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는 내용입니다. 그후 그 중학생이 요코다 메구미이고 1997년 11월 15일 니가타에서 실종됐다는 것이 확인이 됐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 1997년 2월 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니시무라 싱고 의원이 질문하여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간접적이지만 가능성이 있고 수사를 하고 있다는 뜻의 답변을 했습니다. 같은 날 산케이신문과 아사히신문사의 잡지 ‘아에라’가 요코타 메구미 실명과 사진을 게재하여 보도했습니다. 

거의 동시에 서명운동을 중심으로 한 민간의 구출운동이 시작하며 3월 말에는 가족회가 결성됐습니다. 설립 당시 명칭은 ‘북조선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 연락회이며 북일 정상회담으로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한 후 ‘북조선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 연락회’로 바뀌었습니다. 이 단체와 별도로 ‘특정실종자 가족회’가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특정실종자(북한에 위한 납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종자)가족 유지 모임’입니다. 2017년 발족했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구출회)가 설립돼 1997년 2월 요코타 메구미 납치가 보도된 것을 전후로 납치된 니가타에서 처음으로 구출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이에 호응해서 전국에서 서명운동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각지의 활동이 나중에 자연적으로 결집하며 구출회 전국협의회가 설립된 것입니다. 이 단체와 가족회는 활동을 같이 하고 있지만 구출회 자체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지금 구출 활동 참여하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 피해자와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 설립에 대해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북일 수교를 모색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회담을 했는데 이때 납북 일본인 문제로 일본 사회의 반북 감정이 심화되기 시작합니다.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를 비롯한 납북자 가족들이 연일 시위하면서 납북 일본인 귀국을 촉구했고, 이에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에 “납북 일본인의 존재를 밝히고 사죄하라”는 요구를 하기에 이릅니다. 당혹한 김정일은 일본인 납북 문제를 시인하고 사과합니다. 북일 수교로 경제적 지원이 절실했던 김정일이 한발 물러선 것입니다. 납북자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요코다 메구미의 경우에는 죽었다고 둘러대면서 실체가 불분명한 유골만 돌려줬습니다.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으로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하며 ‘생존하고 있다’고 알려진 5명이 10월 귀국했습니다. 그 중에 정부가 납치됐다고 인정하지 않았던 소가 히토미 씨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978년 8월 12일 어머니 미요시 씨와 같이 납치됐습니다. 니가타현 사도섬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결혼했는데 남편이 월북한 미군인 찰스 젠킨슨입니다. 어머니는 지금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납치 피해자 17명에 들어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실종자가 있는 가족들이 “우리 가족도 어쩌면 북한에 의한 납치 아닌가”라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응해서 2003년 1월 그때까지의 구출회(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에서 조사 부문이 독립해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가 설립됐습니다.

임원은 구출회와 겸직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임원 중 가족회 전 사무국장 마스모토 데루아키 씨와 특정실종자 가족회 현 사무국장인 다케시타 타마지 씨가 부대표로 있습니다. 이 두분 밖에 가족은 없습니다. 특정실종자 가족회와는 거의 같이 행동하고 있으며 가족회와는 조직 대 조직의 관계가 아니지만 개별적으로 가족들과 연계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요?

탈북자들로부터 납북 일본인에 관한 정보를 듣고 있습니다. 북일 수교가 안 된 상황이라 귀환 등 진척이 있지는 않아요. 470명 등록 실종자 중에서 60명 정도는 일본 내에서 찾은 생존자나 사고사가 확인된 일반 실종자입니다. 이들 중에도 북한에 갔다 왔다고 의심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어선을 타다 납북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은 북한과 관련이 없는데도 중학생 등 일반인이 납북된 사례가 있고 10년, 20년 전 일이라 증거를 확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납북 가능성이 있는 사람부터 조사해서 판단하는 일을 합니다.

- 단체 운영 비용은 어떻게 조달하는지요?

대북단파방송을 하루에 3시간 30분 하는데 정부 홍보광고를 포함해서 하며 정부의 지원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영국의 BBC 계열회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바라기현의 통신회사와 NHK 시설을 빌려 사용합니다. 나머지는 모금과 후원의 형태가 있습니다.

일본 특종실종자문제조사회가 발간한 팸플릿
일본 특종실종자문제조사회가 발간한 팸플릿
일본 특종실종자문제조사회가 발간한 팸플릿
일본 특종실종자문제조사회가 발간한 팸플릿

- 한·미·일이 자유진영으로서 긴밀히 협력해야 하지만 한·일간에는 역사 문제로 대립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미·일이 동북아에서 북·중 등 사회주의 체제와 대립하는 차원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한국과 일본, 일본과 미국의 관계에서 지난 역사와 이에 따른 인식 내지는 정체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내에는 일제 식민통치에 따른 친일 반일 논쟁이 있고 보수세력 중에는 일본은 과거에는 ‘전범국’이었지만 지금은 자유민주주의국가가 됐으니 한국과 일본이 함께 가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의 정서에는 일본 군국주의가 많은 폐해를 남긴 것을 인정하지만 그들의 과거 국가를 전범국이라고 얘기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 1944~ 1945년 전투 능력을 대폭 상실했을 때 미국의 도쿄대공습으로 민간인 11만5000명이 사망하고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후 미국이 일본에 평화헌법을 제정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미국 각국의 입장과 배경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자유진영의 일원으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힘을 모아 미래를 향해 갈 때 오히려 각국의 입장 차로 발생하는 문제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한국과 일본은 각국의 체제가 바뀌더라도 싫어도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숙명이 있습니다. 

- 윤석열 정부에 대한 일본내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문재인 정부 때 양국 관계가 너무 나쁜 것에 비하면 지금은 분위기가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일본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한일관계 개선 의지 표명한 것을 대단한 결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변동이 많은 것에 대해 우려합니다.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와 없던 일로 했습니다. 강제징용 일본기업 배상 판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정부가 조심스러운 이유라 하겠습니다. 양국이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것으로 우선 할 수 있는 북한과 중국에 대한 위기에는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입장입니다.

- 문재인 정부 때 일본이 소재 부품 장비 대한 수출 규제를 하자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있었다. 일본 내에서는 한국 제품 불매 운동이 없었는지요.

일본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은 있었지만 크게 분노하지는 않았고 한국 제품 불매운동도 없었습니다.

- 북핵·미사일 문제에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역설적으로 일본의 방위력 증강의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뉴스 거리가 되기는 하지만 자주 발사하다보니 또 하는가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하면 할수록 인민군의 재래식 전투력은 약해질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북한 군인들이 그렇지 않아도 식량, 연료가 부족한데 미사일 발사를 하며 군비가 줄어들수록 국지전은 몰라도 전면전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미사일을 만약 실제로 사용한다면 자멸의 길로 갈 텐데 이를 계속하는 것은 북한 내부 문제 무마용일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 체제가 흔들리니 오히려 지금이 북한을 흔들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 문제에 대해 일본 내 분위기는 어떤지요?

30~40년전만해도 우익 정당에서도 헌법 개정 얘기는 언급되는 것을 주저했는데 현재는 일반화돼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국회 3분의2 찬성, 국민투표 과반 찬성으로 개정 조건이 쉽지는 않습니다. 지금 일본 국민들은 좌파든 우파든 영토 확장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군대를 보유하고 국제적 기여를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일본 특종실종자문제조사회가 발간한 팸플릿
일본 특종실종자문제조사회가 발간한 팸플릿

2018년 일본 초계기 사건 해명 관심

- 일본에서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해서 한국이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독도 문제에 관해 한국과, 북방영토는 러시아와, 센카쿠열도는 중국과 영토 분쟁이 있습니다.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그중의 일환으로 하는 행사 수준으로 보면 됩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한국과 일본 관계는 북한 문제가 열쇠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납북 일본인에 관한 정보 제공에 협력하면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북한인권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북한이 민주화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도 납북 일본인 문제에 관심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일본에서는 납북 일본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북한인권의 심각성을 알게 됐습니다.

또 하나 2018년 12월 20일 동해 대화퇴어장 부근 공해상에서 한국의 광개토대왕함이 북한의 목선을 구조할 때 일본 초계기에 화기 관제 레이더를 발사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서 양측이 충돌 위기가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 일본은 북한 주민이 일본으로 망명하려는 것을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요청으로 검거해 막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진실을 밝히면 윤석열 정부에 대해 일본이 호의적이 될 것입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