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넘어섰지만 휴전할 기미는 전혀 없다. 전선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러시아가 확보한 가운데 고착화 돼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장기전에는 막대한 물량을 필요하다. 미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은 재래식 무기들을 최대한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폴란드와 미국이 가장 많은 무기를 보냈다. 영국과 독일도 탱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고성능 전투기만 제외하고 재래식 무기는 모두 우크라이나로 보내졌다. 압도적인 러시아의 공세에 우크라이나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서방국가들의 지속적 군수지원 덕분이다.
러시아군이나 우크라이나군이나 그 모체는 과거 소련군이다. 소련군의 전쟁방식은 막대한 포병전력을 기반으로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히틀러의 전차군단에 맞서 소련은 포병전력으로 맞섰다. 그 영향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미군의 경우 제공권을 장악하고, 공지 합동공격으로 적의 주요시설을 타격하는 방식인데 반해 러시아는 여전히 포격전 위주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군 모두 포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약 100만발의 155mm 포탄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캐나다도 우크라이나에 약 20만발을 보냈다. 그런데 이제 재고가 바닥났다. 그러자 미국이 한국에 손을 벌리고 있다. 미 정부는 우리 정부에 155mm 포탄 12만발 수출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직접 보내는 것에 난색을 표하자 미국은 미국 내 재고 비축으로 삼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포탄을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대신 한국에서 수입하는 포탄은 재고 물량으로 비축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돌려막기 우회 수출인 셈이다.
결국 정부는 10만발을 수출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미국은 작년에도 이미 한국에서 10만발의 포탄을 가져갔다. 이번에 10만발까지 합하면 20만발이 미국으로 보내지는 것인데 아마도 추가 물량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한은 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와는 9000km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의 방산업체는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어찌하여 미국조차 한국에서 포탄을 수입해서 갈까? 포병전력 만큼은 한국이 자유진영 국가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힌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군은 포병전력 확충에 사활을 걸다시피했다.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의 탱크와 중공군의 야포에 쓴 맛을 본 경험이 한국군이 포병강국으로 만들었다.
한국군의 기갑전력과 포병전력은 유럽의 나토회원국 전체 물량보다 많다. 탱크의 경우 한국군에는 구형 탱크를 제외하고 K1계열 1500대, K2흑표 약 260대 등 1800대를 보유하고 있다. 포병전력은 155mm 구경의 자주포만 해도 한국군에는 약 2100문을 보유하고 있다.
자주포만 따진다면 미국보다 많은 물량이다. 105mm, 155mm 견인포까지 합하면 약 4000문이 넘는 포병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 따른 포탄 재고도 현재 한국이 가장 많다. 언론에 공개된 추정치로 따지면 105mm 포탄은 약 340만발, 155mm 포탄도 300만발에 근접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막대한 물량의 포탄을 갖고 있어도 전면전 시 한국군의 전시 포탄 재고량은 대체로 1주일 분량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당장 손쉽게 포탄을 즉각 받을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미군의 자주포 전력이 한국보다 못한 것은 미군은 자주포 대신 항공 전력으로 적진을 타격하기 때문에 자주포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또한 월남전 이후 미군은 자주포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국가 대 국가의 전면전이 아니라 대테러전이었기 때문에 통상적 포병화력보다는 항공기나 무인공격기를 통한 정밀타격 위주의 전쟁을 치렀다. 대신 한국은 북한을 상대로 대규모 전면전을 상정하기 때문에 막대한 기갑 및 포병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과 나토가 한국에서 재래식 무기를 수입해가는 이유는 생산시설에 있다. 전쟁에서 멀어진 나토회원국은 기본적으로 재래식 무기 생산시설이 거의 없다. 미국은 첨단 무기 생산시설에 집중하면서 재래식 무기에는 등한시한 경향이 있다. 거대한 미국조차 155mm 포탄 생산량은 1개월에 1만발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에서 수입하는 포탄 12만발은 미국의 1년 치 생산량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전쟁 특수 맞아
미국이 포탄 생산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업체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만약 생산설비를 늘렸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화는 지난 1월 17 폴란드에 K9자주포 1차 물량 48문을 선적 완료했다. 계약 체결 3개월만에 속전속결로 끝냈다. 총 210문 계약물량 중에 나머지 164문은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한다. 이처럼 빨리 납품할 수 있었던 배경은 우리 육군용으로 창정비 및 신규 생산 물량을 폴란드로 돌려 우선 공급했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K9을 선택한 이유에는 가격과 성능도 있지만 가장 빠른 납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많은 물량을 군수지원 했기 때문에 공백을 빨리 메꿔야 되는 시기의 절박성이 있었다. 그것을 충족시킨 것이 한국의 한화 K9 자주포다 .
폴란드는 K2흑표 탱크 980대, K-9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3개 편대(총 48기), K-239 다연장 로켓 ‘천무’ 288문을 한국에서 도입할 예정이다. 방산부문에서 한국은 완전 대박, 잭팟을 터트렸다. 나토 회원국이자 무기 선진국인 영국이나 독일이 이렇게 큰 물량을 한국에 빼앗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당장 이런 대량 물량을 소화할 공장이 현재 영국과 독일에는 없다. 어찌 보면 현재 한국은 자유진영의 무기고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화(K-9자주포), KAI(FA-50경공격기), 현대로템(K2 흑표전차) 외에 특수를 누리고 있는 업체는 풍산그룹이다. 금속·방산특화기업으로 각종 총포탄을 생산한다. 우크라이나 지원용으로 미국이 수입해가는 155mm 포탄도 풍산이 생산한다.
풍산의 주가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풍산은 최근 한 달 새 5700억 원이 넘는 포탄 공급계약을 맺었다. 풍산은 최근까지 △방위사업청(1167억 원) △현대로템(2934억 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1647억 원) 등과 총 5748억 원어치 공급계약을 맺었다.
반면 러시아는 한국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이 우회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미국의 대러 제재에 발맞춰 러시아 수출금지 품목을 확대하자 러시아가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2월 27일 “한국의 비우호적 행동은 종합적 양자 관계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 (북핵 문제) 해결 분야 양국 공조의 질에도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러시아가 무기 수출을 금지했지만 이제는 첨단무기 수출까지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계 무기시장에서 주요 포지션 위치
일부 외신에서는 러시아도 부족한 탄약을 북한에서 조달한다는 말이 있다. 그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할지 모른다는 관측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의 외교안보외교상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
해마다 세계 각처에서 무기 및 항공산업 전시회가 열린다. 한국에서는 홀수 연도마다 서울 ADEX 항공우주방산전시회가 열리는데 국제 무기시장에서는 비중 있는 전시회다. 한국군이 세계 무기시장에서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방산업체들도 세계 주요 방위산업 전시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말레이시아 랑카위 해군기지 인근에서 개최되는 LIMA(Langkawi International Maritime and Aero-space Exhibition) 국제 해양·항공 방산 전시회가 매우 큰 비중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베르사이유 인근 사토리에서 2년마다 개최되는 유로사토리(EuroSatory) 방산 전시회가 가장 권위 있다. 한국의 현대로템은 2018년 처음으로 유로사토리 전시회에 참가했다. 가장 큰 무기시장은 바로 중동이다. 아랍에미레이트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IDEX (Inter-national Defense Exhibition & Conference)가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종합방산 전시회다.
IDEX에는 전 세계 주요 방산업체가 거의 모두 참가하는 대규모 전시회다. 특히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라는 이름처럼 무기시장에서 큰 손들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알제리, 카타르, UAE 등이 세계 10위 권 무기 수입국가들이다.
지난 2월 20~24일까지 UAE에서 열린 IDEX2023에 한국의 주요 방산업체들도 대거 참가했다. 현대로템, 한화, KAI, LIG넥스원, 풍산, SNT모티브, 기아 등이다. 현대로템은 중동 사막기후 현지 운용성을 고려해 중동 환경에 최적화된 다목적 무인차량, K2 전차 등 지상무기체계 제품군을 전시했다. 중동사막지역을 고려해서 고무재질의 궤도를 장착한 것이 특징이다. 이집트는 한국의 FA-50 경공격기에 관심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이 건설한 원전이 있는 UAE는 한국과의 안보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원전경비와 UAE군 훈련을 위해 한국특전사 1개 중대가 파견되어 있다. UAE는 지난해 1월 LIG넥스원과 4조원 규모의 ‘천궁-Ⅱ’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1월에는 KAI와 다목적수송기 공동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실질적인 방산협력의 시작을 알린 바 있다.
한화그룹 방산 3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방산)는 지대지미사일로 개조한 ‘천검’을 탑재한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 모형을 선보였다. 또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K9 자주포 모형도 함께 전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해 K9 자주포의 폴란드 수출과 국내 방산 사업의 호조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6조5396억 원, 영업이익 3753억 원을 기록했다고 2월 24일 밝혔다. 전년 대비 매출은 18%, 영업이익은 36% 늘어난 역대 최대 수준이라고 공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로운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중국-러시아 연합과 자유진영서방국가들간의 대결이다. 세계 경제시장도 공급망 재편으로 틀을 바꾸고 있다. 그 핵심은 중국과의 디커플링이다. 지난 30년간은 정치이념에 상관없이 경제적 관점에서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정치이념에 따른 신냉전의 시대다.
신냉전은 정치-경제-외교-안보-자원-기술이 모두 한몸으로 움직인다. 과거처럼 정치와 경제가 별개 사항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무기 방산시장은 군사외교안보의 코어분야로 작동하게 된다. 그 중심에 이제 한국의 방산기업들이 서게 된 것이다. 이제 방산기업은 한국의 군사외교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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